믿고 싶습니다 성씨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지만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돈씨는 원래 백제의 고성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켰을때 많이 고려군에게 저항을 하여 돼지 돈(豚)씨로 멸칭되어 왔다고 들었습니다 최인호씨의 소설에서는 백제의 대성8족의 목씨의 후예라고 표현되어 왔습니다
목천 돈씨(木川頓氏)
목천(木川)은 충청남도 천원군(天原郡)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인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대록군(大麓郡)으로 고쳤고, 고려조(高麗朝)에 와서 목주(木州)로 개칭하여 청주(淸州)에 속하였다가 성종(成宗) 때는 별칭(別稱)으로 신정(新定)으로도 불렸다.
조선 태종조(太宗朝)에 목천(木川)으로 고쳐 현감(縣監)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되어 오다가 1913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이웃 병천군과 합하여 천안군(天安郡)에 속했으며, 1963년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됨에 따라 천원군(天原郡) 목천면(木川面)이 되었다.
돈씨(頓氏)는 중국 창오(蒼梧 : 지금의 광서성 창오현, 고대 순제가 죽었다고 전하는 곳)출신으로 한(漢)나라때 효자로 유명했던 돈기(頓琦)의 후예(後裔)로 전해진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고려를 창업하자 목천(木川)지방의 백제 유민들이 순응(順應)하지 않고 자주 소란(騷亂)을 일으켜 태조가 그 곳 사람들에게 동물의 이름 으로 돈(頓), 상(象), 우(牛), 장(獐)등의 성(姓)을 가지게 했는데, 그 후손들이 돈(頓), 상(尙), 우(禹), 장씨(張氏)로 개성(改姓)한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돈씨가보(頓氏家譜)]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조의 명성(名姓)인 을씨(乙氏)가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 때부터 을지씨(乙支氏)로 개성(改姓)하였다가, 고려 인종(仁宗) 때 묘청(妙淸)의 난(亂)에 의병장(義兵將)으로 서경(西京)을 수복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을지수(乙支遂). 을지달(乙支達), 을지원(乙支遠)이 돈산백(頓山伯)에 봉해지 고 돈뫼(頓山)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그 곳에서 누대를 세거(世居)해 오면서 성(姓)을 돈씨(頓氏)로 개성하였다 고 하며, 임진왜란 때의 조방장(助防將)인 돈정신(頓貞臣)은 을지수(乙支遂)의 17대손이라고 한다.
그러나 묘청(妙淸)의 난(亂) 때 공을 세웠다는 을지수, 을지달. 을지원에 대한 기록이 사기(史記)에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은 돈뫼(頓山)의 지명이 분명하지 않은것으로 보아 정확성이 없다고 본다. 근대에 와서 돈씨는 1930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평남(平南) 대동(大同)과 강서(江西)를 비롯하여 황해도(黃海道) 안악(安岳), 황주(黃州)에 36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22가구, 1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댓글 일단 사서의 기록에 없는 이상 쉽게 믿기는 어렵지요. 그러한 인물이 있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고...하지만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따를만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