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가에 오는 봄
유난했던 추위도 우수가 지나자 서서히 누그러져 간다. 기상 전문가와 식물학자들은 추위와 상관없이 봄꽃은 제철에 핀다고 했지만 발로 현장을 누빈 내 경험에 비추어선 그건 맞지 않은 얘기다. 이른 봄 피어나는 매화를 비롯한 산수유꽃은 예년보다 개화가 늦은 편이다. 땅에 붙어 피어난 봄까치꽃 광대나물꽃 꽃다지도 마찬가지였다. 고로쇠나무 수액도 늦게 오른다고 들었다.
어제는 서북산 남향 골짜기 상평으로 갔더랬다. 진동에서 진북을 지난 진전면이다. 종점을 조금 못 미친 미천마을에서 부재골로 올랐다. 근래 몇몇 전원주택이 들어선 산골에서 쑥을 몇 줌 캤다. 부재고개를 넘어 서북동으로 내려가 그곳 양지바른 자리에서 쑥을 더 캐 모았다. 시내로 들어갈 버스를 기다리면서 얼음이 녹아 흐르는 개울가에 퍼질러 앉아 캔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려냈다.
이월 넷째 화요일은 구산면 갯가로 향하려고 길을 나섰다. 갯가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마산역 광장에서 옥계 해안으로 가는 60번 버스를 탔다. 남들은 구산이라면 콰이강의 다리로 알려진 저도 연륙교나 원전 낚시터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사람이 많이 찾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옥계는 구복과 원전을 가기 전 으슥한 외딴 해안가다. 합포만 바깥 한적한 포구다.
60번 버스는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 신도시를 지났다. 덕동에서 수정을 지난 백령고개를 넘어 내포마을을 둘러 옥계 입구로 갔다. 이른 아침이어선지 합포만은 희뿌연 안개에 잿빛을 띠었다. 곳곳에 홍합 양식장 하얀 부표가 점점이 떠 있고 더 멀리는 진해 군항의 전함이 어슴푸레 보였다. 버스는 해안 도로를 따라 종점인 옥계마을로 들어갔다. 승객으론 낚시꾼 한 사람과 같이 내렸다.
먼저 내린 낚시꾼은 방파제로 나갔다. 옥계 포구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이 여러 척 묶여 있었다. 두 어부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어망을 손질하고 있었다. 방파제 바깥 공터엔 어구를 비롯한 낯선 장비들이 쌓여 있었다. 옥계 포구는 내가 시작하는 일일 도보 여행 기점이다. 내가 타고 간 버스는 손님을 몇 태우고 곧장 시내로 돌아갔다. 나는 버스가 떠난 해안 도로를 따라 걸었다.
길섶의 볕 바른 자리에서 겨울을 난 달래가 보며 한 움큼 뽑았다. 호미가 없어도 검불을 제치고 손으로 뽑으니 하얀 뿌리까지 온전히 드러났다. 그 주변 쑥이 몇 낱 보여 캐기도 했다. 비탈을 올라 해안 도로를 뚜벅뚜벅 걸었다.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차량 통행이 드물어 매연이나 소음이 없어 산책하기 좋았다. 이런 묘미에 내가 봄이 오는 길목에 인적 드문 갯가로 길을 나섰던 것이다.
양지바른 언덕에 심겨진 매실나무는 아직 꽃망울만 부풀었지 꽃이 피질 않았다. 지난겨울이 춥기도 했고 강수량이 적어 꽃 피는 시기가 다소 늦어진 듯했다. 산모롱이 산불감시초소 감시원은 마을로 순찰을 갖는지 실내는 비어 있었다. 가까운 바다엔 거대한 화물선이 기적을 울리며 마산항으로 서서히 진입했다. 작은 어선들의 디젤 엔진소리에서 바다에도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금호산 청평선원을 지나니 오토캠핑장과 펜션이 나왔다. 해무가 서서히 걷혀 저 멀리 마창대교 상판과 팽팽히 당긴 케이블이 드러났다. 안녕마을을 돌아가니 구복과 원전에서 오는 버스가 합류하는 장문안정류소였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귀가하면 갯가로 나선 발길의 목적이 다 달성되지 않았다. 면소재지 바깥 수정만 매립지 저편 양지바른 곳은 봄이 얼마만큼 와 있는지 궁금했다.
삼거리는 낚시용품과 식당이 있었다. 돼지국밥으로 소진된 열량을 보충하고 매립지를 돌아 죽전마을 입구로 갔다. 입춘 무렵 봐둔 매화망울을 스무날이 더 지나는데도 더디게 부풀어 갔다. 포구에는 홍합을 까는 뗏목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었다. 볕 바른 자리 매실나무 아래와 죽전마을 들머리에서 쑥을 몇 줌 더 캤다. 도보 여행 전리품인 달래와 쑥은 저녁에 만난 친구에게 건넸다. 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