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굶주린 걸인과도 같다. 사랑에 굶주리고 이해받는 일에 굶주리고,
안정과 자유에 굶주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달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멈춰서 휴식할 시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은 무엇보다 자신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멈춰서 쉬기 위한 수행이다.
그것이 인도에서 말하는 사마타, 즉 '멈춤'의 진정한 의미다.
멈춤에는 달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것은 자장가를 부르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과 같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울음을 멈추게 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멈춤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고통받고 흥분해 있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숭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언제나 흥분하고 고통받고, 소리지르는 원숭이가 우리 안에 있다.
명상은 멈추고, 진정시키고, 포옹하는 수행이다.
우리 안에는 고통받는 아이가 있다. 우리 안에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원숭이가 있다.
따라서 누군가 그 아이를 보살피고, 그 원숭이를 돌보고, 그들을 감싸안을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그 일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원숭이를 혼자 둘 순 없다.
우리 안에 있는 굶주린 영혼과 굶주린 아이, 고통받는 아이를 홀로 내버려 둘 순 없다.
집에 와서 그들을 보살피고 감싸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사마타는 중단한다는 뜻이다. 고통받는 일을 중단하고, 흥분하는 것을 중단한다는 뜻이다.
그대는 이 멈추는 수행을 통해 큰 평화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차분히 가라앉고 마음의 위로를 받을 때,
그대는 '위파사나'라는 명상의 또 다른 부분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것은 깊이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이해하기 위해 깊이 바라보는 것이다.
정신을 집중할 때 그대는 차분히 가라앉아서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 그대는 자신 안에 있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다.
이것이 명상의 두 가지 방식이다.
걷는 명상을 하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호흡하고, 먹고, 일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 에너지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이다.
나는 그것을 신의 영혼이라 부르고 싶다.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