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사(甘露寺)
김부식(金富軾, 1075~1151)
가을이라 산 더 예쁘고 밤이랑 강물 더욱 빛나
흰 새는 아득히 날고 돛배 외로이 떠나가는데
좁은 세상에서 공명이 좇던 내가 부끄러워라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속객부도처 등림의사청)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산형추갱호 강색야유명)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백조고비진 고범독거경)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자참와각상 반세멱공명)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쓴 고려 중엽의 권신이다. 그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과는 달리 사대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역사관을 가졌다. 평
생토록 공명이나 좇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김부식은
은둔하지도 기득권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유달랐던 김부식은 묘청의 난(1135)진압을 빙자해 문학의 라이벌이었던
정지상을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 구한말 역사학자 신채호는 만약 묘청
의 난이 성공했다면 이후 우리 한민족의 기상이 대륙에 뻗었을 것이라
했다. 세 번째 구의 “자조고비진 고범독거경(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은
이백의 시 <경정산(敬亭山>의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중조고비진 고운독
거한)”에서 빌렸다.
[작가소개]
김부식 [ 金富軾 ]
출생 – 사망 : 1075 ~ 1151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은 고려 중기의 유학자·역사가·정치가였다. 이자겸과 묘청의 난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하여,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에 책봉되고, 검교태보 수태위 문하시중 판이부사(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吏部事)에 올랐다. 유교주의적 대의명분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 보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중세의 유교적 합리주의자였다.
<당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한문은 당대의 세계어였다. 이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높은 수준에서 구사하는가. 이 시대 사람들에게 이것은 지상의 과제였다. 12세기 중반에 나온 [삼국사기]는 한문을 공용어로 받아들인 고려 사회가 드디어 이 언어체계를 완벽하게 소화했음을 나타내는 좋은 예이다. 역사서를 쓰는 방법론이 자리 잡혔고, 문장 또한 완벽하게 구사하였다. 김부식이 이런 역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김부식 개인의 능력이기도 했고, 시대가 만들어준 온축의 결과이기도 했다.
흔히 [삼국사기]의 지은이로 김부식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하자면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관리들이 만든 책이다. 그가 책임자로 있으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므로 편의상 지은이라 하는 것이다. 김부식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삼국사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대가 지닌 역량이 그런 수준에 올라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네이버 지식백과] 김부식 [金富軾] - 삼국사기를 쓴, 유교적 합리주의자 (인물한국사, 고운기, 장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