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박인환
신(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의 노정(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情欲)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과 초연(硝煙)이 가득 찬
생(生)과 사(死)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정막(靜寞)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성채(城砦)
그것은 우리와 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시집 <박인환 시선집>(1955)-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직설적, 상징적, 대조적, 비극적
◆ 표현 : 평서형 종결어미의 사용으로 형태상의 통일성을 꾀함.
대조적 상황 설정을 통한 긴장감 제시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신(神)
→ 화자로 하여금 최후의 노정을 찾아보게 해주는 존재. 구원을 향한 모색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
* 우리 → 신에게 최후의 운명을 맡기고 최후의 도피길(피난길)에 오른 시적 화자
* 죽으러 가는 자 →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
* 정욕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 이러한 현실에서 문학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불순한 욕망인지를 자조적으로
드러낸 표현
*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 죽으러 가는 자와 살러 가는 자가 서로 방향을 달리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곳
* 농부의 아들 → 죽으러 가는 자
* 검은 강
→ 죽으러 가는 자와 살러 가는 자, 그 사이에 가로 놓인 메워질 수 없는 거리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 현실과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과 떠나는 군인들의 모습을
모두 포괄한 화자의 정서를 상징화한 시어
◆ 주제 : 전쟁의 비극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신에게 모든 운명을 맡기고 최후의 노정길에 오른 화자
◆ 2연 : 전선으로 떠나는 군인들의 모습
◆ 3 ~ 4연 : 화자의 서정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6 · 25를 배경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피난길에 오른 '우리'와 '죽으러 가는 군인'들의 대조적 묘사를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생사의 경지로 떠나는' 군인과 '피폐한 소설'에 시선을 둔 화자의 대조적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작가소개]
박인환 : 시인
출생 : 1926. 8. 15. 강원도 인제
사망 : 1956. 3. 20.
학력 :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데뷔 : 1946년 국제신보 등단
경력 : 1952 대한해운공사
1951 육군 종군 작가단 종군 기자
1948 자유신문사 문화부 기자
작품 : 도서 72건
<정의>
해방 이후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밤의 미매장」, 「목마와 숙녀」 등을 저술한 시인.개설본관은 밀양(密陽). 강원도 인제 출신. 아버지 박광선(朴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의 4남 2녀 중 장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9년 서울 덕수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舍)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金光均)·이한직(李漢稷)·김수영(金洙暎)·김경린(金璟麟)·오장환(吳章煥) 등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이정숙(李丁淑)과 혼인하였다. 그 해에 자유신문사, 이듬해에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48년에는 김병욱(金秉旭)·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金次榮)·김규동(金奎東)·이봉래(李奉來)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1년에는 육군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한 바 있고, 1955년에는 직장인 대한해운공사의 일 관계로 남해호(南海號) 사무장의 임무를 띠고 미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46년에 시 「거리」를 『국제신보(國際新報)』에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47년에는 시 「남풍」, 영화평론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신천지(新天地)』에, 1948년에는 시 「지하실(地下室)」을 『민성(民聲)』에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49년 김수영·김경린·양병식(梁秉植)·임호권(林虎權) 등과 함께 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광복 후 본격적인 시인들의 등장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1950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밤의 미매장(未埋藏)」·「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작품들은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하여 주목을 끌었다. 1955년에 발간된 『박인환선시집』에 그의 시작품이 망라되어 있으며 특히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서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1956년 작고 1주일 전에 쓰여진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기도 하였다. 1976년 그의 20주기를 맞아 장남 박세형(朴世馨)이 『목마와 숙녀』를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목마와 숙녀와 별과 사랑』(이동하 외,문학세계사,1986)『현대한국시인연구』(김해성,대학문화사,1985)『박인환평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윤석산,영학출판사,1983)『시인박인환과 문학과 그 주변』(김광균 외,근역서재,1982)『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국민서관,1973)「박인환론」(박철석,『현대시학』,1981.2.)「잊을 수 없는 시인의 회상」(안도섭,『자유신문』,1957.9.2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인환(朴寅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