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及時行樂)
여름 내내 베짱이는 노래하며 즐기고, 개미는 비지땀을 흘리며 일했다.
마침내 추운 겨울이 왔다.
개미는 따뜻한 집에서 더운 음식을 먹으며 안락하게 보내고 있을 때,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베짱이는 구걸을 하러 개미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개미는 베짱이를 조롱하며 내쫒는다.
이 우화는 '좋은 시절에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살아라’라는 교훈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
요즘에 와서 소위 꼰대세대라고 블리는 연대기의 사람들이 삶의 모토로 삼았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개미는 보통 1년 정도 살고
베짱이는 그 보다 훨씬 짧은 6개월 가량 산다고 한다.
그리고 베짱이는 여름에서 가을까지만 산다.
단지 그것만 놓고 보면 개미와 베짱이가 겨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루살이가 내일이나 모레를 걱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베짱이는 따뜻할 때 6개월을 살다가 추우면 죽는다.
그러므로 추운 겨울 베짱이가 개미에게 찾아가 구걸을 하다가 조롱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되지 않는다.
그리고 개미가 추운 겨울 따뜻한 거처에서 그동안 모아 놓은 곡식을 배부르게 먹으며 느긋하게 겨울을 보낸다는 것은 넌센스다.
개미는 추운 겨울에도 여왕개미가 낳은 알을 보살피며 죽도록 일을 하다가 죽는다.
개미에게 보상적인 삶이란 거의 없다.
6개월 동안 신나게 놀다 죽는 베짱이나 1년 동안 죽도록 일만 하다 죽는 개미나 결국 한평생이다.
반칠환의 시 '한평생'을 음미해 보자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 오면 하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하루살이는 시궁창에서 태어나 하루를 살았지만 충실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간다.
매미는 7년을 넘게 땅 속에 있다 나와, 7일을 살고 가지만 그 짧은 생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누리다 간다.
거북이는 느릿느릿 걸어도 제 갈 길 다 가고 제 할 일 다 하며 천 년을 산다.
하루를 살던 천 년을 살던 모두가 한평생이다. 한평생을 즐겁고 여유롭게 살다 간다.
그런데 사람은 기뻐할 일도 즐거워할 일도 모두 다음으로 미룬다. 좀 더 여유롭고 풍족한 날이 오면 그 때 한꺼번에 하겠다고 미루다 끝내 가뿐 숨만 몰아쉬다 간다.
하루살이는 하루살이대로 매미는 매미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모두가 후회 없는 삶을 사는데, 유독 인간만이 후회를 남기는 삶을 살다 가는 것 같다.
재산이 13조로 가만 있어도 매달 3천억원 의 돈이 불어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고인이 되기 전 병상에서 쓴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진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겠지요.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사람들이여!
너무 총망히 살지들 말고
행복을 위해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
영웅호걸, 경국지색, 억만장자도 결국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는
'죽은 후 천추만세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것이
살아생전에 탁주 한 잔만 못하다
(死後千秋萬歲之名
不如生時濁酒一杯)'고 했다.
별밭골 오르는 길에 탁주 몇 병을 샀다.
내일 날이 좋으면 선후배 몇 분을 불러 대원사 둘레길을 돌아와 술타령을 해 볼 요랑이다.
아직 산을 오를 수 있고, 술타령도 벌일 수 있고, 호시절 무용담도 늘어 놓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는가?
급시행락(及時行樂)이라는 말이 있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그 때 그때 즐긴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일상을 향락으로 일관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을 힘써 개척해 나가며 그 일과 과정을 즐기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일만 하다가 죽는 개미의 일생이 불행하다고만 여기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 어쩌면 개미는 일을 하는 순간 순간마다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탁주와 안주거리를 냉장고에 넣고
핸드폰을 검색해 대학시절 즐겨 듣던 존 덴버의 'Today'를 재생한다.
Today while the blossoms
still cling to the vine
I'll taste your strawberries
I'll drink your sweet wine
A million tomorrows shall all pass away
Ere I forget all the joy that is mine, today
오늘 꽃들이 아직 덩굴에 매달려 있을 동안에
당신의 열매를 맛보고
당신의 달콤한 와인을 마실 것입니다
오늘 누렸던 모든 기쁨이 잊혀지려면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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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be contented with
yesterday's glory
I can't live on promises
winter to spring
Today is my moment
and now is my story
I'll laugh and I'll cry and I'll sing
난 지나간 영광 따위엔 만족할 수 없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그런 기약으로도 살 수 없답니다
오늘이 바로 나의 순간이고
오늘이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오늘 웃고 울고 노래할 것입 니다
지리산 중턱 별밭골에서 池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