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에서 육지분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금 여기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입니다. 지난 여름, 제주를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조직된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하러 제주에 왔었습니다. 시시각각 태풍 나크리가 다가오는 속에서, 7월 29일~8월 1일까지 나흘 간, 제주도의 남북을 가로질러 제주도청에서 목적지인 강정마을까지 도보행진을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전태일노동대학」의 3학년 ‘마음수련 과정’ 인솔자로 이곳에 왔습니다. 오늘 오전 9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첫 일정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가서 억울하고 분한 제주의 현대사를 보고 들었습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사려니숲길 곁의 ‘이덕구 산전(山田)’을 찾았습니다. ‘이덕구 산전’은 4.3항쟁 당시 군부대의 토벌에 맞서 무력으로 응전했던 이덕구 사령관의 부대가 움막을 치고 생활했던 곳입니다. 토벌대에 사살된 그의 시체는 십자가 형틀에 묶인 모습으로, 4.3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1947년 3.1절 시위대 살상 사건’의 현장인 관덕정 광장에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조천읍 북촌리의 너븐숭이 학살현장과 그 인근 선흘리의 ‘낙선동 4.3성(城)’을 둘러봤습니다. 너븐숭이는 군인 두 명이 다쳤다는 이유로 단 이틀 사이에 어린아이를 비롯한 마을사람 6백여 명을 학살한 야만의 현장입니다. 이곳은 또한 산자들이 숨죽이지 않고 ‘아이고’라는 울음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마을입니다. 낙선동 유적은 무장부대로부터 주민들을 차단하기 위하여 주민들을 동원하여 돌로 성벽을 쌓은 다음 주민들을 그 안에 가두어 놓은 집단수용소였습니다. 그곳은 또한 부엌과 방의 구분도 없고 여러 세대가 한 집에 억새로 칸을 막고 함께 사는 돼지우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다음으로 남쪽인 성산읍으로 넘어와 일출봉 가는 길목에 있는 터진목 학살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이곳은 서북청년단 출신들이 경찰이 되어 인근 주민들을 학살한 곳입니다.
오늘의 4.3유적 답사에서 우리 일행이 공동으로 확인한 것은 제주도는 민중학살의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체 인구 30만 명 가운데 1/10에 상당하는 3만 명 이상이 1948~1949년의 단 일 년 사이에 학살된 킬링필드였습니다.
내일은 대정읍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과 송악산 일대의 일본군의 지하기지들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알뜨르 비행장 터에서는 요새화된 비행기 격납고와 항공부대 지휘소가 있던 지하벙커를 둘러볼 생각입니다.
또 그곳에 인접해 있는 ‘섯알오름 학살터’도 돌아볼 생각입니다. 그곳은 6.25전쟁 발발 직후 4.3사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을 또다시 예비검속자로 끌고 가서 재판 없이 학살한 곳입니다. 이 희생자들의 유해는 탄압으로 접근조차 못하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 겨우 발굴됐습니다. 누구의 뼈인지 구분할 수 없어 유골 모두를 한곳에 묻었는데, 그곳을 백조일손의 묘라고 합니다. 여러 조상이 함께 묻힌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 인근에 송악산이 있고 그 산에 동굴진지가 있습니다. 그 동굴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만주에서 제주도로 급파된 일본 관동군이, 제주도에 미군이 상륙할 경우 오키나와에서 했던 것처럼 옥쇄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지은 거대한 동굴진지입니다. 이곳에는 또, 일본군이 물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미군에 맞서기 위해 만든 여러 종류의 자살특공대 중의 하나인, ‘카이텐’이라는 인간어뢰를 발진시키기 위한 해안 동굴진지도 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공사 현장 입구에서 매일 아침에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취지의 일백 배(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 강정 해군기지는 계속 공사가 진척되고 있고, 방파제가 범섬 쪽으로 제법 길게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이 복구되고 제주 남서부 일대가 태평양전쟁 때처럼 전쟁기지로 바뀔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강정항은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민군복합형 관광 미항」이 아니라 핵잠수함이 정박하는 미 해군의 전쟁용 군항이 됩니다. 그러면 제주도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땅이 아니라 전쟁의 땅이 되는 데 맞서 저항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은 또 갖은 모진 탄압을 가할 것입니다. 상상하기도 끔직한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육지에 사는 여러분, ‘평화의 땅 제주도’의 평화가 위험합니다. 제주도에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아름답고 평화로운 강정마을이 위험합니다. 사라질지 모릅니다. 강정마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지켜주십시오.
첫댓글 전태일 노동대학 자체 프로그램 이름. 이름만 같을 뿐 내용은 아무 상관이 없음. 그리고 마음수련도 종류가 워낙 다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