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 27
칼빈의 창세기 논증(2)
7. 이제 하나님께 귀속시켜야 될 이 세상을 거울로 묘사하는 가운데 우리의 눈이 하늘과 땅의 구조가 의미하고 있는 것을 분별할 만큼 충분히 깨끗하게 닦아져 있다거나 또는 여기서 얻게될 지식이 구원을 얻는데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피조물들을 이용하여 그분 자신에게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도저히 변명하지 못하게 하시며 그분은 필요에 따라서 새로운 치료방법을 추가하시고 또한 최소한 새로운 도움으로 우리 마음의 무지를 도와주셨습니다. 우리의 인도자이며 선생인 성경을 통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가 미처 알아 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밝혀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일들을 깨닫도록 거의 강요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마치 안경으로 우리의 희미한 시력을 도와서 밝게 해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점에 관하여 이미 우리가 관찰한 대로 모세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늘과 땅의 침묵적인 교훈으로 충분하다면 모세의 교훈은 불필요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선포로 우리 자신들의 주의(注意)를 자극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려고 우리는 이 자연의 장면에 배치하신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려고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것들은 단순한 증거들로 보지 말고 동시에 이 자연에서 전시되고 있는 모든 풍요를 향유하게 하시며 또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배치시키신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그는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우리가 이용하도록 작정하였으며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건설자이시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선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를 통하여 그분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우며 그분의 지혜와 선하심과 특별히 인류에 대한 그분의 부드러운 배려가 얼마나 감탄할 만한가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은 그분 자신의 생생하고 명백한 모형이기 때문에 그는 이 점에 대하여 우리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 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을 수가 없다는 그 사도의 주장을 확증하고 있습니다(히11:3). 신앙은 원래 이런 상태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모세의 사역으로 가르침을 받는 우리는 이제 어리석고 하찮은 공상 가운데서 방황하지 않고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참된 형상 가운데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8.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선포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반대를 받을 수도 있으니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고전1:21).
그는 그렇게 하여 다음의 사실을 암시하고 있으니, 즉 사람들이 가시적인 것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을 찾고 있으나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즉시 바쳐야 되는 것과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 제시하며 오직 이 한가지 목적에 우리를 붙잡아 두는 복음으로 시작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답하노니, 철학자로서 이 우주 창조자의 기교에 대하여 추론하는 것은 헛된 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말씀으로 먼저 겸손해져서 자신들의 지적인 지혜를 완전히 십자가의 미련함에 맡기는 것을 터득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놀라운 세상 창조의 오묘성을 추론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21).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복음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기 전에는 어느 곳에서나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에게 이르게 하는 방법을 절대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마차를 타고 가장 비천한 곳에서 나와 모든 천체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전에는 절대로 그 결과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믿음으로 이해하고 귀로 듣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훨씬 능가해 있는 것들을 믿음으로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매일의 영양소를 공급하는 과실을 내는 땅은 우리가 장차 가게 될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바쳐서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십니다. 해와 별들이 빛나므로 하늘이 우리의 신체적인 눈을 밝게 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 되시며 의(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 속에 빛을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기가 우리에게 호흡하는 텅빈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왕국은 모든 것을 채우시며 그분의 영적인 은혜는 모든 것을 통하여 발산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우리가 감정을 가지고 하늘과 땅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진정한 지식에 대하여 확신을 추구하는 것을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 뿐만 아니라 그분의 손과 발까지도 우리의 생각 속에 형상화 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은밀한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손과 발로 우리는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그분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게 되면 바로 그 순간, 그 자체에는 제 아무리 거대하거나 또한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것에 관하여 우리는 반드시 속지 말아야 합니다.
9. 그리고 사실상 이 책에서 모세가 세상의 창조로 시작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제목에 대하여 우리에게 한계를 그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들이 상호 관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성의 빛을 인간에게 부여하시고 아주 많은 특전으로 장식해 주셨으나 인간 자신의 잘못으로 타락하여 그 결과로 그가 얻었던 모든 혜택들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후에 하나님의 긍휼로 인간은 다시 이전에 몰수당했던 생명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과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인애로 말미암아 되어진다는 것들이 상호 연관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은혜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입양된 자들의 모임이 이 지상에 언제나 있게 하려는 것이며 이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려는 것 등의 이 모든 사실들도 서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렇게 한계를 긋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사의 전체 영역이 지향하고 있는 목적은 인류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돌보신 그분의 특별한 배려를 나타내사 그분에 의하여 보존되어져 왔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본서의 주요한 논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창조된 후에 인간을 마치 극장 안에서와 같이 그 안에 살게 하셔서 인간이 그의 위와 아래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만드신 창조자를 경건하게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모든 것들은 한결같이 인간이 사용하도록 작정되었으며 그래서 보다 많은 의무를 지고 있는 인간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에 헌신하고 전념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인간은 깨달음과 이성으로 부여받아서 야수적인 동물과는 구별되어 보다 좋은 생활을 생각하여, 그 인간 자신의 인격에 새겨져 있는 형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직접 나가게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후에 그것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결별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모든 정직성을 박탈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인간을 모든 선이 완전히 결핍된 자이며 맹인이 되어 깨닫지를 못하며 마음이 외곡되었고 모든 부분이 부패된 자이며, 또한 영원한 죽음의 선고하에 있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인간이 회복되는 역사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그리스도가 구속의 혜택을 발산해 주고 계십니다. 이 지점에서부터 모세는 계속적으로 교회를 다스리고 보호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설명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의 구원이 제공되고 있다고 가르치며 조상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우리를 격려하며 십자가를 견디며 끈기 있게 나아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책에서 모든 내용을 적절하게 소화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그의 마음을 이 주요한 주제들에 몰두시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특별히 아담이 자신의 절망적인 타락으로 자신과 그의 모든 후손들을 파멸케 한 후에 다음의 사실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었으며 또한 교회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두기를 바랍니다. 즉 깊은 어둠에서 구출된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으로 이 생명을 받게 되었다는 것과 또한 그때 이후로 살았던 모든 경건한 자들은 맨 처음에 아브라함이 타락으로부터 다시 일으킴을 받았던 그 구원의 동일한 약속으로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관찰해야 합니다.
10. 그러므로 교회의 항구적인 계승은 거룩한 조상들이 그들에게 제공된 약속을 믿음으로 완전히 포용하고 한 사람 한사람씩 하나님의 가족으로 모이게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 모두가 공통된 생활을 하게 하신 이 원천에서 유출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교회의 단체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고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신앙의 교통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실을 우리는 주의깊게 주시하여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임명되었으므로 그들 자신들은 하나님이 선택하고 뽑으신 그분의 백성으로 인정하도록 그들에게 특별한 언급을 하여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에서 되어진 이양자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하고 이 세상에는 다른 하나님이나 다른 올바른 신앙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그가 특별히 설명하며 그들을 가르쳤으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기를 원하는 자와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다른 길을 따를 것이 아니라 오직 여기서 밝혀지고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전 세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입증하고자 하는 그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이 오직 진정한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믿음의 시작인 것처럼 우리가 족장들의 동료가 된다는 사실이 이 신앙의 특별한 확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아직 나타나지 않으셨을 때에 그들의 구원의 약속으로 그분을 모셔들였으므로 그와 같이 우리도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동료의 관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실에서 우리는 순수하고 정당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사단의 기만과 인간의 의곡된 무모성으로 줄곧 조작되어 모두 혼합되어진 예배들과의 차이점을 추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의 정치는 상당히 심사숙고를 해야 될 과제입니다. 그러면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그 교회의 항구적인 감독자이며 통치자이시며 십자가의 전쟁에서 교회를 지켜주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정말로 교회의 이상야릇한 분쟁들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제시되고 있으며, 또는 오히려 그 과정이 우리들의 눈앞에 마치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행복한 불멸성의 푯대를 향하여 질주해 가는 것이 거룩한 조상들과 함께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