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아 회원님들 재미 삼아 읽으라고 몇 자 적어봅니다.
예전에 허준이라는 의학 드라마를 재미 있게 봤습니다. 얼마 전에 MBC에서 시청률 올리기의 일환으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허준은 사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허준'에는 많은 명장면과 명대사가 나옵니다. 전 그 중 다음 세 가지 명장면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뽑고 싶습니다.
1. 약을 잘못 써서 눈이 먼 노파가 허준에게 찾아옵니다. 그 잘못이 허준에게도 약간은 있어 허준은 스승 유의태가 오길 기다립니다.
유의태가 허준을 불러 치료 방법을 하달합니다. 뜸을 써서 치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치료방에 앉아 치료를 하다가 이런 경우엔 침을 써야 하는데 뜸을 쓰라는 스승의 하달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학 지식으로는 침을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침을 쓰자니 스승의 명령이 걸립니다.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허준은 용기를 내어 침을 써서 눈을 뜨게 합니다.
이런 딜레마가 번역에도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입니다. 하나는 CAT Tool을 써서 하는 번역의 경우입니다. 보통 TM이 제공되는 데 메모리에 있는 기번역을 반드시 참고해야 합니다. 근데, 메모리에 있다고 무조건 가져다 썼다가는 오역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어도 마찬가지고이고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메모리도 있으니까요. 이럴 땐 자기 주관대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사전이나 인터넷으로 찾은 용어를 그대로 대입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고수나 업체 링귀시트(리뷰어)의 의견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예전에 어느 고수가 help 다음에 동사가 오면 help를 무조건 쉽게 ~하다.라고 번역하라고 알려 준적이 있었습니다. 이 방법도 좋은 번역 테크닉이긴 한데 무조건 대입했다가는 오역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도움이 되다', 아니면 그냥 help를 무시하고 본동사만 번역해도 무방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예는 많습니다. 한마디로 내용이 파악되면 이런 경우는 쉽게 해결됩니다.
2. 허준이 한 번의 과거 응시를 자신의 잘못으로 놓치고, 두 번째 과거에서 완벽한 시험 답압지를 내놓고 당당하게 시험장을 걸어나옵니다.
여러분도 느끼시는 것이지만 번역을 오래 하다보면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갑자기 번역, 더 정확히 말하면 글(영어건 한국어건)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옵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요.
3. 허준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허준이 어떻게 죽을까 궁금했는데, 전염병을 고치다가 자신도 전염병으로 죽습니다.
근데 서두에두 말했다시피 허준은 어른을 위한 동화입니다. 일이 밀려 키보드 앞에서 죽을 것 같다고 느끼면 즉시 일을 멈추고 무조건 쉬십시요. 얼마 전에 하루키 신작을 읽었는데 짜증이 많이 났습니다. 출판사에 전화할려다가 말았습니다. 번역이나 교정 교열이 어떻게 됐길래 오타, 맞춤법 그리고 잘못된 문장 구조(한 문장에 목적어가 두 개)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책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지장은 없었습니다. 즉, 이렇게 말하면 프로의식이 없다고 느끼실지 모르지만, 몇 군데 오타났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습니다. 의사와는 다릅니다. 의사가 오진을 하면 환자 생명이 왔다갔다하지만 번역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사명의식 없이 번역에 임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닌지라 실력 있는 번역사라도 실수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을 상해서 가면서까지 너무 일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