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까지만 해도 이런 초막이 대피소 역활을 했다. 지금의 대피소 자리에 있던 1955년의 노고단 초막의 모습
1970년대의 노고단 주변의 야영객들
1972년에야 현대식 건물로 노고단 대피소가 지어지고 지금 피아골을 맡고 잇는 함태식님이 1987년까지 운영을 하셨다고 한다.
그 뒤 지금의 대피소가 지어지면서 함태식님은 피아골로 옮기셨고 사진 가운데 검은 셔스를 입은 분이 함태식님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던 해 지금의 취사장 건물에서의 우천 허만수 선생과 거림쪽으로 2km아래에 있던 우천 선생의 초막.
우천 선생은 지리산이 망가지는 것을 바라 보다가 1975년에 칠선계곡으로 들어 간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1980년대 지리산 입장료
경남인의 기상에서 한국인의 기상으로
천왕봉 정상석. 전국의 산악인이 반발하여 경남인이라는 글씨를 한국인으로 바꿔서 지금에 이른다.
한국인의 기상 이 곳에서 발원하다
天王峰 정상 표지석 뒷면에는 “韓國人의 氣象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음각되어 있는데 원래는 이곳에 있던 표지석에는 남명 선생이 읊었다고 하는 “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이라는 시구가 적혀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80년대 초 5공 실세이면서 경남 산청/함양의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권익현씨가 이곳에 정상표지석을 세우면서(천왕봉의 지적은 경남 산청군이다) “慶南人의 氣象 여기서 發源되다”고 적어놓은 것을 후에 慶南人이 嶺南人으로 바뀌고, 다시 嶺南人이 韓國人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상표지석 후면을 눈여겨보면 그 흔적을 역력히 볼 수 있읍니다.
1970년까지 천왕봉을 지키던 김순용옹..천왕봉 아래 움막에서 기거하며 마애불과 성모상을 지켰는데 마애음각상은 도난후 행방이 묘연하고 성모상은 머리가 두 동강나서 버려진 것을 수리하여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세석산장
1980년대 매점 가격표 그때 물가에 비해선 좀 비싸게 판매한거같네요~ 80년대 후반 물가를 고려해도 상당히 비싸다... 그러나 산장까지 올리려면 품값을 고려한다면....가격산정 : 물품원가+운반비+청소비+이윤
한가지 또... 물건이 희소한 곳에서 물품가치가 뛰는 상황을 보면, 재난 시 어떤 물품들이 가치를 가질 지 알수도 있는 대목.
제석봉의 고사목
공사중인 장터목 대피소
세석평전에 펼쳐진 텐트촌
자연을 @@하는? 물론 본인도 그 1인 중 하나.
지금의 세석 산장 터에 있던 야영장.
무분별한 야영과 취사로 철쭉 군락지는 사라져 가고 1972년 부터 시작된 세석 철쭉제는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단다. 23년간 진행되다가 1995년에야 철쭉제는 없어졌다. 자연을 아끼는 마음과 실천적 태도는 몸에 베어 있어야... 어려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켜주는 것 중 하나.
1980년대 지리산 세석평전
1980년대 지리산 천왕봉 일출맞이
1980년대 중천대피소
1980년대 노고단대피소 모습
영신봉의 모습입니다
폐허로 방치된 건물을 진주 산악인인 민병태씨가 수리하고 보수하여1987년부터 30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지금의 건물과 뼈대는 같고 겉만 보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민병태씨가 당시 35살에 지리산에 홀로 들어 오셨다고 한다.
지리산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지 못 할 일이였을것이다. 지금도 별로 돈이 안되는데 입구의 현판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걸려있다.
첫댓글 화엄사 위에 있는 야영장에서 텐트치고 잤던기억이.
나머지는 무박이나.대피소에서.
벽소령 처마밑에서 은박담요 깔고 잤던 기억도.
은박돗자리 깔판 크기로 잘라 80리터 배낭 속 짐 싸듯 넣어 각 잡고 여름 침낭, 비비카바(부피 무게 탓 ) 챙겨 날진수통 속에 물 데워 채우고 자곤 합니다
85년에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종주하던 기억이~
온가족 옛기억 되살려 생존체험 겸 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재밌네요 정말 80년대까지 산에서 취사해서 밥해먹고 아무데서나 텐트치고 자고 했죠 ㅎ
현역 때 생각해보세요. 장작불 반합밥 이후 고체연료. 물 겨우 데워 설익은 쇠밥....
79년 여름에 조카 친구들과 7명이 무주 구천동에서, 덕유산 경유 지리산 천황봉과 노고단을 거쳐 남원으로 내려오다가,
간첩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체포당했던 적이 있었네요,
우리가 봐도 거지꼴였네요.ㅎ
우드랜드 고어택스나 배낭 매고 다니다 보면 간혹 임검을 당하곤 합니다
예전에 군용 A텐트지고 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떠난지 오래되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도 하고요 아.... 지리산아 잘있느뇨...
도가니 두짝을 다 수술도 하고, 자연을 사릉하는 진짜 길은 아예 안가는것이라 등산 안가는지 어언 8년이 넘어갑니다.
그동안 사 논 야영장비는 어쩌다가 가는 낚시꾼 님들 따라가는것과 어쩌다가 가는 캠핑장 빼놓곤 잘 안쓰게 되더군요.
함태식 선생님 돌아가신지 몇년 되었습니다.뵙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