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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결혼한지가 27년이 지나도록 남들 다가는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아내를 대할 때 마다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못난 사람 만나서 너무 고생을 많이 시킨 것이 안쓰럽고 민망해 가끔 교회 지하 기도실을 찾아가 하나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어 기도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결혼할 당시는 너무 생활의 여유가 없을 만큼 어려웠던 탓도 있었지만 결혼식 날 마침 장인어른께서 쓰러지시는 바람에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하려던 계획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 이후로 신혼여행은커녕 부부가 한 번도 제대로 함께 여행이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을 만큼 환경에 메이고 삶에 쫓기며 정신없이 살아왔다고 해야 보다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내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 동기는 다름 아닌 계속되는 사업의 실패와 가난 때문이었으며 내 힘으로 살수 없다는 절박감으로 인해 마침내 주님 앞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되었고 고난 때문에 더욱 주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크나큰 은혜이며 축복이란 말인가?
물질의 고통은 다른 어떤 질병의 고통과 갑작스런 사고의 고통들에 비할 바가 아니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나의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고난으로 인해 도리어 축복을 받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니 믿는 자에게 주시는 고난은 어쩌면 축복을 감추고 있는 보화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남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고 생각되며 그로 인해 내 아내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많은 고생을 감당해야 했던 게 사실이다.
지난 12여년 년 전의 일로 적자투성이의 가게를 처분하고자 했으나 쉽게 정리되지 않았고 수입이 없어 생활에 위협을 받게 되자 아내는 얼마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시간제로 음식점의 주방일이나 조그만 공장에서 보조하는 일들을 하러 다녔는데 돈을 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너무도 뼈아프게 절실히 경험할 수 있었던 때가 아마도 그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돈을 벌겠다고 일을 시작한지가 한 2개월 정도 지났을까?
다리에 관절염이 생겨 걷기도 불편할 만큼 심각해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불편한 몸이었지만 하는 수없이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낫기를 기도하며 가정과 교회 일만 전념하고 지냈는데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정말 신기하게도 걷기에도 불편했던 무릎의 관절염이 다 낳아서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그 일로 인해 아내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아팠던 몸이 회복되자 아이들도 걱정되고 생활의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아내는 자신이 얼마의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는지 시간제 파출부도 나가고 또 한동안 1~2만 원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 힘겨운 일들을 마다 않고 식당 일이나 공장 일들을 하러 다녔는데 생활에 얼마만큼 도움은 되었겠으나 또다시 관절염이 재발되어 통증을 호소했고 어쩔 수없이 하던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사는 게 고달프고 힘든 일이 많은 것 때문에 아내는 기도하는 일만은 쉴 수가 없었던지 아픈 다리를 끌고서라도 교회를 찾아가 어려운 사정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아내가 힘들게 일해서 얻은 작은 돈이나마 당시 어려운 생활에 도움이 되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며 궁핍하기 그지없는 없는 한 가정의 주부로서 아내가 겪어야 했을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니 무능하기만 한 가장으로서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어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한 동안 아내는 정한 시간에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는 것과 전과 다름없이 교회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았고 맡고 있던 권찰의 직분을 참으로 소중하게 여기며 삶의 중심이 온통 하나님께로 향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는데 가장 가까이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아내의 하나님에 대한 열정은 너무도 간절했고 숭고하게 느껴질 만큼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으며 감히 함부로 할 수없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는 교회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마치 거짓말처럼 그 아프던 몸이 씻은 듯이 나아지는 걸 경험하게 되는데 아내는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것이라고 거듭 말하지만 난 그 때 까지만 해도 그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고 낳을 때가 되어 낳았겠지 하는 정도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몸이 건강하게 되니까 아내는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와 아이들 걱정에 마땅한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다행히도 교회 가까운 곳의 한 슈퍼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주일날 쉬는 것은 물론 구역모임이 있는 금요일은 오전만 일하고 오후에는 권찰의 소임을 위해 구역모임에 참여할 수가 있도록 배려해줘서 좋아했으며 급여도 당시 월50만 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한 동안은 그 곳에서 그런 대로 안정적인 일을 하며 지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남의 일을 해주고 돈을 버는 일이 어디 쉬운 게 있겠는가?
슈퍼의 주인인 젊은 부부는 상품을 정리하는 일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살림하는 일 까지도 요구했고 아내는 그들의 식탁을 준비하는 일까지도 맡아 하게 되었는데 전에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니며 그 날 그 날 파출부일을 하는 것 보다는 낳을지 모르나 그일 또한 고달프고 힘겨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을까? 아내는 이번에는 극심한 빈혈증세로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움직이는 것도 힘들만큼 심해져 보다 못해 일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렸다.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똑같은 일을 겪고 나니 아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한편 두렵기까지 했고 더 이상 일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집안에 주부가 건강해야지 주부가 아프면 그것처럼 곤란한 일은 없을 거라며 앞으로는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는 일할 생각조차 말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아내는 하던 일을 그만둔 후에 일 때문에 소홀해진 교회 일과 기도생활에만 전념하며 지내게 되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모르게 어지러움 때문에 고통 받던 빈혈증세가 점차 호전되었고 전과 다름없이 평소의 건강한 모습을 회복했으며 다시 활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 당시 가정의 경제사정이 너무도 어려워 아내는 선교회모임 때 내야하는 회비마저도 염려해야했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정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는지 백일작정 새벽기도를 시작해서 끝나는가 싶더니 다시 이어서 10개월 작정 철야기도(밤 11시에 가면 새벽6시에 돌아옴)까지 감행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만 전심전력이었다.
우리가정의 사정을 잘 아는 아내의 교회 친구 집사님 한 분이 그 때 내가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생활이 궁핍하여 곤란한 형편인대도 아내가 매일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한심했던지 하루는 아내에게 어려우면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 일을 해야 먹고살지 기도만 하면 쌀이 나오느냐며 핀잔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 와서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을 들어야하는 그 때의 나의 심정이 정말로 오죽했으랴.
돈을 벌고 싶지 않아서 안 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한 돈을 버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 후 주님의 은혜로 가게는 정리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보험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도 없고 마음이 곤고할 때면 가끔 교회 지하기도실을 찾아가 나의 답답한 사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 하던 중 아내가 너무 고생하는 것이 마음 아파서 아내를 위해 이런 내용의 기도를 종종 드렸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지금 갈 곳도 없고 어찌할 수 없어 이 곳에 와 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그리고 제 아내인 이 집사를 기억해 주십시요. 못난 저를 만나서 그 동안 너무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남들 다가는 신혼여행도 못 가고 제대로 좋은 것 먹고 입지도 못했는데 제가 힘이 없어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네요.
불쌍히 여겨 주시고 제가 못해 주는 것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루어 주십시요"
내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고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환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셨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셨으며 나를 포기하고 무릎 꿇어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연단을 거치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가정에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물 붓듯 부어 주셨는데 내가 하는 보험 일을 통해서 불과 3년 만에 물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좁은 셋집에서 교회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도록 소원하던 장막을 허락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다 잘되어 부모의 기쁨이 되게 하셨으니 이것이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이제는 주변에 기도하면 쌀이 나오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교회모임에 나갈 때에 회비 내는 걱정도 없으니 아내야 말로 온갖 은혜를 바 받고 있다고 자랑해도 그 고백이야말로 정말 심감 나는 고백이 아닐까 싶다.
그 동안 아내와 27년 넘게 살면서 신혼여행은커녕 단둘이 여행이라는 것을 가본 일이 없었고 해외라고는 제주도에도 한 번 가보지 못하다가 지난해 4월에는 마침 교회에서 좋은 기회가 있어 일주일간 인도네시아 "비젼트립"여행을 아내와 함께 다녀오는 축복을 누리기도 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처음엔 나 혼자 가기로 했으나 정말 생각지 않게 교회 어느 집사님의 특별한 배려(아내의 경비일체를 부담)로 너무도 고맙게도 아내인 이 집사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던 신혼여행에 대한 부담을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여행으로 해결해 주셨으니 이 가슴 벅찬 감격을 어찌 말하지 않고 잠잠할 수가 있겠는가?
2002년 가을에는 강원도 태백으로 모처럼 단 둘만의 가을여행을 갈 수가 있었는데 그 곳에 있는 한 교회에서 수요일 저녁예배시간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작은 이야기지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었으며 작년 봄에는 교회에서 수련회를 제주도로 가게 되어 처음으로 2박3일간 제주도여행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으니 아내와 함께 했던 세 번의 여행이 내게는 두고두고 기억될 잊을 수 없는 아주 뜻 깊은 여행이 아닐 수가 없다.
연약한자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을 주셨고 나의 모든 짐을 맡아 주시며 순간순간 지키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시는 손길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못난 사람 만나서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아내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고락을 함께 한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며 앞으로 아내에게 좀 더 잘 해야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다져 본다.
아내는 지금도 가정과 교회를 오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고 있으며 기도하는 아내 덕분에 나 역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안수집사가 되어 작은 일이나마 섬김의 일들을 감당하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 인가를 나의 가정을 통해서 실제로 체험케 하신 주님께 너무도 감사하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한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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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할렐루야,승리하셨네요 저희 가정 또한 머자않아 믿음의가정으로 세워질 것을 믿습니다.
좋은 간증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