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안에서 기도
엡 2:18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 성령 안에서’이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오늘은 기도가 왜 어려운가 하는 것을 성령의 차원에서 몇가지를 살펴보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대부분의 신자들이 기도를 어렵다 말한다. 기도가 어려운 이유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허공을 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가지 이유는 집중성 때문이다. 기도할 때 자꾸 다른 생각이 끼어드는 것이다. 기도를 크게 한다고 해서 집중에 성공한 예는 드물다. 하나님 앞에 집중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것 쪽으로만 도망간다. 임재를 느낄 수 없고, 집중이 안되는 것은 같이 맞물리는 싸움이다.
성경은 원인과 방법으로써 신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결과로 구별한다. 즉 ‘살아 있는가’와 ‘죽어 있는가’를 말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만큼 살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불신자는 영적인 감각이 없다.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생명과 진리에 무관심하며, 증오하고, 싫어하고, 무가치하게 여긴다.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점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기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사실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기도란 어느 개인이든지 누구 때문에 할 수 없고, 누구를 인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영적갈급에 의하여, 그 영적갈급을 창조받고 도전받고 촉구받기 때문에 시작하는 새로난 자의 특권이요 숙제요 생명력이다. 성령은 우리의 기도에 도움이 되시는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하신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발동이 걸리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자인가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 일을 성령이 하신다.
기도는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했어도 기도제목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도는 결코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문제거리 때문에 시작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문제를 풀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긍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를 이해 할 수 없기에 시작을 그것으로 출발하게 할 수는 있다. 성령은 인간적인 동기, 세상적인 이유 때문에 기도를 시작했을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영적 차원으로 끌어 들이시고야 만다.
우리는 오늘도 성령을 따라 구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의 가난함을 못보고 세상의 문제거리만 들고 하나님 앞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가난함은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해결하거나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필요성,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과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해 주셔야 하는 것에 대한 집중적인 기도제목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 안에 성령은 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와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는 어렵다. 그분만이 우리를 참다운 기도로 인도하시고, 참다웁게 하나님 앞으로 가게 하시며, 우리들을 하나님과 만날 가치가 있게 하신다. 우리는 거기 가서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지적받으며 또한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런 나의 궁핍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가지신 부요함과 영광과 능력을 본다.
기도란 왜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성령으로’ 들어가야만 되는가?
우리가 제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자 그 간격을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 앞에 감히 나갈 수 없는 나를 본다. 이 간격이 기도로 메꾸어지지 않는다. 회개로 메꾸어지지 않는다. ‘주님께서 메꾸어 놓으셨다’ 이것이 기도가 갖는 방법 이전의 메세지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간격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감격의 눈물과, 내가 누군가를 본 겸손과, 처철함과 동시에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간격을 뛰어 넘게 하여 당당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 축복과 그 기적의 감동이 있으며, 이 감동이 우리로 하여금 찬송과 기도를 시작하게 하고 마무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도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엡 1:3)”
왜 이것이 가능한 기도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도 우리 스스로를 근거로 해서 자랑스러울 수 없는 자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이 신분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얻은 은혜와 특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을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은혜인 것을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에게 확인되고 그 앞에 내가 당당히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가 확인이 되어야 한다.
무슨 요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우리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따라 정당한 기도문이 나오도록 습관을 들여야 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에서 ‘내가 어떻게 기도를 할 수 있는 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성령으로 기도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