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 / 김민정

비평/에세이 김민정의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産」해설 / 신형철, 김민정 김민정의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産」해설 / 신형철, 김민정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産 —마음이 아주아주 우주 5 김민정 구운 갈치를 보면 일단 우리 갈치 같지 그런데 제주 아니고는 대부분이 세네갈産 갈치는 낚는 거라지 은빛 비늘에 상처 나면 사가지를 않는다지 그보다는 잡히지를 않는다지 갈치가 즐기는 물 온도가 18도라나 우아하기도 하지 즐기는 물 온도를 알기도 하고 어쨌거나 갈치의 원산지를 검은 매직으로 새내갈, 새대가리로 읽게 만든 생선구이집도 두엇 가봤단 말이지 세네갈, 축구 말고 아는 거라곤 시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세네갈,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도 시 좀 읽으세요 했다가 텔레비전 책 프로그램에서 통 편집도 당하게 만든 세네갈, 수도는 다카르 국가는 ‘모든 국민이 그대의 코라와 발라폰을 친다네’ 코라와 발라폰을 치며 놀라고 대통령이 권하는 놀라운 나라라니 세네갈, 녹색 심장의 섬유여 형제들이여, 어깨에서 어깨로 모여라 세네갈인들이여 일어나라 바다와 봄에, 스텝과 숲에 들어가라* 역시나 시인 대통령이 써서 그런가 보우하사도 없고 일편단심도 없고 충성도 없고 만세도 없구나 세네갈, 우리는 갈치를 수입하고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수출하고 마키 살 현 세네갈 대통령을 초청한 자리까지는 좋았는데 방한 기념으로 수건은 왜 찍나 그걸 왜 목에 둘둘 감나 복싱 하나 주무 하나 결국엔 한번 해보겠다는 심사인가 ‘새마을리더 봉사단 파견을 통한 해외 시범마을 조성사업’ 돔보알라르바와 딸바흘레, 이 두 마을이 성공했다는데 본 사람이 있어야 믿지 가본 사람이 아니라야 믿지 재세네갈한인회 회장보다 부회장이 낫지 않을까 헛된 믿음으로 찍히고 말 발등이라면 재기니한인회, 재말리한인회 두 회장에게 속아보는 게 차라리 나을까 세네갈, 갈치 먹다 알게 된 거지만 사실 갈치보다 먹어주는 게 앵무새라니까 세네갈産 앵무를 한국서들 사고 판다지 아프리카라는 연두 아프리카라는 노랑 아프리카라는 잿빛 삼색의 세네갈, 앵무새 앵에 앵무새 무 한자로 다들 쓰는데 나만 못 쓰나 鸚鵡 이 세네갈, 앵무 ——— * 녹색 심장의 섬유여 형제들이여, 어깨에서 어깨로 모여라 세네갈인들이여 일어나라 바다와 봄에, 스텝과 숲에 들어가라—세네갈 국가 후렴 부분에서 ................................................................................................................................................................................. 신형철 : 작년 《현대시》7월호에 발표한 작품이었지? 사석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이건 정말 신들린 것 같은 시다. 김민정의 시가 겉보기에 경쾌하고 털털하니까 뭔가 술렁술렁 쓰이는 것 같다고 느낄 사람이 아직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이 시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첫 줄을 읽었다면 중간에 결코 중단할 수 없다. 김민정 풍 리듬으로(그게 이문구 선생의 영향이었던 것이구나!) 그 리듬 위에 정보와 논평을 능란하게 펼쳐내고 있어서 정신없이 따라가게 만든다. 김민정이 시에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풍자적이라는 점도 훌륭하다. 세네갈 갈치 이야기를 하다가 세네갈 대통령으로 넘어가서는, 그 대통령이 시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양국의 국가를 비교하고, 우리는 갈치를 수입하는 대신에 ‘새마을 운동’을 수출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결국 독자로 하여금 세네갈(의 대통령)과 한국(의 대통령)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는다. 독자를 자연스럽게 공모자로 만든다 할까. 어떻게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인가. 정말 잘 썼다. (웃음) 김민정 : 어머 지금 나 칭찬 받은 거 맞지? 진짜지? 너 내가 친구라서 착하게 말해준 거 아니지? 기쁘다. 기뻐해야지. 신난다. 이 시는 생선구이 전문집에 갔을 때 식당 아줌마가 ‘새내갈’이라고 벽에 붙여놨던 메뉴판 글자를 오래 생각하고 있던 데서 시작했던 것 같아. 한 번도 내가 먹는 갈치가 우리 갈치 아닐 거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원산지 표시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그거 유심히 보게 되더라고. 어쩌다 우리가 세네갈 갈치를 먹게 되었을까 싶지만 둘러보면 우리 되게 전 지구적으로 뒤엉켜 사는 경우 많잖아. 나 어릴 때 뒷집 사는 아줌마가 파나마 사람이었던 것도 오래 기억하고 있던 일이었어. 아저씨가 외항 선원이긴 했지만 어쩌다 그 아줌마는 한국이란 나라의 인천이라는 도시의 주안2동이라는 동네에 와 살게 되었을까. 묘하잖아. 신기하잖아. 아무튼 세네갈 갈치도 그랬어. 세네갈에 대해 써보자 하니까 세네갈에 대해 기억하고 있던 일들이 우수수 쏟아지더라.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아프리카 특집을 다룬 KBS 책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었는데, 진행자가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해서 내가 아프리카에 세네갈이라는 나라가 있다, 내가 오늘 들고 나온 책이 세네갈 초대 대통령이자 시인이던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의 시집이다, 대통령이 시인인 나라 캬 멋지지 않냐,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책 들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나, 대통령 담화문 진짜 너무 재미없다, 우리도 대통령이 시 읽는 나라면 좋겠다, 막 신이 나서 떠들었는데 죄다 통 편집이 됐더라고. 대신 마지막에 김화영 선생님이 번역하신 상고르의 시를 낭독하는 장면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보냈더라고. 어찌 보면 이 시는 이명박 때문에 쓴 것도 같아. 복수는 안 잊는 거더라. 나 진짜 뒤끝 장난 아니거든. 대충 덮어둘 만도 한데 아주 깨알같이 기억해서는 잊을 만하면 꺼내고, 잊었다 하면 끄집어내서 사람 질려먹게 만드는 데 아주 탁월한 재주가 있거든. 지독스러운 년이기도 해. 내가 봐도 나 좀 질리는 스타일이야. —《현대시》2016년 5월호, ‘제17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대담’에서 —————————— 김민정 / 1976년 인천 출생.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신형철 / 1976년 대구 출생.《문학동네》2005년 봄호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등단. 평론집『몰락의 에티카』, 산문집『느낌의 공동체』.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