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7(136),1-2.3.4-5.6(◎ 6ㄱㄹ)
◎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
○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노라.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노라. ◎
○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하는구나. “자, 시온의 노래를 한가락 우리에게 불러 보아라.” ◎
○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리리라. ◎
○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 ◎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고를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도다.
◎ 알렐루야.
● 복 음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나병쯤은 쉽게 고칠 수 있으시기에, 진정으로 원하는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우리는 치유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 욕심대로 청원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청해야 합니다.
◆컴퓨터를 오랜 시간 사용하다가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이상이 생긴 적이 있었다.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 괜찮아져서 다시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재발하여 주사를 맞고 깁스를 하고 약을 복용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새끼손가락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나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밤에도 손가락이 아파 잠을 설친 적이 많다 보니 점점 걱정이 되었다. 진통제를 먹으면 잠시 통증이 가라앉았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또다시 아팠다. 같은 의사를 계속 찾아가기가 미안해서 집 근처 개인 병원을 돌아가면서 약을 처방받았다.
발병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손가락이 낫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의사는 “이 손가락은 수술할 수도 없고 완전히 낫지도 않을 겁니다.” 했다. 그 소리에 나는 겁이 나고 ‘정말 곤란한 병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큰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MRI를 촬영하고 난 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입원과 수술 날짜를 예약했다. 그런데 막상 입원을 하려고 병원에 들어섰다가 한참 망설인 끝에 입원 예약을 취소하고 돌아왔다. 당장 수술하는 것보다 다른 의사의 소견을 한 번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큰 병원을 찾아갔다. 여기서도 의사의 소견이 똑같다면 그때 가서 수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병원 의사는 수술을 해도 손가락은 완치될 수 없으니 그냥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병이기에 그런 식으로 처방을 내리는지, 그것은 환자의 고통을 전혀 덜어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유를 물었다. 담당 의사는 “그러면 수녀님, 점을 쳐보시든지….” 하고 말했다. 수녀보고 점이라니, 의사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싶어 내 귀를 의심하며 ‘점’이라고 했느냐고 되물었다. 그 순간 모욕감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생겼다. 점을 쳐보라는 의사의 말을 확인하면서 나는 하느님께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약을 복용하거나 병원을 찾아가지 않고 손가락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열쇠는 하느님께서 쥐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그냥 손을 좀 덜 사용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1년쯤 지났는데 손가락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나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이라고 할 정도의 믿음이 없어서 그토록 긴 시간을 불안해하면서 고생했던 것이다.
전봉순 수녀(예수성심전교수녀회)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로마의 시스틴 성당에서는 300여 년 전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알레그리의 명곡인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연주되고 있답니다. 음악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 곡이 유명해진 이유는 교황청이 이 음악의 악보를 봉인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교황청은 그 악보가 외부에 공개된다든가 시스틴 성당 밖에서 연주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서 악보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파문당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렸지요.
그런데 1770년 용감하게도 그 아름다운 음률을 악보에 옮겨 적은 14세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음악계의 신동으로 통했던 모차르트였지요. 아버지를 따라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던 모차르트는 로마 시스틴 성당에서 10분간 이 곡을 듣고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단번에 암기하여 파문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숙소에 돌아와 9개 파트로 구성된 이 곡을 악보에 옮겨 적으며 말했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도 연주할 수 있는 악보가 없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악보를 만다는 작업은 그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완벽하게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보는 즉시 출판되어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이내 유럽 전역에서 연주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에 순명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둘째로 치고 모차르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많은 이에게 굳이 바티칸을 찾지 않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기회를 가져다 준 셈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많은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두려움으로 인해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빼앗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 그것은 바로 주님께 대한 강한 믿음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시의 나병 환자는 일반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반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정상인들이 사는 곳에 가면, 돌에 맞아서 내침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임을 기억한다면,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환자가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섰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으로 인해서 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그 군중들을 뚫고서 예수님 앞까지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불사한 커다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 용기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우리도 내 안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용기 있는 믿음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때 내가 원하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내 안에서 몰아내세요.
그들은 실컷 먹고 배불렀으니, 주님께서 그들의 바람을 채워 주셨음이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으셨도다.
● 영성체 후 묵상
부모의 마음은 아이들이 아플 때 대신 아파 주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허기지고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으로 나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허기짐과 목마름을 채워 주시고 질병과 고통에서 진정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