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 5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 말 1: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는 B.C4 50-400년 사이에 활동한 선지자로 말라기라는 이름은 “나의 사자”라는 뜻이다. 여호와께서는 말라기의 이름처럼 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자로 보내셨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말라기 선지자의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해야 마땅하다.
심판의 경고를 들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회개하고 거룩한 믿음의 삶을 살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거두셨을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강대국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경고를 들었음에도 하나님을 무시하였다. 그 결과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유다는 잔인한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고, 왕들과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들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땅으로 끌려가서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포로로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예언을 성취하심으로 예레미야가 경고한 심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셨다.
70년의 포로 생활을 하며 고통스러웠던 이스라엘과 유다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선포하셨고, 에스겔을 비롯해 많은 선지자를 통해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세워 1차 귀환을 허락하셨다. 스룹바벨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충만한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들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도록 말씀으로 도왔다.
에스라를 지도자로 세운 백성들이 2차로 귀환했고, 3차는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귀환하였다. 이때에도 백성들은 어려움이 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돕지 않느냐고 불평했지만, 스가랴는 백성들의 영적 무지와 불신앙을 깨워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100년이 지난 후에도 이스라엘과 유다는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심하며 불평하며 이방 민족처럼 우상을 숭배했다. 돌이켜야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이키지 않으면서 계속 불평하므로 고난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70년의 포로 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신다면 정말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자기 땅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하나님 보시기에 신앙이 좋은 남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귀환하도록 축복하시자 그 간절함을 잊고 또 다시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방인처럼 재물을 풍족히 주지도 않는 데 왜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짐승을 골라 제사를 드려야 하느냐고 하나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난한 이스라엘 여인을 본처로 삼기보다는 잘 사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는 잡혼을 서슴없이 행했으며, 본처를 버리기 위해서 이혼을 쉽게 결정하였다. 고통스러웠던 포로 생활을 모두 잊고 쾌락과 정욕대로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순종한다면 굳이 심판하실 이유가 없기에 심판을 하시기 전에 죄에서 돌이키도록 권면하셨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대드는 아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고 고난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여호와께서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반문하였다.
사랑한다면 왜 우리에게 큰 풍작과 세상의 힘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하면서 이방인처럼 당장 눈으로 보이는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재물이었다.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자입니다. 포로 생활을 끝에 평안의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평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본문 2절에 보면,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에서는 야곱의 형으로 태어났음에도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는 말씀만 들어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은 무조건 사랑하시고 에서는 일방적으로 미워하셔서 버리신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서가 세상에 나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아갈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들은 동일한 조건임에도 하나는 축복하시고 하나는 저주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시간은 언제나 하나님께는 현재이다.
수 천 년이 흘러도 하나님께는 현재이기 때문에 뱃속에 있던 야곱과 에서가 어떤 삶을 살지 모두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은 바로 늘 현재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성도 여러분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싶다면 믿음으로 날마다 사시기 바란다. 지금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받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를 에서의 장자권처럼 일방적으로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소중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에서처럼 선민의 특권을 쉽게 버렸고 오로지 세상의 축복을 위해서 살아왔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지금 처해 있는 삶이 내 생각처럼 풍요롭지 못하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고난은 자손과 사후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환경을 만날지라도 감사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보다 적은 것을 받았을지라도 자족할 줄 안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것을 맡기시며 도리어 기뻐하실 것이다.
3.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 ( 1: 6 – 14 )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1: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
이 세상 모든 윤리 제도는 하나님께서 내신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초등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말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고 부자 관계와 주종 관계의 도덕에서 추론하여, 하나님에게 대한 제사장들(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의미에서)의 경건을 질문식으로 요구한다.
1]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 이름을 멸시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형식적 제사 행위 때문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무조건 교회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형식으로는 열심히 제사를 드리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제사를 드리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2]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아버지와 같다.
* 신 32: 6 -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을 택하신 나라로 창조하시고 또 육성하신 까닭이다.
* 사 44: 26 -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 렘 31: 9 -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 시 100: 3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주가 되시어 그들을 소유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며 또 두려워해야 할 것이었다.
"공경"한다고 함은, 기도함과 찬송함과 감사함과 순종하므로 이루어지고, "두려워함"은, 노예적인 공포가 아니고 도덕적인 공포 곧, 하나님을 거스려 범한 죄 때문에 두려워함이다.
위의 두 가지 요소는,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3]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 말씀은 인생들이 언제든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마비된 심정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대면 멸시함이 아니고, 무의식으로 무성의하게 되어진 예배 행위이다. 그것은 이 아래 구절들이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다고 지적하셨다.
개혁주의자인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선교보다 예배가 우선이다.’는 말을 했다. 물론 선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지상 최고의 사명이다.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드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보다 더 우선은 예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