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특집|충남 당진 문학기행
감옥에서 어머니께 올린 글월
심훈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 적삼 차입해 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지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 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나 들어가는 듯 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들어 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삼자도 떼어버리려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칸도 못되는 방 속에 열아홉 명이나 비웃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장이도 있구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 밖에는 그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록이 다투어 가며 진무른 살을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더구나 노인네의 얼굴은 앞날을 점치는 선지자처럼 고행하는 도승처럼 그 표정조차 엄숙합니다. 날마다 이른 아침 전등불 꺼지는 것을 신호삼아 몇천 명이 같은 시간에 마음을 모아서 정성껏 같은 발원으로 기도를 올릴 때면 극성맞은 간수도 칼자루 소리를 내지 못하며 감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발꿈치를 돌립니다.
어머님!
우리가 천번 만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려 질 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목을 놓고 울며 부르짓어도, 크나큰 소원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누구나 맹세하고 있으니까요~ . 그러기에 나이 어린 저까지도 이러한 고초를 그다지 괴로워하여 하소연해 본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