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 만일장로님이 교계 지도적 책임자라면, 장로님께서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모든 교계 지도자를 한곳에 모아서 3일 금식기도를 함께 하면서 결단의 기도를 하게 합니다. 교계 지도자들이 wcc를 몰라서 wcc에 이끌려 간다고 보질 않습니다. 단지 모든 기득권을 포기 못하는 우상에 사로잡혔다고 진단해 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기득권이 목숨입니다. 예수님 보다 목숨을 사랑하는 상황하에서 그 어떤 것도 온전한 결단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목숨도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인데, 목숨을 주님께 의탁하지 못한 상태의 모든 반대 행위는 제 눈에도 가증하게 보이는데, 주님 눈에는 얼마나 가증하게 보일까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보다 세상 임금을 의지하는 것은 만왕의 왕을 능멸한 것이 되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손을 쓰시겠습니까.
너희가 아무리 기도하고 기도해 보아라.
너희들이 능력가이니 해봐. 내 없어도 너희들 잘하니 굳이 나를 부르지 마. 우리 주님은 심드렁해 져서 코박고 잠을 잡니다.
집이 타고 있으면 소방서에 연락을 해서 불을 꺼야 하는데, 소방서에 연락해도 오질 않아요. 왜 안올까요? 평소에 소방서와 관계가 좋지 않아요. 이런 핑계, 저런 구실 대면서 늑장 대응한 가운데, 집은 훌러덩 타 버립니다.
지금 동성애 문제나 적화문제나 결론은 하나입니다. 주님 앞에 온전히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냐 세상 권력이냐. 하나님 이냐 세상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세상 명예냐. 우리 주님은 동가숙 서가식 하며 양다리 걸치는 것을 결코 용납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그 만큼 순수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진실하고 선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목숨을 주님께 맡기는 겁니다. 목숨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뛰를 따르는 것입니다. 목숨을 주님께 맡기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목숨이 아까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80평생에 국한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우리에게는 각자 소망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늘나라의 소망을 믿을진대 이방 사람처럼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믿음에 서지 않은 까닭이라고 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우리 주님말씀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엔 심판이 있다(히9:27)고 하십니다.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일생 동안 매어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시는데,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는 마귀라고 합니다.
교회 목사부터 이 사생관이 확실하지 않는다면 그 싸움은 보나 마나입니다. 회개 결단 외에는 답이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