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지정 민속자료 제8-11호
•위치 ; 조천읍 신흥리 731-1번지 새벡개 지경
•시대 ; 조선
•유형 ; 민간신앙(방사용 탑)
방사탑은 마을의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거나 어느 한 지형의 기가 허(虛)한 곳에 쌓아두는 돌탑으로, 부정과 악의 출입을 막아 마을을 평안하게 하고자 하는 신앙의 대상물이다.
탑은 대체로 좌우ㆍ음양ㆍ남북 대칭의 쌍으로 만든다. 밑면이 넓은 원통형으로 쌓은 돌무더기 모양 위로 돌할으방이나 동자석을 닮은 석상 또는 새 모양의 자연석이나 석상을 올려놓는데, 전체 탑의 크기는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한다. 탑 속에는 밥주걱이나 솥을 묻어 두는데, 밥주걱을 묻는 이유는 솥의 밥을 긁어 담듯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담아들이라는 뜻이고, 솥을 묻는 것은 솥이 무서운 불에도 끄떡없이 이겨내듯 마을의 재난을 없애달라는 민간신앙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신흥리지에 따르면 탑을 쌓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무술년(1898) 봄 1월에 동네 원로들이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 동네는 북방이 크게 허하니 탑을 쌓아 살(煞)을 막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니, 온동네가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각처에 탑을 쌓으니 섬여답(剡嶼塔), 큰개답(大浦塔), 큰성창답(大城昌塔), 답알답(塔矸塔)이 이것이다.(북제주문화원, 신흥리지 104쪽)
돌탑은 북쪽에서 비추는 새(邪, 厄)를 막기 위하여, 또는 殺氣를 제하기 위하여 쌓은 것인데 신흥리 설촌이 200여년쯤 전(조선 순조원년;1801)의 일이고 분향이 80년이고 보면, 축조된 것이 100여년 전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 탑들은 태풍이 불어 큰 파도가 탑을 덮쳐도 무너진 적이 없다고 한다. 큰 돌로 밑을 쌓고 작은 돌로는 위에 쌓으면서 끼움돌을 적게 써 정성들여 축조한 것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주요 요인인 것 같다.(제민일보. 4328.5.3.“제주도의 석조물”)
원래 이 마을에는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5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파도에 무너져 없어져 버린 후에는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일어나고 특히 언청이로 태어나는 아기가 많았기 때문에 탑을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2001년 8월 5일 신흥리 거주 김민복씨와 대화) 또는 “귀인이 신흥리를 지나다가 마을이 게 형상이라 액운이 있겠다고 했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나도 게가 집게발로 물어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탑을 쌓아 액을 막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는 주장도 있다.(블로그 푸른솔)
신흥리 마을의 서북쪽에 해당하는 새벡개라 부르는 한적한 바닷가에 ‘새벡개탑’이 서 있다. 궂은 것(厄)이 들어오는 길목이라서 이를 막기 위한 방사탑을 세운 것이다. 현무암 잡석을 대강 다듬어 원뿔대 형태로 쌓았다. 층이 없는 막돌 허튼층쌓기로 직벽을 이룬다. 높이 345㎝, 지름 432㎝ 정도가 된다. 탑 속은 잡석채움을 하였다. 탑 위에는 길쭉한 돌을 곧게 세웠다. 새를 뜻하는 것이나 이것 때문에 ‘양(陽=男)’이라고 한다. 듬직한 남자를 표현하려 위아래를 넓게 한 것이다. 제주도의 방사 유적 중에서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1995년 8월 26일 제주도 민속자료 제8-11호로 지정되었다. 민속자료로 지정된 두 개의 탑 이외에도 2000년에 3개의 탑을 더 세워놓았다. 예전부터 탑이 훼손될 때마다 다시 쌓아놓곤 했다고 한다.
《작성 1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