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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산행 – 신암산,기양산,수선산,시루봉,갑장산
1. 시루봉에서 바라본 갑장산
힐러리는 가파른 암벽들과 그 가장자리에 수직으로 달라붙은 눈 지느러미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몸을 밀어 넣고
훗날 힐러리 스텝으로 알려지게 된 험난한 코스를 한 발 한 발 오르기 시작했으며, 아래에서는 텐징이 초조한 표정
으로 올려보면서 밧줄을 풀어줬다. 그는 굼뜬 동작으로 악전고투하기는 했으나 끈질기게 달라붙은 끝에 결국은 그
곳을 돌파했고 훗날 그 상황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과연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 만한 힘이 남아 있을까 하는 회의가 깃들었
다. 내가 또 다른 바위를 돌아갔을 때 갑자기 능선이 사라지면서 저 멀리로 티베트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고개를 쳐
든 내 눈 앞에는 원뿔 모양의 눈더미 하나가 솟아 있었다. 텐징과 나는 아이스 피켈로 바닥을 찍으면서 조심스럽게
몇 걸음 다가간 끝에 마침내 맨 꼭대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1953년 5월 29일 정오 직전에 힐러리와 텐징은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최초의 인물들이 되었다.
―― 존 크라카우어 ㆍ 김훈 옮김, 「희박한 공기 속으로」(황금가지, 1997)
▶ 산행일시 : 2025년 6월 28(토), 구름 많음, 더운 날
▶ 산행코스 : 마공리 음지말,신암산,기양산,647.6m봉,수선산,582m봉,돌티고개,△483.3m봉,임도,733.2m봉,
시루봉,제1석문,제2석문,갑장산,갑장사,얼안계곡,주차장
▶ 산행거리 : 16.5km
▶ 산행시간 : 6시간 51분(09 : 33 ~ 16 : 24)
▶ 교 통 편 : 좋은사람들산악회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2번 출구 200m 전방 국립외교원 앞
08 : 25 – 문의청남대휴게소( ~ 08 : 45)
09 : 33 –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음지말, 산행시작
09 : 54 - △298.3m봉
11 : 16 – 기양산(岐陽山, 연악산 淵岳山, 704.8m)
11 : 33 – 670m봉
11 : 40 – 647.6m봉
11 : 58 – 수선산(修善山, △682.5m)
12 : 43 – 돌티고개, 점심( ~ 12 : 58)
13 : 38 - △483.3m봉
13 : 47 – 임도, 휴식( ~ 14 :00)
14 : 35 – 733.2m봉
14 : 58 - 제1석문
15 : 02 – 제2석문
15 : 05 – 시루봉(777m)
15 : 19 – 갑장산(甲長山, △805.7m), 휴식( ~ 15 : 25)
15 : 39 – 갑장사(甲長寺)
15 : 55 – 갑장사 간이주차장, 얼안계곡 포장 임도
16 : 24 – 주차장, 산행종료
17 : 30 – 청주휴게소( ~ 17 : 45)
18 : 50 - 양재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상주 1/25,000)
▶ 신암산(351.3m), 기양산(岐陽山, 연악산 淵岳山, 704.8m)
지난 3월에 김천의 삼두봉과 삼방산을 갔을 때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와 오가리 들판 건너로 병풍처럼 둘러친 기양
산과 수선산 연릉이 눈부시게 멋있어 언젠가는 저기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오늘 산행의
주목적지는 상주 갑장산이지만 갑장산만 다녀오기에는 너무 짧아 두 개 코스로 나누었다. 종주코스로 신암산, 기양
산, 수선산, 갑장산, 문필봉, 상산을 넘는 17km, 7시간이고, 갑장산 코스로 용흥사 아래 주차장에서 갑장산만을
원점회귀로 올랐다가 내려오는 약 7km, 3시간 30분이다.
오늘 산행의 일행 22명(?) 중 나를 포함하여 7명만 종주하겠다고 한다. 걱정이 앞섰다. 염천에 17km를 7시간에
갈 수 있을까? 산행대장님은 산행마감시간(16시 40분) 초과 5분까지는 기다려주겠다고 한다. 그래도 종주하겠다는
7명은 나 말고 다 젊다. 여성이 2명 있지만 첫 눈에 산행복장부터 날렵한 산꾼임을 알아보겠다. 내가 가장 뒤쳐질 것
같다. 결과는? 그랬다!
신암산 들머리인 마공리 음지말 마을 고샅길을 올라 사과 과수원을 지나고 산자락 키 넘는 덤불숲을 뚫는다. 등로가
덤불숲에 가렸다. 능선이 눈으로는 가까운데 발로는 멀다. 내 하는 일이 늘 그렇다. 서둘러 출발하는 바람에 미처
장갑을 끼지 못했는데 그걸 알아챈 덤불숲 쐐기에 손등을 된통 쏘인다. 금방 손등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왕탱이
말벌에 쏘였을 때보다 더 지독하게 쑤시고 그 통증 또한 오래간다. 무덤이 보여 그쪽으로 오르는 편이 낫다. 사면
돌아 오른다.
능선은 인적이 뚜렷하다. 스틱 고쳐 잡고 큰 숨 한 번 내쉬고 박차 오른다. 후덥지근한 날씨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다. 일기예보는 12시경에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미리 당겨서 내렸으면 좋겠다. 기양산 4.1km. 줄곧 오르막이다.
완급에 차이가 약간 있을 뿐이다. 한 피치 길게 올라 △298.3m봉이다. ‘삼각점은 상주 417, 2003 복구’이다. 아직은
종주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른다. 이때쯤이면 오른쪽 건너편으로 기양지맥의 백운산이 보일 법 한데 짙
은 연무에 가렸다.
신암산(351.3m)을 알아보지 못하고 넘었다. 오룩스 맵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땀은 눈 못 뜨게 흐르고 바지자락
까지 젖어 칙칙 감기는 바람에 걷기가 불편하다. 앞선 일행이 가다가 휴식하면 내 걸음도 흐트러진다. 잠시 앞질러
가다가 나도 배낭 벗어놓고 쉬고 만다. 냉탁주로 목 축인다. 탁주 맛이 다만 냉수이다. 가급적 공제선은 쳐다보지
않기로 한다. 고개를 쳐들기도 힘들뿐더러 연무에 가려 아득하게 보일뿐이다. 등로 주변에 풀꽃이 있을까 둘러보며
간다. 일월비비추가 꽃봉오리 맺힌 게 자주 띈다.
기양산이 가까워지자 등로는 한층 가팔라진다. 암릉에 맞닥뜨리고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다 굵은 고정밧줄을 잡고
오른다. 기양산 서봉인 690m봉이다. 정상은 등로 오른쪽으로 살짝 벗어났다. 조망이 트일까 하고 들른다. 암봉이
다. 만천만지한 연무라 사방이 캄캄하다. 여기서 기양지맥이 갈라진다. 기양산 0.14km. 바위 턱 내리고 완만한 숲
속 길이다. 0.14km를 마치 1.4km나 감직하다.
기양산 정상. 숲속 널찍한 공터다. 조망은 무망이다. 정상표지석이 두 개가 있다. 기양산이 상주시와 구미시의 경계
라 구미시 무을면발전회에서 자연석에 ‘淵岳山 해발 706.8M’라고 새겼고, 상주시에서는 오석에 ‘기양산 해발
706.8m’라고 새겼다. 기양산이 기양지맥의 주봉이다. 기양지맥은 백두대간의 국수봉(794m) 남쪽 0.6km 지점의
734m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해서 여남재, 백운산(631m), 기양산(705m), 수선산(683m), 주아현, 형제봉(532m),
신산(457m)을 지나 감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구미시 선산읍 원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45.8km 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3. 지난 3월에 김천의 삼두봉과 삼방산을 갔을 때 바라본 기양산과 수선산 연릉
4. 기양산 정상표지석
6. 수선산 가는 길
▶ 수선산(修善山, △682.5m), 갑장산(甲長山, △805.7m)
기양산 정상에서 수선산 가는 길이 헷갈린다. Y자 갈림길 양쪽 다 인적이 뚜렷하고 산행표지기들도 주렁주렁 달렸
다. 종주일행 7명 중 내가 중간이다. 내 앞선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간다. 난리도 혼자 겪을 때 난리라고 했다. 그들
뒤를 따른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겁나게 떨어진다. 내린 만큼 다시 오를 일을 생각하니 걸음걸음이 아깝다. 682m
봉에서 잠시 멈칫하고 다시 쏟아져 내린다. 이다음 680m봉에서는 오른쪽으로 직각 방향 튼다. 왼쪽의 마공성 지나
마공리(4.2km) 가는 길도 잘 났다.
647.6m봉은 준.희 님의 기양지맥 종주 표지판이 나무에 달려 있다. 곳곳이 벤치 놓인 쉼터다. 기양산에서 수선산
구간 1.9km가 오늘 산행 중 가장 수월하다. 하늘 가린 울창한 숲속의 오솔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난다. 잔 봉우리
완만하게 오르고 내려 수선산이다.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울창한 아무런 조망이 없는 산이다. 수선산은 연산군
시절 연산군의 만행을 싫어하여 피신 은둔한 선비들이 수행하며 ‘선(善)을 닦았다[修]’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수선산 정상은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은 기양지맥 주아현과 형제봉(532m)을 향하고, 왼쪽은 돌티고개
(3.1km)를 지나 갑장산으로 간다. 돌티고개 가는 길도 부드럽다. 줄달음한다. 도중에 581.8m봉에서 주춤했을 뿐
완만한 내리막의 연속이다. 어디선가 길을 놓쳤다. 왼쪽에 임도가 가까웠을 때 임도로 내렸어야 했다. 능선마루를
고집하여 마냥 잡목 숲을 헤치다보니 뒤늦게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왼쪽 임도 절개지를 미끄러져 내린다.
임도 건너편에 수많은 산행표지기가 길을 안내한다. 숲속 길 한참을 가서 철계단 두 차례 내려 수선로 대로가 지나
는 돌티고개(돌티)다. 국토정보플랫폼 지명사전에는 “청리면 청상리와 낙동면 용포리 경계로서 서낭당이 있어 돌이
쌓였던 자리라 하여 불리어짐”이라고 한다. 서낭당은 보이지 않고 고갯마루에 정자가 있다. 내 앞서 도착한 우리 종
주 일행 선두 4명은 휴식을 마치고 일어선다. 나는 배낭 벗고 점심 먹는다.
지쳤다. 입맛이 쓰디쓰다. 허기진데 도통 밥(김치볶은밥이다)이 넘어가지 않는다. 몇 숟갈 뜨다 만다. 탁주를 마저
마신다. 여태 물을 대신한 탁주다. 아직 마시지 않은 물은 1리터이다. 산행은 절반쯤 진행했다. 물 1리터로 남은
산행을 견딜 수 있을까? 절개지 오른쪽 풀숲 헤쳐 소로를 오른다. 벌써 오르기가 무척 힘이 든다. 십 수 미터 오르다
말고 멈추고 숨을 몰아쉬기 반복한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선다. 이정표가 반갑다. 갑장산 정상 4.4km, 수선산 정상
3.5km.
그러나 이때는 갑장산 정상 4.4km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험난한 산행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기적어기적 기다시피 오른다. 갈잎에 부산한 소리 들리더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소낙비로 내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비는 12시에 내린다고 예보한 기상청의 체면을 마지못해 고려한 듯 이내 뿌리는 시늉만 하고 만다. 더 덥다.
479.0m봉을 넘으면 가파름은 수그러든다. △483.6m봉을 넘고 평탄하게 진행하여 쉼터인 임도다. 돌티고개에서
여기까지 2km인데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산행마감시간에 댈 수 있
을까?
산릉에 붙는다. 인적이 흐릿하다. 낙엽이 워낙 수북하여 걷기가 팍팍하다. 잡목 숲을 헤친다. 오른쪽 사면 아래로
임도가 보인다. 어쩌면 저기가 등로일 것 같다. 임도를 잡는다. 임도도 구불구불대며 오른다. 지난 갈림길에서는
수대로 안내하던 뭇 산행표지기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장도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은 불안하다. 아, 임도는 문중
무덤을 오가는 길이었다. 무덤이 나오자 임도는 멈췄다.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9. 수선산 정상
10. 돌티고개 가는 길
11. 산수국
12. 돌티고개 가는 길
13. 갑장산 가는 길
14. 제1석문
더 높은 곳을 향한다. 생사면을 오른다. 눈에는 넙데데하고 완만하지만 발걸음으로는 되게 가파르다.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눈에도 힘이 풀린다. 눈에 초점이 흐려진다. 주변의 나무들이 겹쳐 보이다 흐릿하게 보인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졸리다. 자꾸 몽롱해지는 의식을 애써 붙든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가자, 가야 한
다. 눈비비고 휴대폰 꺼내 오룩스 맵을 들여다본다. 낙동 용포 가는 길에 올라선다.
갑장산을 가려면 위쪽 733.2m봉을 넘어야 한다. 긴다. 어쩌면 나만 혼자 뒤쳐진 것 같다. 733.2m봉에 올라선다.
갑장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
“갑장산(甲長山, 805.7m)은 상주시 안산으로 일명 연악이라 부르기도 한다. 상주의 삼악(三岳)인 연악(淵岳) 갑장
산, 노악(露岳) 노악산(혹은 노음산, 728.5m), 석악(石岳)인 천봉산(天峰山, 436m) 중에 제일인 명산이며 백두대간
소백산맥 줄기의 하나다. 고려 충렬왕이 승장사(勝長寺)에서 쉬었다 가며 아름다음이 으뜸이요(甲), 사장(四長)을
이룬다는 뜻에서 갑장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갑장산 0.8m. 733.2m을 잠깐 내리고 야트막한 안부 지나 서서히 오른다. 등로에 누군가 한 모금 정도 마신 물병
(500ml)을 흘렸다. 나로서는 횡재다. 물이 달랑달랑하여 갈증이 더욱 심했던 터라 나에게는 감로수가 아닐 수 없다.
석문을 두 차례 지난다. 양쪽 문설주가 우람하고 잘 생긴 바위다. 목재계단 올라 시루봉이다. 건너편 갑장산만 보인
다. 모처럼 하늘이 트이지만 다른 산들은 연무에 가렸다. 마지막 스퍼트 낸다. 데크계단 오르내린다.
나옹바위 오른쪽을 지나고 데크계단 올라 갑장산 정상이다. 암봉이다. 날이 맑으면 덕유산에서 소백산으로 굽이치
는 백두대간, 낙동강과 상주평야를 바라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이곳 역시 짙은 연무로 무망이다. 산불감시초소 옆에
‘尙州의 靈峯 갑장산’이라는 표지석과 돌탑, 2등 삼각점( 상주 22, 198? 복구)이 나란히 있다. 갑장산 안내석 말미에
“가뭄 때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면 비가 오고, 부정한 매장을 하면 가뭄이 들었다는 靈山이요 상주 文學의 요람(搖
籃)이다.”라고 새겼기에 ‘상주 문학’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디지털상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역대 상주를 빛낸 문인으로 홍귀달(洪貴達), 강신(姜紳), 조정(趙靖), 이전(李㙉),
전식(全湜), 류진(柳𥘼), 채득기(蔡得沂), 이만부(李萬敷) 등을 들고 있다. 나는 홍귀달(洪貴達)만 눈에 익을 뿐
다른 문인은 알지 못하겠다.
조선 초기의 시인인 허백당 홍귀달(虛白堂 洪貴達, 1438~1504)은 총 866題 1,123首의 시를 남겨 놓았다고 한다.
그의 시 한 수를 든다. ‘용천 도중 육언 삼절(龍泉途中六言三絶)’의 삼절 중 제1절과 제2절이다.
客館終宵聽雨 객관에 밤 새며 비 소리를 들었었고
靑燈一點題詩 푸른 등불 한 점 켜고 시를 쓰곤 하였노라
路遠征人起早 길이 멀고 보니 가는 사람 일찍 깨고
泥深驛馬行遲 진흙이 깊어서 역마는 더디 가는구나
樹深聞鶯不見 숲이 깊어 꾀꼬리 소리 들리나 뵈지는 않고
長途信馬含情 먼 길엔 말을 믿어 정만 머금어라
人間俯仰今古 인간의 고금 일을 굽었다 우러렀다 하매
天地幾回陰晴 천지는 몇 번이나 그늘졌다 개었던고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9
어디로 내릴까? 마침 간편한 차림으로 올라온 부부 등산객과 만나 서로 인사한다. 용홍사 주차장에서 올랐다고 한
다. 갑장사를 거쳐 하산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한다. 문필봉과 상산을 그만 놓아주기로 한다. 억울하지만 역부족이
다. 데크계단을 내린다. 길다. 너른 헬기장 지나고 숲길 약간 더 가면 ┳자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이 문필봉과 상
산을 가고 왼쪽이 갑장사 지나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사면을 내리면 얼마 안 가 연악(淵岳)의 ‘연(淵)’일
용지샘이 있는데 들르지 않고 이대로 가다니 퍽 아쉽다.
키 큰 산죽 숲길 한 피치 내리면 갑장사다. 일주문이 없는 조그만 절이다. 종무소 문 두드려 보살님에게 마실 물 좀
주실 것을 부탁한다. 다음부터는 저 위쪽 수확에서 뜨시라며 물병 가득히 담아주신다. 절집 둘러본다. 갑장사 본전
인 ‘甲長寺’ 현판은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1927~2007)의 중후한 글씨다. 행서체로 멋들어진 주련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선시다.
海底泥牛含月走 바다 밑에 진흙 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고
岩前石虎抱兒眠 바위 앞의 돌 호랑이가 새끼를 안고 졸고 있네
鐵蛇鑽入金剛眼 쇠로 된 뱀이 금강의 눈을 뚫고 들어가는데
崑崙騎象鷺鷥牽 코끼리를 탄 곤륜을 해오라기가 끌고 가네
自笑一聲天地驚 홀로 웃는 소리가 천지를 놀라게 하고
孤輪獨存江山精 외로운 달이 홀로 비치어 강산은 고요하네
널찍한 돌길을 내린다. 납작납작한 돌을 깔았다. 상당히 가파르고 길게 내린다. 갑장사 간이주차장에 내리고 포장한
임도가 이어진다. 얼안계곡 계류와 함께 내린다. 계류의 낭랑한 물소리가 시원하다. 알탕할 시간이 없다. 양쪽 허벅
지 안쪽은 진작에 젖은 속옷과 잦은 마찰로 쓸렸다. 걸음마다 엄청 쓰라리다. 계곡 건너편에 용홍사 절집이 보이고
곧 주차장이다. 살았다! 산행마감시간을 16분 남겼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늦었다.
맨 선두인 일행은 알탕을 했는지 얼굴이 해끔하다. 그에게 물었다. 갑장산에서 문필봉과 상산을 넘어왔는지. 그이도
너무 힘이 들어 그냥 갑장사를 지나 얼안계곡 길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 말이 나에게는 적이 위안이 되었다.
근래 경험하지 못한 혼쭐이 난 산행이라 당분간은 산을 쳐다보기도 싫을 줄 알았는데, 한 밤 자고 일어나자 이번
주말에는 어느 산을 갈까 물색한다.
15. 제2석문
17. 시루봉에서 바라본 갑장산
18. 갑장산 정상
19. 연악구곡 안내도
첫댓글 무더위에 멋진 산들을 다녀오셨습니다.
암 릉들이 좋은 곳이지요.
제가 간 6월에도 수국이 아름다웠습니다.
산악회에서 시간을 좀 더 많이 줘도 괜찮을텐데요...
이제는 거리는 짧게 시간은 길게 해야겠습니다.^^
아직도 지리능선 달리듯 하루에 16km 넘게 걸으시니 대단대단! 벌레도 많아져 조심스럽네요.
온다는 비는 아니 오고, 무척 힘들었습니다.
제 주제 파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노익장을 보여준 뿌듯함과 자랑이 섞인
그저 부러울 뿐인 산행입니다. 계속 안산 즐산 하세요.
장강 앞물이 뒷물에 밀려 나가듯 밀려 나가야지요.
그나저나 한 해 한 해 여름 보내기가 점점 더 고역입니다.
고생많으셨읍니다
이젠 계곡으로
맞습니다.
계곡산행 위주로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