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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878
■ 3부 일통 천하 (201)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22장 여불위(呂不韋)의 몰락 (3)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초(楚)나라가 도읍을 진현에서 수춘(壽春)으로 옮긴 것도
바로 이 사이의 일이다.초고열왕 25년, 세자 한(悍)의 나이 여섯 살이 되었다.
진(秦)나라에서 장안군 성교(成嶠)의 반란 사건이 일어난 다음 다음해이기도 하다. BC 238년.
춘신군의 문객 중에 주영(朱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주영은 임협(任俠)풍의 사내다.
검술의 명인이기도 하다.조나라 관진(觀津, 하북성 무읍현) 사람으로 일찍이 이원과도
사귄 바 있었다.그는 누구보다도 이원(李園)의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기질과는 맞지 않아 그 뒤 교류를 끊었다.일찍이 주영과 검술 대결을 벌여
왼팔이 잘린 바 있는 한 외팔이 검객이 있었는데, 그 외팔이 검객이 이원의 문하로 들어간 것을
주영(朱英)이 알았다.'이상하다. 그가 이원의 식객이 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의심을 품은 주영(朱英)은 이원의 집 주변을 맴돌며 감시하기 시작했다.
유독 검객들이 많이 출입했다.그런 중에 초고열왕의 아들이 실제로는 춘신군(春申君)의 핏줄이라는
소문이 수춘성 거리에 나돌았다.주영(朱英)은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보았다.
'초왕과 춘신군, 그리고 이원과 그 여동생!'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이원(李園)의 여동생이
한때 춘신군 저택의 후원에 머문 적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비로소 주영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이럴 수가!'그는 경악했다.
핏줄을 속인 춘신군(春申君)의 음모도 음모려니와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이원(李園)의 더 무서운
모략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춘신군(春申君)이 위험하다!'
그 무렵, 초고열왕(楚考烈王)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이원의 움직임이 더욱 은밀해짐을 본 주영(朱英)은 자신이 나설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춘신군(春申君)이 혼자 있는 틈을 타 방으로 들어가 대뜸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졌다.
"세상에는 예상치 않은 행운이 있고, 예상치 않은 불행이 있으며, 예상치 않은 사람이 존재합니다.
군(君)께서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겠습니까?"춘신군(春申君)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모르겠다. 예상치 않은 행운이란 무엇인가?""군께서는 20여 년 간 초나라 영윤(令尹)을 지내왔습니다.
명색이 영윤일 뿐 실제로는 왕의 권한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이제 조만간 초왕(楚王)께서는 세상을 떠나실겁니다. 그러면 군(君)께서는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섭정(攝政)하게 될 것인데, 실제로 그 어린 왕은 군의 아들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그 일을
숨기지 마시고 천하에 널리 알리어 친히 왕위에 오르십시오. 이것이 바로 예상치 않은
행운이라는 것입니다."춘신군(春申君)은 놀랐다.초고열왕의 아들과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도
뜻밖이었지만 주영(朱英)의 입에서 왕위를 찬탈하라는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고 거듭 물었다."그러면 예상치 않은 불행이란 무엇인가?"
"지금 이원(李園)은 초왕의 외척으로서 보다 더 큰 권력을 욕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이 계심으로 해서 그 일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께서 언제 왕의 아들에 대한 비밀을 폭로할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는 요즘 군(君)을
제거하기 위해 비밀리 무사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소생이 생각건대, 이원(李園)은 초왕이 세상을 떠나는 즉시
군을 암살하려 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상치 않은 불행입니다."
어이없는 말이었으나 춘신군(春申君)은 내색하지 않고 또 물었다.
"그렇다면 예상치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영(朱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소생을 말함입니다. 군께서는 저를 낭중(郎中) 벼슬에 임명해 주십시오"
"초왕이 숨을 거두는 날 이원(李園)은 무사를 동원할 것이 분명한데, 그때 제가 군을 위해
한 칼에 이원을 쳐죽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상치 않은 사람의 존재입니다."
낭중(郎中)이란 왕궁 안에 머무는 호위 무사의 책임자를 말한다.
주영(朱英)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춘신군(春申君)은 비로소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어댔다.
"하하하. 그대는 이원(李園)을 너무 크게 보고 있구나. 이원의 그릇은 내가 잘 안다.
그는 원래가 연약한 사람이요, 겁쟁이다.""더욱이 그는 나를 오랫동안 섬겨왔기 때문에
나에 대해 딴 뜻을 품을 리 없다. 그가 어찌 그런 거창한 일을 벌일 리 있겠는가."
주영(朱英)은 안타까움에 다시 한 번 청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생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군(君)은 반드시 후회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내가 따로이 이원(李園)의 동정을 살펴본 후 필요하면 그대를 부르겠다.
그때까지 기다려라."주영(朱英)은 어쩔 수 없이 방을 나가 자기 거처로 돌아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춘신군에게서는 아무런 기별이 오질 않았다.
그는 춘신군(春申君)이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탄식했다.
"내가 이제 이 곳을 떠날 때가 왔구나. 어리석구나, 춘신군이여!"
그러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춘신군의 저택을 떠났다.
그 뒤로 주영(朱英)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7일 후 초고열왕(楚考烈王)이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 이언을 통해 궁중 사정을 살피고 있던 이원(李園)은 재빨리 입궁하여 궁중 무사들을 소집했다.
내관들에게도 엄명을 내렸다."반역의 움직임이 있다. 당분간 왕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발상(發喪)을 중지한 채 평소 자신이 길러온 검객들을 불러들여 극문(棘門) 안쪽에 배치했다.
극문은 수춘성 왕궁의 궁문을 말한다.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이원(李園)은 사람을 춘신군에게 보냈다.
"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곧 입궐하십시오."
급보를 받자마자 춘신군(春申君)은 수레를 타고 왕궁으로 달려갔다.
춘신군의 수레가 극문(棘門)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좌우에 매복해 있던 이원의 검객들이 동시에 뛰어나와 춘신군의 수레를 에워쌌다.
"무엄하다."춘신군이 외쳤다.그러나 외팔이 검객 하나가 몸을 솟구치는가 싶더니 수레 위에 앉아 있던
춘신군을 향해 검광을 뿌렸다.번쩍하고 빛이 발하는 순간 춘신군(春申君)은 옆에 서 있던 이원의
얼굴을 보았다."네가..............."그것이 마지막이었다.춘신군(春申君)의 목이 공중 높이 떠올랐다.
어찌나 높이 날아올랐는지 담장을 넘어 극문 밖으로 떨어졌다.
목이 베어지는 순간 춘신군(春申君)은 과연 얼마 전에 들려주었던 주영의 말을 떠올렸을까?
춘신군의 죽음을 확인한 이원(李園)은 그제야 초고열왕의 죽음을 선포하고 세자 한(悍)을 받들어
왕위에 올렸다.그가 초유왕(楚幽王)이다. 이때 초유왕의 나이 여섯 살.
이원(李園)은 여동생 이언을 태후(太后)로 올려 앉히고, 자신은 스스로 영윤 자리에 올랐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17년 전의 일이었다.돌이켜보면 춘신군(春申君)이 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등과 더불어 전국사군(戰國四君)의 반열에 든 것 자체가 이해못할 일이다.
다른 삼군(三君)에게서 볼 수있는 의협의 기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춘신군은 권력욕과 물욕만이 넘쳐 흘렀다.특히 피를 속여가며 자신의 씨를 잉태한 이언(李嫣)을
초고열왕에게 바친 것은 전국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애초 춘신군(春申君)은 그러한 기질의 사람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가(史家)들이 그를 전국사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아마도 그가 진(秦)나라
인질이었던 초고열왕을 함양에서 탈출시켰을 때의 공적과 기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춘신군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 처음 춘신군(春申君)이 진소양왕을 설득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초나라 세자를 귀국시킨 것은
그 얼마나 뛰어난 지혜인가!그러나 후에 이원(李園)에게 당하고 만 것은 그가 늙어서였기
때문이리라.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 마땅히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도리어 화(禍)를 당한다.
춘신군(春申君)이 주영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사마천(司馬遷)은 춘신군의 말년의 행동을 '늙어서' 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달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노망(老妄)했음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노망이 아니고서는 춘신군이
그럴 리 없다라고 다소 호의적인 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879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79
■ 3부 일통 천하 (202)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22장 여불위(呂不韋)의 몰락 (4)
같은 해, 진(秦)나라에서도 웃지 못할 대규모 스캔들이 일어났다.
진왕 정(政)의 어머니인 조태후와 여불위, 그리고 노애(嫪毐)라는 사내와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불위와 조태후가 옛정을 못 이겨 서로 밀통한 일은 앞에서 잠시 얘기했다.
그 후로도 여불위(呂不韋)는 계속 조태후의 방을 자기 안방처럼 들락거리며 조태후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여불위의 나이 50줄로 접어들었다.진왕 정(政) 역시 20세가 넘는 성인이 되었다.
여불위(呂不韋)로서는 진왕 정(政)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여불위(呂不韋)는 진왕 정의 침묵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반면 조태후(趙太后)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음욕이 발동했다.하루라도 여불위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낮이건 밤이건 때를 가리지 않고 승상부로 사람을 보내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하기 일쑤였다.
이것이 여불위(呂不韋)로서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끊자.'관계를 더 지속하다간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다.이런 면에서 여불위(呂不韋)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조태후의 손길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함양성 안에 노애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다.노애(嫪毐)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노애는 바람둥이였다.특히 음경(陰莖)이 큰 것으로 유명했다.
노애(嫪毐)는 시정의 음탕한 여인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과부는 물론 유부녀들까지 앞다투어 노애를 찾았고, 심지어는 먼저 그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애(嫪毐)가 한 관리의 아내와 통정하다가 남편에게 발각되어 간통죄로 끌려 들어갔다.
마침 승상 여불위(呂不韋)가 이 문서를 접하게 되었다.불러서 문초한 결과 관계한 여인들의 수가 무려
백 명이 넘었다.여불위(呂不韋)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쳐갔다.
'이 자를 태후에게 내주면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을꺼야.'여불위는 노애(嫪毐)를 집으로 데려다가
몰래 숨겨두었다.이제 남은 것은 그를 어떻게 조태후와 붙여주느냐는 것이었다.
대뜸 그를 궁으로 데려가 이놈과 자십시오, 라고 할 수는 없는 일.조태후(趙太后) 쪽에서 먼저 그를
찾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여불위(呂不韋)는 자신의 방으로 노애를 불러 물었다.
"듣자하니 네 음경(陰莖)이 무척 크다고 하는데 사실이냐?""사실입니다.""한 번 볼 수 있겠느냐?"
노애(嫪毐)는 주저함없이 속바지를 내렸다.
순간 여불위(呂不韋)는 입을 벌렸다. 과연 컸다. 아니 큰 정도가 아니라 거대했다.
그는 노애(嫪毐)의 양물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물었다.
"네가 그것으로 능히 수레바퀴를 들 수 있느냐?""문제 없습니다."
"알겠다. 내가 너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노라."가을이었다.
진(秦)나라에서는 매년 추수가 끝나면 삼일 동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는 풍속이 있다.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발휘한다. 인기가 좋은 사람은 왕궁으로 초빙되기도 한다.
여불위(呂不韋)가 착안한 것은 바로 이 거리 축제였다.
축제가 절정에 이를 무렵, 여불위(呂不韋)는 미복 차림으로 노애를 데리고 거리로 나갔다.
그러고는 가장 번화한 복판에 서서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가져오게 했다.
노애(嫪毐)는 이미 자신이 할 일을 지시받은 터이라 대뜸 바지춤을 내리고 그 수레바퀴를 자신의 음경에
매달았다.수레바퀴는 꽤 무겁다.그런데도 노애(嫪毐)의 음경은 끄덕없이 버텼다.
버텼을 뿐만 아니라 허리를 움직여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렸다. 때로는 걸음을 옮기면서 돌렸다.
그 날의 최고 인기인은 단연 노애(嫪毐)였다.수천 명의 군중은 감탄과 함께 배를 움켜잡고 웃어댔다.
여불위의 이 계책은 성공했다.마침내 이 소문이 왕궁 안에 있는 조태후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여불위(呂不韋)가 내궁에 들렀을 때 조태후가 물었다.
"양물(陽物)로 수레바퀴를 돌린 자가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오?"
여불위(呂不韋)가 눈치를 살피니 꽤 관심이 깊은 표정이었다.기회를 놓칠세라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마침 저도 잘 아는 자인데, 그 방면으로 꽤나 소문이 나 있는 모양입니다. 기회가 나면
제가 한 번 궁으로 데리고 들어오지요."조태후(趙太后)는 살짝 미소짓다가 다시 슬그머니 물었다.
"외인이 어찌 내궁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겠습니까?""그 점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과거 행적을 핑계로 그 자를 잡아다 부형(腐刑)에 처하겠습니다."
"그런 후에 형 집행관을 매수하여 가짜로 부형(腐刑)을 처리한 후 궁으로 들여보내면 태후께서는
그를 내관에 임명하여 궁 안에서 일을 보게 하십시오. 그러면 날마다 그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형(腐刑)이란 남자의 성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말한다.궁형(宮刑)이라고도 한다.
음란한 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주로 많이 가했는데, 내시(內侍)가 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이미 노애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한 조태후(趙太后)는 노골적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묘책이구려."순간, 조태후의 눈빛이 묘한 광채를 발했다.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여불위(呂不韋)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모든 기력을 다해 조태후의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여불위(呂不韋)는 즉시 노애를 불러 자신의 계략을 들려주었다.
노애(嫪毐)는 천성적으로 음탕한 자였다.더욱이 왕의 어머니인 태후의 정부(情夫)가 되는 일이 아닌가.
"인생이란 묘하군요. 제가 왕궁에서 생활하게 될 줄이야."이렇게 중얼거리며 뛸 듯이 기뻐했다.
다음날 여불위(呂不韋)는 노애를 형부(刑部)로 넘겼다.- 이 자는 우리 나라의 미풍양속을 어지럽혔다.
부형(腐刑)에 처하여 내시로 일하게 하라.
그러고는 따로이 부형(腐刑)을 집행하는 관리를 불러 1백 금을 내주며 비밀리 부탁했다.
"알겠느냐? 자르는 척만 해야 한다."그 날 저녁, 함양성 거리에는 노애(嫪毐)의 피 묻은 음경이 내걸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쳐다보며 한결같이 혀를 찼다."쯧쯧, 함부로 놀리다가 결국 저렇게 되었구만."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자신들이 보고 있는 거대한 음경(嫪毐)이 당나귀의 그것인 줄을...
880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