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고 하시며, 반드시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인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며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 하십니다.
여기만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성경의 앞뒤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앞에는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가 나옵니다. 말씀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뒤의 내용은 진정한 당신의 참 가족은 당신의 핏줄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말씀의 씨가 우리 안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내용 안에서 이 부분이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때문에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닫고 더 많은 은총을 받으려면 열매를 맺으려 해야 합니다. 그 열매는 길과 같지도 않고 돌밭과 같지도 않고 가시밭과 같지도 않아야 맺힐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세속-육신-마귀, 곧 탐욕과 성욕, 교만을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읽어야만 그 깨달음이 있어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는 5세기에 이집트에서 태어나 약 17년 동안 깊은 죄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12세부터 알렉산드리아에 살면서 매춘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회심은 여전히 죄 많은 삶을 살면서 군중을 따르려는 호기심과 열망으로 예루살렘 순례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십자가 현양 축일에 성 십자가를 공경하기 위해 무덤 성당에 들어가려 했으나 초자연적인 힘이 그녀의 길을 막았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 끝에 마리아는 자신의 죄악된 삶이 자신을 거룩한 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깊은 통회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성당 밖에 서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이콘을 바라보며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리아는 십자가를 존경하게 된다면 회개하고 자기 삶을 바꾸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도 후에 그녀는 저항 없이 교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심오한 회심의 시작이었습니다.
전례 중에 루카 복음에서 이 말씀을 듣고 그녀는 깊은 회개를 경험했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그녀는 앞서 자신이 기도했던 이콘 앞에 돌아가서 감사기도를 올리고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요르단을 가로질러 세례자 요한이 살았던 광야, 즉 예수가 세례 받은 곳으로 가서 영원한 안식을 찾아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는 그 즉시 광야로 들어가 이후 47년을 세례자 요한처럼, 야생의 열매를 먹으며 속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기간에 그녀는 극심한 유혹과 육체적 어려움을 견뎌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전생에 대한 기억과 음식과 위안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기도와 말씀 묵상, 금욕으로 이러한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생애 말년에 요르단 근처 수도원에 살고 있던 성 조시마(Zosimas)라는 수사를 만났을 때 알려졌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막에서 거룩한 은수자를 찾던 조시마는 마리아를 발견하고 그녀의 무식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성함과 성경 지식에 놀랐습니다. 그녀는 성경에 대한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암기했습니다.
마리아는 조시마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체를 가져오라고 요청했습니다. 1년 후 조시마가 성체를 모시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자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고, 조시마가 그녀를 묻어 그녀의 거룩함을 확인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세.육.마.에서 자신을 이기려는 이들에게 깨달음과 빛을 줍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정원에 앉아 있을 때 근처 집에서 라틴어로 "Tolle, Lege", 곧 "집어서 읽어라."라는 문구를 부르는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근처에 있는 성경으로 달려가서 무작위로 펼쳤고, 그의 눈은 로마서 13,13-14의 한 구절에 머물렀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3-14)
이 말은 번개처럼 아우구스티노의 마음을 강타했습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이 순간을 즉각적인 명확성과 확신의 순간으로 묘사합니다. 바로 그 순간 이전의 삶을 버리고 자신을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성경에 해박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도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라는 말로 완전히 바뀌었고, 성 프란치스코도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로 완전히 변화되었으며,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도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미지근한 삶에서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0)라는 말로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말씀이 세속-육신-마귀를 이기게 만드는 말씀들입니다. 이 말씀들로 자기를 변화시키려 할 때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을 읽는 방식이고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는 방식입니다. 자신을 더 겸손하게 하고 더 사랑이 많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지향으로 읽어야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 수준에 따라 항상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아멘!~~~ " 회심"
묵상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