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facebook.com/share/p/18JBs2cy63/
- Back to Basics
. 미국 교육사를 공부하다보면 가장 충격적인 전환점으로 '스푸트닉 쇼크'가 언급된다. 1957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닉을 쏘아올려 이 녀석이 매일 미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궤적을 보였는데 당시 핵공포와 맞물려 저기서 핵쏘면 어떻게 되는거냐, 도대체 미국이 어쩌다가 소련따위에 뒤처졌냐, 우리가 최고라더니 이게 뭐냐 등등의 반성이 일어 지금까지의 교육이 다 틀렸다고 뒤집어엎으면서 더 높은 수준, 더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자는 진보적-내지는 혁명적 조치들이 취해진 것이다.
.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 10년이 넘어가고 68 학생운동과 히피 무브먼트 등으로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거냐 싶게 혼란스러워지자 실생활과 동떨어지고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진보적 개혁들을 접고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Back to Basics' 운동이 벌어진다.
.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살펴보다보면 이 슬로건이 자꾸 떠오른다. 문제가 꼬이고 꼬이다보면 정작 진짜 핵심이 되는 '기본', 그러니까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는 것.
. '교복' 문제에서 본질은 교복이 '비싸다-안입는다-그러니까 싸고 편한 생활복'이 아니고 애초에 교복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사회적 혹은 학교 구성원 간의 합의다. 교복이 애초에 불필요한 것이라면 그냥 자유복으로 돌아가면 된다. 교복이 필요한 것이라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데 소속감, 학교생활에서의 예의, 청소년으로서의 자기존중감 등이 그 이유라면 과연 체육복이나 다름없는 생활복을 일률적으로 맞춰입히는 것으로 그게 달성되겠는가 의문이다. 학생들이 감당가능한 수준으로 편하게 다시 디자인한 교복을 만들든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그게 교육적 가치가 있다면 교복을 고수하든가, 편한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교복을 폐지하는게 맞지 않나?
. 학교에서 운동회, 소풍, 체험활동 등이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가 한동안 많이 나왔는데 그 이유로 꼽는 것이 학생, 학부모의 민원 특히 작년에 있었던 속초 초등학교 체험학습 사례에서 교사 책임 판결 등이 언급된다. 속초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면 참 할 말이 많지만 페북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생략하고 최근의 체험학습 축소 문제만 보자면 중요한 것은 민원과 사고우려 이전에 이런 체험학습들이 어느 정도의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정말 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체험활동이라면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우린 안할랍니다'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고 대신 이를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동사무소에 민원이 많다고 주민등본 발급 업무를 없애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반면 이런 체험활동들이 그냥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것이고 이젠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없애는 것이 맞을 것이고. 이런 중요한 논의가 빠진 상태로 어정쩡한 자율의 범위에 놓여있을 때 피해는 교육적 기회를 빼앗기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 촉법소년 관련 논란도 마찬가지. 대통령이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직접 지시하면서 4월 시행으로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인데 애초에 소년법, 그리고 형사미성년 규정이 왜 있는지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범죄율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재범률'이다. 그러니까 범죄를 새로이 저지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또 저지르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이 재범률은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될수록 급격히 높아진다. 소년범에 대해 관대한 처벌을 내리고 만14세 미만의 경우 형사미성년으로 분류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충분히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형법에서는 '비난 가능성'이라고 표현하지만) 연령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질적 차원에서는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전과자가 되어 재범을 거듭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촉법 소년 연령 하향의 주된 논거는 촉법 소년의 범죄 증가인데 사실 이 부분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촉법연령 하향을 내세우면서 통계가 이쪽에 포인트를 맞추어 잡히기 시작했고 코로나 사태의 영향도 있었으며 예전엔 훈방을 많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최근엔 청소년 범죄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사법절차를 밟는 경우가 늘어나서이기도 하다. 증가분의 대부분은 단순 절도 등 경범죄다. 따라서 이 문제를 논의하려면 '촉법 녀석들 전부 감옥에 처넣으면 시원하겠다'라는 사이다 결정이 아니고 촉법 연령을 하향하면 과연 실제로 범죄가 감소하겠는가, 더 나아가 그로 인해 전과자들이 증가하면 중장기적인 재범률 증가 우려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그런 논의는 본적이 없다.
. 복잡한 세상에서 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복잡하고 지난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빠르고 시원하게 알렉산더처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리면 매듭을 '푼' 것이 아니라 '파괴'한 쓰레기 더미만 남게 된다. 콜럼부스의 달걀처럼 한쪽 모서리를 깨서 세우면 '간단하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세워진 달걀'이 아니고 '깨진 달걀'이다.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본질을 회피하지 않는 진지한 성찰이 드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