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손 검지손가락 안쪽에 티눈이 자라났다,
몇 년 전 같은 곳에 별 감각이 없는 작은 티눈이 하나 생기더니 조금씩
자라나 아프기 시작해 티눈스립을 사서 발라 떼어낸 적이 있었다.
그 후부터 가끔씩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한번씩 티눈이 자라나곤 했다,
더러는 잊고 있으면 언제 생겼냐고 하둣이 없어지기도 하고,
때론 눈에 거슬리기도 하고
조금 커지는듯 하면 이빨로 물어뜯어 떼내고도 하면서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게 몇 달 전부터 또다시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며칠 전부터는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티눈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생 처음 티눈스립으로 티눈을 파냈던 몇해전 기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상비약통을 찾아보니 티눈스립이 그냥 있었다,
그럴만도 한 것이 티눈스립은 보통 매니큐어가 든 용기보다 조금 큰 용기에
투명한 색으로 가득담긴 것이라 티눈 하나를 파내기 위해
몇 번을 발랐다고 해서 그 용량이 크게 줄어들지 않아
아마도 그냥 상비약 박스에 그대로 뒀던듯 하다.
아이들 어릴 때는 수시로 다치고 아프기 일쑤여서
소독약이랑 땀띠약, 그리고 후시딘과 마데카솔 같은 연고를
찾아쓰느라 상비약통이 무척 요긴하게 쓰이곤 했는데
아이들 크고 나선 별반 쓰이지가 않는게 상비약통이다.
그래서인지 상비약 통속에는 몇년 묵은
붕대와 핀셋, 소독약, 화상 꺼즈,포비돈액...등등...
그야말로 가정에서 상비약으로 갖춰놔야 할 것들이 들어있었다.
별 생각없이 티눈스립을 꺼내드는 나를 보며
아이가 질색을 한다,
" 엄마, 또 그거 쓰려고 하지? 그거 오래됐잖아 "
" 응, 뭐 어때? 괜찮아. 티눈만 떨어지면 돼"
" 안돼, 엄마는 유통기한, 유효기간 좀 보고 써"
하면서 내 손에서 몇년 된 티눈스립을 뺏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사실 음식물도 그렇고 약도 그렇고
유통기한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수퍼에서 물건을 살 때도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사게 된 것도 기실 얼마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집요한(?) 교육 덕이다.
사실 우유나 두부나 콩나물 같은 것은 유통기한이 하루이틀 지났다고
음식물이 상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걸 버리려면 아깝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해서 잘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초등학교 땐 엄마가 해주는대로 그냥 먹곤 하더니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렇게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
아예 내가 오리를 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면
저희가 먼저 쫒아와 재료를 꺼내고 유통기한을 확인하곤 한다.
-그런면에선 빵점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땐 날짜가 하루이틀 지난 재료로 만든 음식은 나만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
그러면서 지네들끼리 하는 얘기가
"엄마를 그냥 두면 아마 썩은 음식만 먹을거야.안돼, 안돼, 안돼...."
바쁘다는 핑계로 시장 봐온 것을 냉장고에 그냥 두어
버리는 일....그것은 순전히 내탓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타박을 하기도 한다.
엄마가 해주지 않아도 이제 그 나이가 되면 스스로 알아서 챙겨도 먹고
또 식사 준비도 좀 하라고....
그러면 아이들은 또 우르르 지네들 말을 쏟아낸다.
" 그러고 있어, 엄마, 엄마가 해줄 때가 많아? 우리가 찾아먹는 때가 많아? "
에고....정말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좀 바꿨다,
아이 아빠한테 시장을 좀 적게 봐오라고 한다
-우리집은 거의 아이 아빠가 시장을 봐오는 편이다-
마트에서 싸다고, 끼워 파는 것이 많다고 사오면 내가 잔소리를 한다.
사온 것은 가능한한 유통기한을 확인해서 기한 내에 조리를 하도록 노력한다.
아이들 한테도 가능한한 집에서 밥을 먹으라고 한다.
밖에서 군것질하면서 집 냉장고 안의 음식을 섞혀서 버리는 일을 줄이자는 것이다.
조금씩 실천이 되고 있다,
그래도 우리집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보면
한번씩 가슴이 내려앉는다.
하나 밖에 없는 지구이지 않는가.
결국 오늘도 그냥 집에 쌓아둔 옛 약품들을 모조리 버렸다.
진작에 처리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아이가 티눈스립을 다시 사왔고,
나는 지금 티눈액을 발라 오른 쪽 검지 손가락 안쪽에서
자라고 있는 티눈을 빼내고 있다,
움푹 파인 구멍이 눈에 띈다. 몇번 더 티눈액을 발라 완전히 파내야 한다.
티눈이 떨어져 나간이 구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살이 돋아날 것이고
나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오른손을 마음껏 쓸 것이다.
오늘 사온 티눈스립은 또 약통에서 오랜시간 머무를 것이고,
내 오른손의 티눈은 언젠가 또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일상이든 사건이든 내 삶 속에서 되풀이되어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변할 것이다,
늘 음식물을 버리면서도 죄스러워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쓰레기를 줄여나가듯
내 삶의 군더더기들도 조금씩 줄이면서.
다시 그 상황이 오고, 다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좀 더 영글어진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깨어 있어야겠다.
모든 것을 향하여.
첫댓글 보람있는 하루 하루가 아니더라도... 그냥 허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것 같아 목표를 세우려고요^^....한개도^^ 안 바쁜 저도 싱싱할때 사서 시들어지면 해먹는 경우가 있지요.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기한이 지났다 싶으면 몰래 제가 먹어치웁니다.ㅎㅎ
그렇죠? ㅎㅎ 울 아이들은 엄마 뱃속은 섞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지네들도 주부 입장이 되면 달라질 것을....암튼 이리라도 한번씩 자신을 점검합니다, 비록 번번히 실천을 못하더라도....사르비아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