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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기자의 인물기행]2만5000원 들고 산으로 간 사나이
경북 봉화 청량산의 산꾼 이대실
"예식장은 큰아들·식당은 임자가·놀이방은 막내딸이 갖고, 사내가 말했다. “자, 예식장과 사진관은 큰아들 재학이가 가져라. 식당은 임자가 가져요. 며느리에겐 웨딩숍과 미용실을 준다. 막내딸, 네겐 놀이방을 준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다 나눠주고 차비로 쓸 2만5000원과 쌀 한 말, 된장 한 사발 배낭에 꾸려 넣고서 사내는 산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이대실(李大實·61)씨는 산에서 산다. 13년이 훌쩍 넘었다.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산. 1992년 6월 이 명산(名山)에 낯선 사내가 나타났다. 흉가처럼 버려져 있던 퇴계 이황의 정자 오산당(吾山堂)이 깨끗하게 정비되고 거기에 한 중년 사내가 살고 있다. “사이코 한 명이 산에 들어왔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제 고향이 이 근처인데, 중2 때 원효대사 이야기를 읽었어요.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를 원효대사가 창건했대요. 그래서 와봤지요.” 그냥 하염없이 마음에 들더라고 했다. 당시 절을 지키던 노(老) 비구니에게 “머리 깎아달라”고 했다가 크게 혼나고 돌아서야 했다. “그때 언젠가 반드시 여기 와서 살리라고 다짐했어요.”
산은 가슴에 묻어뒀다. 대구공고 기계과를 나와서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다녔다. 군 제대 후 손댔던 영화가 망했다. 그때 산이 생각나더라고 했다. “세면도구만 달랑 들고 다음날 설악산에 있는 어떤 스님한테 갈 참이었는데, 그날 밤에 아버지께서 귀신처럼 아시곤 잡으러 오셨어요.” 아버지 손에 붙들려 집에 돌아오니 결혼 날짜가 잡혀 있었다.
얼굴도 몰랐던 아내와 그렇게 결혼했다. “생각했어요. 내가 내 고집대로 살려면 내 책임부터 다하자고요. 가족들이 기댈 지팡이를 먼저 깎아 놓자고 다짐했어요.” 결혼하던 날, 아내에게 말했다. “나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살 터이니, 내 (가족들에게) 줄 거 60%를 이루면 산으로 가겠다”라고.
그때 ‘스뎅그릇’이 수입되면서 가업이던 유기공장이 망해 버렸다. 그래서 사진관 조수로 취직한 게 첫 직장이었다. 이후 사진관을 내고, 하루 4시간 만 자면서 노력한 끝에 예식장 사장이 되었다. 그렇게 30년 살았더니 마침내 그 ‘60%’의 때가 되었다고 했다. 1992년 초, 청량산으로 가서 퇴계 선생 문중과 협의한 뒤 오산당 수리에 들어갔다. 폭탄 맞은 듯한 집에서 쓰레기를 다 치우고 도배만 남겨뒀다.
“그러고선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서울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말했어요. 내 속내를 털어놓겠다고요.”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긴 이야기 마시고 떠나십시오.” 아내와 함께 벽지를 사서 산으로 갔다. 도배를 하면서 아내가 말했다. “당신도 약속을 지켰고, 나도 약속을 지켜드린다”고….
그리고 장성한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큰아들 재학(39)씨는 “답답하고 야속했다”고 했다. 그때 나이 스물여섯. 그땐 무척 야속했으나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니 이젠 친구들이 “너는 언제 (산에) 들어가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재학씨는 “나도 언젠가 들어가게 되리라고 느낀다”고 했다. 첫 두 해는 “구름만 봐도 춤이 나올 정도로” 좋았다. 3년째 되던 해엔 “끝없는 외로움으로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다”고 했다. 6개월 동안 하루에 페트병으로 강소주를 두 병씩이나 마셔대다가 또 마음을 추슬렀다. “내가 울려고 산에 왔나? 술은 목구멍까지만 가는 거고 그 다음엔 눈물밖에 없더라고요.” 그날로 단주(斷酒). 이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대신 달마(達磨)를 그린다. 나뭇조각으로 목걸이를 만든다. 가마를 만들어 도자기를 굽고, 바람 불면 퉁소를 분다. 작품을 사가면 그 돈으로 약차를 끓여 등산객들에게 나눠준다. 차(茶) 공양이다. 단풍철에는 최고 하루에 2만 잔까지 끓여봤다. 지난 두 달 동안은 밤새 차 끓이느라고 하루 두 시간도 못 잤다. 등산하다가 조난한 사람들 구한 것도 100여 차례. “내가 가족에게 빚을 졌고, 장사꾼으로 살면서 남 속인 죄를 졌어요. 그걸 갚아야지요.”
그가 그린 달마는 타이완과 중국의 몇몇 미술관에 걸려 있다. 어제는 대한민국국제미술대전이라는 전시회에서 ‘달마 명장’ 칭호도 받았다. 그 칭호를 받으러 서울 나들이를 했다. 아들이 모는 승용차 뒷좌석에서 내리는 ‘산꾼’ 이대실씨, 머리엔 ‘뚜껑’ 잘라낸 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거처만 떨어져 있지, 가족은 변함이 없다. 산에 오면 아내는 “친구들 다 은퇴해서 초라한데, 당신 사는 거 보니 괜찮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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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사네(11/26/2005 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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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가고 아픈다리 약차 한잔 그냥들고 쉬었다가 가시 구려" "약차를 그냥 먹고 가는집" 청량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목에 허름한 집 입구엔 이런 문구를 등산을 좋아 하신분들은 다 보시고 따뜻한 차 한잔에 그리고 옛날 유성기 부터 하회탈 까지 골동품도 구경 시켜 주신분 이렇게 만나 뵙네요 긴머리는 잘 가꾸고 계시죠?(11/26/2005 15: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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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실氏!!저를아실겁니다.釜山에서 집사람과같이 이선생님을찾아뵙던 문시영입니다.2-3번찾아갈때마다 이선생님은산에사는산신령같은 느낌을받았지요.속세의 모든잡념을 떨쳐버리고 조용히살고있는 이선샘님이 부러울때가많지만 그래도 사람사는 냄새를느끼며 부대끼며 사는것도좋습니다.저와인사를털땐 갑장이라며 호형호제했는데 신문에는 한살위로나왔네요?건강하세요,또 찾아뵙지요.(11/26/2005 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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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환님! 님이 예수 믿고 안믿고는 자유인데, 넘 티내지 말았으면 좋겠네여~ 다른 종교 가지신분도 계시고,저같이 무교인 사람이 봐도 넘 티네여~~~(11/26/2005 14: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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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에 가시들고 또한손에 막대들고 오는백발 막대로치고 늑는길 가시로막으려했더니 백발이 먼저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청년들이여 인생을 허비하지말고 열심히 사세요 .(11/26/2005 14: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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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예수님 피는 웬 피? 그건 미신입니다. 남의 것은 우상이고 내것은 아니고 그런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를 주장하면 이상해 집니다. 성경을 믿지 말고 예수님의 깊은 사랑의 뜻에 접근 하는게 옳은 신앙인입니다. 사이비와 진실한 신앙인의 차이는 종이 한장 두께 차이입니다. 할렐루야.(11/26/2005 13: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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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는 귀신을 잡는다고 했죠. 허나 귀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이죠. 여러분들이 악몽을 꾸거나 암흑속에서 귀신을 보거나 했을 때 "예수님의 피"하면 모두 도망갑니다. Bile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재앙을 피한 것과 같죠,. 이름옆BLOG<탤런트 김자옥의 체험동영상수록>(11/26/2005 13: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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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살면 강제국민연금 않낼테고 의료보험 없을테고 티브이 수신료 없을테고 물가 올라도 신경 접혔을테고 ...쩝...맘 편하겠다..(11/26/2005 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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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 무슨 기사거리도 되지 않는 내용이군(11/26/2005 12: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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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의 달은 이곳 도시의 달과 다를꺼야.아마도 다른 달일게야.바람도 달라서 냄새도 다를거야.그렇지 상큼한 바람의 향.그렇지 그래서 사람의 향도 이렇게 다른 걸까.문지방 너머에 또 한지 창틀속에 그 깨끗한 풍광을 걸어놓고 살면,작금의 줄기세포도 난자도 좁은 찻상위 한잔의 차속에 다 쓸어담을 수 있을텐데.일출처럼 조용히 강한 세상이 그립구나.(11/26/2005 11: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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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뇌무연이 아닌가??? 빨리 입산했으면 좋겠다....(11/26/2005 1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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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하(knh411127) |
백자평을 작성자께서 삭제하셨습니다 (11/26/2005 11: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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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보니 내 사는 꼴은 뭔가? 꿈에라도 무대에 서 볼가만을 50년도 넘게 뇌기만 하고 살아온 나는 그냥 관객으로 살다 그냥 저 세상으로 갈거나. 모양은 초라하나 내 마음으로나마 살찐 인생을 살자 했건만 님을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 ............ .........?(11/26/2005 11: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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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충동이 있는 사람은 이 칼럼을 꼭 읽었으면 한다. 그 순간은 고통스러워 죽는게 나을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의 고향인 산에서 무념,무상,무욕을 실행하면 번뇌가 티끌처럼 보일텐데... 정말 인생을 멋지게 사는 분이시네... 가진 자는 가진 만큼 번뇌가 크다...지족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11/26/2005 11: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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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두 해는 “구름만 봐도 춤이 나올 정도로” 좋았다. 3년째 되던 해엔 “끝없는 외로움으로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다”고 했다. 여기 글귀에서 한참 웃엇어요 매우 사실적이니까요. 정말 축하합니다. 그 엄청난 외로움에서 오는 지독한 고통을 잘견디내고 적응하셨음을...(11/26/2005 11: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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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에 친구들과 청량산에 갔다가 아저씨가 끓여준 차맛과 거북이모양 목걸이 주신것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잘지내시죠? 그 목걸이 한참동안 간직했었는데...그 산장에 있는 달력에 써 놓은 사모님의 글귀(^^)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담에 혹시 기회가 있으면 들를께요... 아저씨 참 반갑네요...(11/26/2005 1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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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의 지평을 성취했다면 인간으로써의 구실을 다했을까? 그래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할까? 부처님의 자비가 들어오면 진정 자신의 삶의 자유를 만나 죽음의 자유까지도 평화로워진다하겠다. 세파의 욕계를 스스로 물리칠수있는 자신의 힘은 육체를 버리는것 까지도 두렵지 않아서 자신의 행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자유를 만나는 날이 자기를 아름답게 청산하는 번뇌라!(11/26/2005 10: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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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청량산에 갔다가 약차 한잔 맛있게 들고 왔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시는 그 분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답니다. 여러가지 작품과 그 곳에 전시되고 있던 옛 민속도구들을 보노라면 그 분의 자상함이 였보입니다. 하루에도 수 많은 약차를 다려서 남에게 배푸는 모습이 성자인 듯 합니다. 부디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11/26/2005 09: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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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하 명인생이라했다. 일월산쪽으로 둥근달이뜨고 도화꽃아 떨어지던 강변에 어주자인들 어떠하며 백구인들 어떠하랴 헌사스런 세상버리고 잎 떨어지면 가을이고 12봉에 풍설 날리면 겨울이라 그 좋은 풍광을 십수년 돈도 아니내시고 문밖에 걸어두고 사시는 님은 정영 제족하에 무릉도원이구려! (11/26/2005 08: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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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밤 소백산 예술촌에서 장승 퍼포먼스에서 보여주신 멋진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런 멋진 모습이 있으셨군요. (11/26/2005 08: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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