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 ['워킹푸어' 300만명 시대] [5] 전공 바꾸고… 사회적 도움 받았더니… 돈 벌 곳은 많더라
'인생역전' 탈출구는 있다
◆ 1 '자영업 실패' 김성훈씨
경제학 전공하고 총무팀 근무 퇴직후 선배와 동업하다 망해
자격증 딴 뒤 부품공장 취업
23일 오후 1시, 기능사 김성훈(37)씨가 경남 김해시 고모리에 있는 한 공장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대형 선반으로 160kg짜리 연결봉을 깎고 있었다. 핸드그라인더(hand grinder·전기로 숫돌을 돌려 금속을 깎는 기계)를 들이대고 불꽃을 튀기며 연결봉을 다듬기도 했다. 이 공장은 직원 20명을 둔 선박부품 생산업체다. 2년차 직원인 김씨는 월 250만원씩 번다. '실패한 자영업자'에서 어엿한 기술자 가장으로 성공한 사례다.
김씨는 1999년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0개월쯤 공기업 총무팀에 다니다 그만뒀다. 대학 선배와 둘이서 실내장식품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시작해 짭짤하게 수익을 냈다. 2006년, 김씨가 몸이 아파 고향에서 한 달쯤 쉬고 온 사이 동업하던 선배가 가게를 처분하고 잠적했다.
취직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사업을 키울 욕심에 버는 대로 재투자해 모아둔 돈도 없었다. 재기하기 위해 김씨가 택한 것은 '기술'이었다. 그는 한국폴리텍(기능대학) 창원캠퍼스에서 컴퓨터응용기계 기능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 직장에 취직했다.
- ▲ 공사 회계직원, 개인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기능사 과정을 이수해 엔지니어로 변신한 김성훈씨가 선박용 부품 가공작업을 하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고용불안, 저임금, 90%에 육박하는 영세자영업 부도율….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Working Poor·근로빈곤층)'가 300만명을 헤아린다. 절망의 목소리가 높지만, 분투 끝에 출구를 찾는 이들도 있다. 워킹푸어가 중산층으로 올라서도록 돕는 다양한 전직(轉職) 프로그램과 소자본 사업 모델도 하나씩 나오고 있다.
◆ 2 전공 바꾼 남천우씨
문과대 나온 후 6년간 백수 선박회사 들어가 능력 인정
맞벌이로 월 200만원 저축
선박검사 업체 ㈜비즈피어 직원 남천우(35)씨는 대학 전공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일자리가 많은 분야를 찾아 나서서 성공한 경우다. 23일 오전 7시30분, 남씨는 기운차게 경남 진해시 STX조선소로 출근해 길이 150m·높이 20m의 화학약품운반선을 꼼꼼하게 검사했다. 테스트해머(철판 강도를 체크하는 망치)로 선체를 두드려보고, 용접이 잘 됐는지 맥라이트(공업용 손전등의 일종)를 비췄다. 그는 오후 5시쯤 땀에 젖은 작업복을 벗고 4살짜리 아들과 부인(36·사립고 교직원)이 기다리는 부산 해운대 집으로 퇴근했다.
남씨는 대학 졸업 후 6년간 돈벌이를 못했다. 2000년 경남 지역 사립대 문과를 졸업한 뒤 취업난으로 공무원 시험에 눈을 돌렸다가 번번이 낙방했다. 2006년, 부인이 결혼 3년 만에 아이를 갖자 남씨는 진로 수정을 결심했다. 그는 한국폴리텍에서 2달간 선박 검사 기술을 배우고 지금 회사에 취직해 연봉 3000만원을 받고 있다. 그는 "둘이 벌어서 매달 200만원씩 저축하고, 은행 대출을 받아 지금 사는 아파트(112㎡·34평)도 마련했다"며 "앞으로 둘째도 가질 계획"이라고 했다.
- ▲ 공무원의 꿈을 접고 선박 검사 전문기술자로 변신한 남천우씨가 23일 경남 진해시 STX조선소에서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월 5만원씩 낸 사람은 3년 뒤 자기 돈, 서울시와 민간단체들이 보태주는 돈, 이자 등 총 385만5300원을 탄다. 월 10만원씩 낸 사람은 그 두 배인 771만600원을 탄다. 지금까지 956명이 이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중도 해지자는 3명뿐이다.
5개월 전 희망플러스 통장에 가입한 조미자(47)씨는 주민센터에서 계약직 상담원으로 일해 월 80만원을 번다. 도배 기술자 남편이 월 50만원을 보탠다. 조씨는 "대학생 아들(19)에 고1 딸(17)까지 네 식구가 한 달 살고 나면 단돈 1만원도 남기 힘든 살림이지만, '죽어라' 일하고 아껴 매달 10만원씩 붓고 있다"고 했다.
"5개월간 50만원을 넣었더니 벌써 100만원이 됐어요. 돈 쌓이는 재미가 얼마 만인지 몰라요. 딸 대학 등록금을 내 손으로 내주고 싶어요."
'패자부활'을 돕는 시스템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04년, 김종성(53)씨의 지갑에는 14개의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공장 근로자 김씨는 2000년 아내의 가출을 계기로 술에 빠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카드 돌려막기'로 불어난 빚이 1억6000만원에 달했다.
김씨는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으로 매달 50만원씩 빚을 갚기로 채무조정을 받았다. 지난달 25일 그는 5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했다.
워킹푸어에게 담보 없이 장사 밑천을 저리(低利)로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대출)' 운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 3 싱글맘 출신 이미연씨
12명이 대출 자금으로 창업3년만에 원금·이자 다 갚아
쌈밥집 독립, 월(月) 천만원 매출
지난 10일 점심시간, 서울역 근처 먹자골목의 '25년 전통 우렁쌈밥집'에서는 여행자와 회사원들이 15개 테이블을 꽉 채우고 검은색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우렁 된장국을 맛있게 비웠다.
- ▲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생업자금 무담보대출)’를 통해 대출받은 자금으로 쌈밥집을 열어 재기에 성공한 이미연씨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한 교회에서 여성 가장들에게 3% 이자로 1인당 500만원씩 대출해 줬는데, 그 돈으론 뭘 해도 답이 없었어요. 12명이 6000만원을 모아 한결 번듯한 가게를 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죠."
12명의 '사장님'은 각자 78만원씩 월급을 받으며 하루 8시간 일했다. 2007년 6월, 개업 3년 만에 대출금 6000만원과 이자를 전부 갚고 1억5000만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용기를 얻은 이씨와 박씨는 3% 이자로 4000만원을 대출받아 쌈밥집을 차렸다. 이들은 월평균 1000만원 매출을 올리고, 200만원을 갚은 뒤 각자 100만~150만원씩 집에 가져간다. 이씨는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신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