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1. 조금은 당혹스러운 영화를 만났다. 더구나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어떤 점이 영화적 미학과 내용적 흥미를 불러 일으켰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일본의 하다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영화는 울창한 숲을 가진 농촌 마을에 글램핑 시설을 만들려는 연예기획사의 사전 설명회에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글램핑 시설을 만들려는 기획사의 직원들의 설명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화조 시설이 마을의 물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찬성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사장이나 컨설트 업체들이 참석하여 주민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해결한 설명회를 다시 개최하라고 요구한다.
2. 글램핑 시설 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전개될 사건이 오로지 이익에만 몰두하는 추악한 자본의 탐욕과 그것에 맞서는 평범한 농민들의 다툼을 예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은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분명 회사와 농민들의 갈등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영화를 구성하는 다른 이미지는 농촌의 중심적 인물을 통해 묘한 긴장감을 동반하며 만들어진다. 아내를 잃고 딸과 함께 살아가는 농민이다. 그가 말없이 통나무를 자르고 시냇가에서 식수를 떠서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된다. 또한 자신의 딸과 함께 깊은 숲 속을 걸으면서 나누는 나무들과 사슴사냥에 관한 이야기는 글렘핑 사업과 관련짓는다면 그들이 지켜야 할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느낌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일상의 평범함이 침묵 속에서 보여주었을 때, 그것은 어떤 사건을 암시하는 징후의 분위기를 짙게 담고 있었다.
3.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사업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기획사의 명령으로 직원들은 사업 추진을 위한 설득을 위해 다시금 농민을 방문한다. 그 과정에서 농촌 생활에 대한 동질감을 발견하고 일종의 연대적 느낌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던 분위기는 농민의 딸이 실종되면서 급변한다. 오후에 사라진 딸은 밤이 되어도 발견되지 않았고, 농민과 직원은 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한참 지난 후 빗나간 총알에 상처을 입은 사슴 앞에 서있는 딸을 발견하지만 딸은 공격을 받아 쓰러진다. 그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발생한다. 농민은 갑자기 직원의 목을 졸라 그를 쓰러뜨린다. 농민은 부상입은(어쩌면 이미 목숨이 끊어진) 딸을 안고 어둠 속에서 뛰어간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없다. 다만 거칠은 농민의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4. 영화 마지막 장면은 충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정도로 황당함 그 자체였다. 영화의 전개와 전혀 다른 형태의 결말이 펼져지는 것이다.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농민과 직원 사이의 관계는 직원의 목을 조를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그것은 아이의 죽음(?)이 가져온 절망때문이었을까? 쉽지 않은 영화적 전개가 약간의 혼란스러움과 만나게 했지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에서 유추해 본 것은 먼저, 아이가 죽은 심각한 사건 속에서도 그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는 혼자 숲 속을 헤메다 그렇게 된 것이고, 아버지도 직원도 마을 사람들도 아이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표면적인 모습과 다른 반대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아이의 공부방에 항상 늦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버지의 태만을, 회사의 이익과 자신의 임무를 위해 농민에게 혼란스러움을 제공한 직원들의 위선을, 평소에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지만 상처입었을 때 예민해진 사슴들의 공격성을 통해 사슴사냥이라는 파괴적인 인간의 잔혹함을 드러내면서,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과에는 분명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 악’이지만, 죽음을 가져올 수 있는 숨겨진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결국 우리에게 다가오는 비극은 특별히 악한 의도를 담고 있지 않아도 소소하면서도 어리석은 행동들이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대인 학살자에 대한 아렌트의 관찰처럼, 영화는 ‘악의 무존재성’ 속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평론가들의 글은 자연의 본성과 문명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하며, 그 속에 담긴 갖가지 ‘의미’를 발견하려 애쓰고 있다. 가령 마을을 대표하는 농민을 ‘자연의 수호자’이며, 그런 이유로 그의 거칠음과 폭력을 옹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평론가들의 현학적 논의에 별로 찬동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자연의 냉혹함으로 표현되는 농민의 살인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문명의 공격에 대한 방어의 형태로 나타날지라도 불쾌함을 자아낼 뿐이다.
첫댓글 - 그럴듯한 제목에서 나오는 현란함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