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기고 제1화]
‘한국 때리라’, ‘한국 망할때까지’
일 우익지들 막말욕질
야쿠자처럼 일본도로 민황후 시해하듯
不逞국가, 야만족 추장등 삐라수준 악담
글/ 이원홍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요즘 일본의 우파 신문과 잡지가 요란하다. 신문에 게재되는 잡지광고만 보아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산케이ㆍ신문(産經新聞)과 그들이 발행하는 세이론(正論)이란 월간지가 상황을 주도하는 대표적 간행물로 보인다. 거기 줄을 서며 경쟁이라도 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을 포용하여 패거리를 형성해가는 잡지와 단행본이 수다하다. 무슨 살멸전(殺滅戰)이라도 하는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전국시대의 패거리싸움 꼴
일본 전국시대에 인기를 끈 싸움의 기술이 패거리 싸움인 합전(合戰)이다. 그것은 선(善)과 악(惡)의 대결구도를 전제로 한다. 대적하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섬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공격을 퍼붓는다. 이 때 공격은 선(善)이다. 모든 수단과 방업이 선(善)이다. 비록 악(惡)의 수법을 동원해도 그것은 선(善)이 된다. 그러한 전통의 유전인지가 전수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오늘 같은 첨단과학시대 국제관계에서도 일본사람들은 합전방식의 싸움을 좋아하고 있다.
일본사람들의 그러한 패거리싸움은 한국과 중국을 조지는데 집중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그 사람들의 정신적 특징을 꼬집어 말하자면 일본이 전쟁에 진 것이 아니라 모략에 희생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을 패전이전(敗戰以前)의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결심(決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을 미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을 ‘전쟁의 악마’로 만들고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그러나 혹독한 일본체험에서 신음해온 나라의 국민의 눈에는 “일본이 침략과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방일하는 대통령이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일본은 ‘한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반성하고 사과하여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말과 현실이 다른데 그것을 반성과 사과로 믿으라니 정말 어불성설이다. 일본이 우리들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일본의 현실이 반성과 사과로 고쳐질 때까지 되풀이되는 것이 필연이다.
일본사람들은 원수에 대한 앙갚음을 정의(正義)로 여기는 신앙을 갖고 있다. 구적(仇敵)에 대한 복수는 일본사람들의 전통이다. 개인문제에도 그렇지만 국가나 민족 간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보구(報仇)와 복수(復讐)는 언제나 가장 가혹한 방법을 택한다. 국가에게 있어서 영토는 생명이다. 일본사람들 가운데 독도가 자기네 영토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도영유권(獨島領有權)을 주장하면 독립한국에 대한 앙갚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익(右翼)이 그런 집단이다. 그래서 우파(右派)가 나서서 거기에 동조하는 패거리를 키우고 있다고 본다.
톱클래스 신문들은 다르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시히ㆍ신문(朝日新聞)과 일본경제신문(日本經濟新聞), 요미우리ㆍ신문(讀賣新聞) 같은 ‘일본의 지성(知性)’을 자부하고 있는 톱ㆍ클래스 신문에는 그러한 모욕적인 편견으로 선동을 일삼는 기사가 드물다. 우익집단의 삼엄한 감시아래 있는 아사히ㆍ신문은 지난 11월 1일자 조간에 2개면 브리지특집으로 독도문제를 다루었다. 우파(右派)의 주장에 거리를 두려고 애쓴 흔적이 역연했다.
‘다케시마(독도), 엇갈리는 견해’라는 배너를 걸어놓고 문제의 핵심을 정리하면서 “한국이 ‘6세기부터 통치’하였다는데 일본은 ‘17세기부터 영유(領有)’를 주장, ‘1905년 시마네ㆍ현(島根縣)에 편입시키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한국은 일본에 병합(倂合)되어 항의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명치시대(明治時代) 전기에 일본국정의 최고기관이었던 ‘다죠오간(太政官)’이 “다케시마(獨島) 외(外) 일도(一島)의 건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라 결정하여 정부와 각 번(藩)에 지시한 1877년의 ‘다죠오관 지령(指令)’도 공개했다. 그리고 ‘독자의 소리란’에는 “일본은 다케시마(竹島:獨島)의 영유권을 포기하라”는 투고를 게재했다. 산케이ㆍ신문과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한국 때리라’, 않으면 ‘기어오른다’
배경설명은 이 정도로 그치고 산케이ㆍ신문을 리더로 하는 우파(右派)의 패거리 호령을 뒤져 보기로 하자.
먼저 세이론(正論) 11월호를 들추어본다.
표지에 ‘총력특집(總力特輯) 한국이라는 재앙(厄災)’
‘한국은 때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어오른다.’고 대서특필했다.
목차는 더 요란하다.
‘일본인에게는 이해불능(理解不能)!?.’
‘이렇게도 비루(卑)한 코리안 근성.’
‘근린배려외교(近隣配慮外交)의 차질과 동(東)아시아 안보의 분수령.’
‘폭주국민(暴走國民)을 육성하는 한국의 역사교과서.’
‘동(東)아시아라는 진흙탕에 빠지지 않기 위해.’
10월호도 마찬가지로 요란했다.
‘한국아, 그만 두라!.
‘한국이 망할 때까지 나는 한국 땅을 안 밟는다.’
‘단호하게 경제제재(經濟制裁)를 발동하라!.’
12월호는 제물에 지쳤는지 기세가 약간 꺾였다.
‘역사날조국가에 일격을 가하라’가 한국특집의 제목이 되었다.
그 대신 조어도(釣魚島)문제를 걸고 중국을 주적으로 삼았다.
영향력 미미한 매체 괭가리 막말
산케이ㆍ신문의 판매부수는 2010년 후반기 평균이 조간 161만5000부였다. 지금은 신문구독률격감이 추세로 되어 있다. 요미우리ㆍ신문의 1002만1000부나 아시히ㆍ신문 790만3000부, 일본경제신문의 301만5000부, 마이니치ㆍ신문의 350만9000부에 비하면 6.2분의 1에서 약 2분의 1에 불과한 부수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페디아가 월간지 ‘세이론(正論)’을 보수(保守)의 우파(右派)로 분류한 것만 모아도 그 영향력이 중립지(中立誌)에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발행부수도 2006년과 7년, 2년간 의 평균치를 8만부로 잡고 있다.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에 괭가리를 크게 두들긴다고 할 수 있다. 부수가 많아 영향력이 큰 미디어는 글자 한자에 시비가 따른다. 욕을 해도 반응이 없기 때문에 “이래도냐! 이래도냐!” 강도를 높이다가 끝내 막말까지 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보수계 지식인 가운데는 산케이ㆍ신문과 세이론(正論)을 우리의 우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접하는 분들이 있다. 어떤 교수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러시아에서 밀려 내려오는 적화(赤禍)를 면하게 되었다고 일제의 침략을 예찬하는 글을 실었고, 또 다른 지식인들은 북한과 국내 좌파(左派)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과거에도 그렇게 했지만, 일본은 한국사람을 시켜 한국을 욕하게 하고 중국이나 대만사람을 동원하여 한국공격의 사수(射手)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그들이 일본사람이 하기 어려운 한국과 한국사람에 대한 욕설과 막말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일제 때도 그러했다. 조선사람을 시켜 독립투사를 잡아넣었고 조선사람을 시켜 조선사람을 죽였다. 그 수법이 지금 민주주의 모범국가를 자처하는 일본에서 재탕되고 있다.
1960년대 시카나이(鹿內信隆:1911-1990)씨가 사장이었을 때는 요즘 같은 막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주일대사관 공사로 근무하게 된 1년 전인 1973년에 창간된 ‘세이론(正論)’도 편집장이었던 오오다니(大谷)씨의 인품처럼 청결했다는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야쿠자처럼 일본도를 휘두른다
‘야쿠자’(組織暴力輩)처럼 등장하는 우익잡지(右翼雜誌)인 ‘레키시추(歷史通)’란 것이 경복궁을 치고 들어가 민비(閔妃)를 시해하듯이 일본도를 휘두르고 있다.
11월호 ‘총력특집 혐한태풍(嫌韓颱風)’은 진짜 말도 안 된다.
“‘후테이ㆍ조선인’열전(不逞朝鮮人列傳)”이라는 특집으로 “테러리스트를 영웅으로 숭배하는 민족성이 보여주는 역사 파노라마를 보시라”고 권두특집으로 꾸몄다.
‘후데이ㆍ조센진(不逞朝鮮人)’이란 ‘조선사람 사냥’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의 사상경찰 ‘독코오(特高:特別高等警察)’가 식민지정책에 맞서 일본과 싸우든 우리의 애국인사들을 비하하는 말로 만들어낸 것이다. ‘령 또는 정’으로 읽는 ‘逞’은 ‘강하다’ ‘용감하다’ ‘멋대로 하다’라는 뜻의 ‘굳셀 령(정)’이다. 일본의 사상경찰은 머리에 ‘不’자를 붙여 ‘부령(不逞)’이란 말을 만들었다.
사전(小學館의 日本語大辭典)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 또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무법(無法)을 행하는 것’,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란 뜻이라 설명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는가”, 척연(然)한 생각이 드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통(歷史通) 11월호는 ’안중근(安重根)’의사, 일본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때 일본인에게 학살당한 ‘후테이단(不逞團)’, 애국지사 ‘박렬(朴烈)’, 쇼와천황(昭和天皇)의 암살미수로 처형된 ‘이봉창(李奉昌)의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윤봉길(尹奉吉)’의사, 6ㆍ25전쟁 때 일본국내에서 전투를 전개한 조총련을 지칭한 ‘제삼국인(第三國人)’,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힌 일본 야쿠자 2명을 사살하고 인질시위(人質示威)를 감행한 재일교포 ‘김희로(金嬉老), 한국중앙정보부(KCIA)’, 북한의 김일성(金日成)과 악수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과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 독도에 상륙한 ‘이명박(李明博)’대통령, 애국열사를 추모하는 한국을 욕하는 ‘犯罪者를 영웅으로 숭배하는 나라’ 등 10커트를 선정하여 권두 칼라특집으로 게재했다. 국가를 ‘부령국가(不逞國家)’라고 욕질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혐한태풍(嫌韓颱風)’은 이어졌다.
‘한국의 영웅은 테러리스트뿐이다’
‘일본인의 양심이 한국을 미치게 했다’
‘일본의 기침 한 번으로 날아 가버리는 한국경제’
‘은혜를 원수로 갚는 한류(韓流) 애니메이션, 도작(盜作)이 판친다’
‘이승만(李承晩)의 악업(惡業), 한국대통령은 만족(蠻族)의 추장(酋長)’
그리고 조선침략 공략의 괴수인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1834-1901)의 조선론(朝鮮論)의 일부를 소개했다.
“인간 사파세계(裟婆世界)의 지옥이 조선의 경성(京城:서울)에 출현했다. 나는 이 나라를 보고 야만(野蠻)이라 평하기보다 요마악귀(妖魔惡鬼)의 지옥국(地獄國)이라 평하고자 한다.”
이것은 평(評)이 아니라 저주다. 거액의 자금을 조선인에게 주어 개화(開化)를 빙자하여 조선의 속국화(屬國化)를 공작한 장본인의 조선관(朝鮮觀)이다.
삐라수준의 한·중때리기 특집
그리고 ‘월간 윌(Will)’이 등장했다. 11월호에서 한국과 중국을 때리는 특집을 게재했다. 잡지가 아니라 삐라다.
‘세계가 미워하는 한국인과 지나인(支那人:중국인)’
‘공갈갈취가 한국에서는 무죄(無罪)’
‘야미(부정거래)로 이루어진 한국경제’
‘수입 한국 어패류(魚貝類)는 분뇨투성이’
‘한국경제를 지탱시키고 있는 것은 일본이다’
특집은 12월호에도 계속되었다. 사회의 부조리현상 16종을 간추려 온갖 어휘로 꾸며댄 욕설을 퍼부었다. 한국 보다 일본이 더 심한 것들도 한국에만 있는 것처럼 꾸몄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시에 민족적 자성을 강조하며 국민의 역사의식을 각성시키고자 말한 연설문과 논문을 한국과 한국사람을 욕하는 도구로 역이용하여 특집을 꾸몄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잔인한 노름이다. 그래서 잡지도 온통 삐라처럼 꾸며졌다.
‘특허(特許)도 지적재산도 사기에 불과하다’
‘만견(萬犬),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한국 미디어’
‘나치스를 뺨치는 세계 제일 차별왕국’
그리고 ‘리버티(Liberty)’라는 월간지도 독을 뿌리기 시작했다. ‘거짓말 역사로 일본을 모욕하는 중국과 한국’, ‘사무라이의 나라여 각성하라!!’, 일본이여 당당하게 패륜(悖倫) 국가를 꾸짖어라’, ‘삼성제품에 대관세(大關稅)를 맥이든지 수입을 금지하라’
한국유학생 출신의 ‘한국 멸망할때까지…’
나라와 민족의 자긍심을 짓밟는 욕설을 여기에 소개한 것은 일본의 진실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다. ‘한국이 멸망할 때까지 나는 그 땅을 밟지 않는다’고 막말을 늘어놓은 후루다(古田博司)는 연세대학과 한양대학에서 6년간이나 한국어를 공부한 유학생 출신이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韓日歷史共同硏究委員會)의 일본측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산케이ㆍ신문의 ‘세이론(正論)’ 칼럼에도 집필을 계속하고 있다. 거의 모두가 한국을 욕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17일자 신문에 게재한 칼람에서 이런 주장을 내세웠다.
“역사공동연구로 대화하면 공통인식이 얻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을 밝히는 자료를 제시하면 그들이 화를 낸다. 그 때 처음으로 수치를 느끼고 체면을 세우려하기 때문이다. 일본측이 한국 역사교과서의 원자료가 일본 것이라고 실증해주었다. 그때, 한국측은 ‘이런 것, 한국학계가 알게 되면 큰일난다’고 소리쳤다.”
“일본의 식민지통치가 성공하여 조선을 근대화시켰다.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전후 한국의 기업이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의문을 던지며 일제시대의 민족자본가의 활약을 책으로 썼다. 이 책이 지금도 한국에서 금서(禁書)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그의 칼럼은 모두가 거짓말을 꾸며 한국을 욕하는 것이다. 여기에 거론한 한국교과서의 원자료라는 부분도 “그런 거짓이 위원회에 버젓이 보고되었다는 말이 알려지면 한국 학계가 왈칵할 것이다”는 내용이 진의였을 것이다.
후루다가 박수를 보내는 것이 어떤 경제사학자의 ‘식민지개발론(植民地開發論)’이지만 한국에 금서(禁書)가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을 그의 무식의 소치로 돌린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따져도 금서(禁書)는 일본이 고려나 조선 보다 훨씬 심했다.
전하기 어렵고, 듣기도 싫은, 일본사람의 욕지거리를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한일관계라는 것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개한 것은 최근에 나타난 것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침반을 믿지 않는 선장이 배를 몰아가고 있다. 과학과 사실의 논리를 거부하는 무지막지한 자들의 자살행위이다. 요즘 일본을 보고 있으면 삼각파도의 한 복판으로 뛰어 드는 착란 같은 것을 느낀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 이원홍 (李元洪)>
△ 서울대 문리대 종교학과 졸 △ 한국일보 정치부차장, 사회부장, 주일 특파원, 편집국장 △ 주일 공사, 주일 한국문화원장 △ 대통령 민원수석 비서관 △ KBS사장 △ 문화공보부 장관
△ 저서 : 멀고먼 사람들, 붉은 탁류, 조총련, 일본속의 한국문화, 중국 도자사 기행, 일본인 연구, 일본을 벗긴다(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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