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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이륜차 면허는 운행 가능한 배기량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뉜다. 배기량 125cc 이하의 원동기 면허, 그리고 125cc 이상을 포함한 모든 모터사이클을 운행할 수 있는 2종 소형 면허다. 그 중 유독 2종 소형 면허시험은 합격률이 낮다. 오죽하면 ‘제일 따기 어려운 면허’라 불릴까. 합격률이 저조한 까닭은 기능시험의 제1과제인 굴절 코스 때문이다. 90도로 확 꺾인 두 개의 코너를 통과해야 하는데, 지면에 발을 딛지 않고 균형을 잡는 동시에 선을 지키며 깔끔히 빠져나가는 게 ‘트리플 악셀’만큼이나 부담스럽다.
기능시험 코스의 전경
마(魔)의 굴절코스 구간
그리하여 오늘도 출발한지 3초가 채 지나기 전에 탈락하는 비운의 응시자가 넘쳐나는 것이다. “무슨 묘기 대행진이야? 저런 코스를 왜 굳이 집어 넣었대?” 시험장에서 이런 류의 볼멘소리는 심심찮게 들려온다. 인터넷에는 악명 높은 굴절 코스를 공략하는 각종 비법이 떠돌아 다닐 정도다.
하지만 대배기량을 몰 수 있는 2종 소형 면허(이하 ‘이륜차 면허’로 통칭)를 취득하기 힘든 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취득이야 어렵지만 단순한 우리나라에 비해, 어떤 국가들은 취득 절차 자체가 까다롭고 제한도 뒤따른다.
일본, 쓰러진 모터사이클을 세우는 게 첫 과제
일본의 이륜차 면허 체계는 무려 7단계로 세분화되어 있다. 각 단계별로 응시 가능 최소 연령, 배기량, 고속도로 주행 가능 여부, 2인 승차 허용 여부 등을 제한한다.
쓰러진 모터사이클을 일으키는 과제. 여자라도 예외 없다
기능 시험은 실전 위주다. 특이한 것은 첫 시험 전, 모터사이클을 제대로 다룰 만한 최소한의 체력이 있는지 검증 받는 사전심사가 있다는 점이다. 사전심사의 주된 과제는 쓰러진 모터사이클 일으키기, 메인 스탠드로 모터사이클 세우기, 모터사이클 끌고 노면에 그려진 선을 따라 걷기 등이다. 이것을 변변히 못 해내면 기능 시험을 치를 수 없다.
대형 이륜차 부문 기능 시험 코스. 한눈에 봐도 우리나라보다 복잡하고 길다
기능시험은 ‘과제 주행’과 ‘법규 주행’으로 나뉜다. 과제 주행에서는 협로(좁은 폭의 직선 코스), 슬라럼(물결 모양의 S자 코스), 급제동 등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법규 주행은 실제 도로와 유사한 트랙에서 좌우 회전, 진로 변경, 장애물 피하기, 안전 확인 등을 해내야 한다. 시험관은 응시자가 코스의 교차로 및 건널목 등에서 법규와 안전 수칙을 준수하며 주행하는지를 평가한다. 과제 주행보다 감점 항목이 많고 까다로워 탈락자가 많이 나온다.
과제 주행 코스의 급제동 구간
일본의 이륜차 면허 기능시험에서 인상 깊은 것은 결벽에 가까울 정도의 안전성 추구다. 법규 주행 시 시험관이 가장 가차없이 감점하는 실수의 유형은 ‘운전 미숙’이 아니라 ‘안전 미확인’이다. 또한 기능시험 시 응시자의 복장은 헬멧, 장갑(가죽 또는 그것에 준하는 내구성을 가진 재질), 복사뼈를 덮는 부츠, 긴 소매의 상의와 긴 바지로 정해져 있다. 복장의 모든 요소를 갖추지 않으면 시험을 치를 수 없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반팔 상의나 반바지는 결코 시험 복장으로 허용치 않는다.
호주, 최소 39개월의 대장정
호주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주(state)마다 법 체계가 다르다. 따라서 이륜차 면허 체계 역시 약간씩 다르다. 여기서는 시드니가 속한 뉴 사우스 웨일스 주(New South Wales, 이하 NSW주)의 이륜차 면허 시험 체계를 살펴보자.
NSW주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려면 반드시 이륜차 면허를 취득해야 된다. 자동차 운전면허로 배기량 124cc까지 운행 가능한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한지 최소 1년 이상 경과한 사람만 응시할 수 있으며, 응시 가능 연령은 만 16세 9개월부터다.
NSW주의 라이더가 우리나라의 이륜차면허 취득 과정을 본다면 간단하다고 부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NSW주에서 배기량 1000cc이상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자유로이 다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F면허(Full Licence)가 있어야 하는데, 이걸 취득하려면 최소 3년 이상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장정의 출발점은 L면허(Leaner Liecence)다. 말하자면 ‘초보 라이더 면허’인 셈이다. 지정 교육 기관에서 모터사이클을 운행하기 위해 알아야 할 이론, 올바른 주행자세, 균형 잡는 법, 시선 처리, 코너링, 기어 변속, 방향 지시등 조작법 등을 배우고 객관식 5문항의 필기시험을 치른다. 의무 교육 시간을 채우고 필기시험에도 합격하면 별도의 기능시험 없이 L면허가 나온다.
가와사키 호주 홈페이지의 LAMS 모터사이클 안내 페이지.
호주에서 판매 중인 대부분의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이처럼 L면허 소지자가 구매할 수 있는 모델만 따로 모아놓고 보여준다
L면허로 몰 수 있는 모터사이클은 호주 정부에서 승인한 LAMS(Leaner Approved) 등급의 모터사이클이다. LAMS 제한은 초보가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을 무리해서 몰다가 사고 낼 위험을 원천 봉쇄하는 정책이다. L면허 라이더는 최소 3개월간 면허를 유지해야만 다음 단계인 P1 면허에 도전할 수 있다. 벌점을 부과 받거나 음주 등의 위법 사항이 적발되었을 경우, L면허는 즉시 박탈된다.
라이딩 교육 중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전 장구 착용은 필수다
다음 관문인 P1면허 취득 절차 때 드디어 처음이자 마지막 기능시험이 있다. 6시간의 라이딩 교육을 받고 치르는 시험이다. 주된 과제는 적정 속도 유지, 급제동, 유턴, 장애물 피하기 등이다. 교육 이수와 기능시험 응시 모두 자신이 평소 몰던 모터사이클로 하면 된다. 기능시험에 합격해 발급받은 P1면허를 1년간 무사히 유지한 라이더는 다음 단계인 P2면허로 승급할 자격이 생긴다. 벌점을 부과 받았을 시에는 면허가 일정기간 정지된다.
기능시험의 유턴 과제
기능시험의 장애물 피하기 과제
P2면허부터는 별도의 교육이나 기능시험이 없다. 2인 승차가 가능하고, 최고속도 제한은 100km/h로 올라간다. P2면허를 2년간 유지한 라이더에게는 드디어 대장정의 목표인 F면허(Full Licence)가 나온다. F면허 취득자는 이전 단계의 엄격한 제한에서 해방된다. 최고속도 제한 없이 도로 제한 속도에만 맞추면 되고, 대배기량의 모터사이클을 운행할 수 있으며, 2인 승차와 고속도로 진입이 가능하다. 후방에 자신의 면허 등급을 알리는 플레이트를 부착할 의무에서도 벗어난다.
그러니 만약 호주에서 면허 등급 플레이트 없이 번호판만 달랑 부착한 채 달리는 모터사이클을 본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자. 그는 최소 39개월의 시간을 들여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고 F면허를 쟁취한 진짜 라이더니 말이다.
대만, 열 손가락 접었다 폈다 해보세요
대만 역시 모터사이클을 타려면 이륜차 면허가 필수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은 모터사이클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배기량에 따라 구분한 3종류의 이륜차 면허 중 연령과 기종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취득하면 된다. 스쿠터의 천국인 대만은 배기량 50cc 미만의 모터사이클도 꼭 관할 관청에 등록 후 번호판을 부착할 의무가 있다.
대만의 모터사이클 번호판
모든 이륜차 면허 응시자는 시험 전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는다. 청력 검사와 시력 검사는 우리나라 면허 시험의 적성검사와 유사하다. 더불어 모터사이클 운행이 가능한 신체 상태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앉았다 일어서기, 무릎 구부리기, 열 손가락 접었다 폈다 등의 동작을 보여줘야 한다.
신체검사 후에는 이론시험을 치른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컴퓨터로 푸는 객관식 문제다. 교통 표지판과 신호체계, 도로에서의 운행 방법, 운전 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안전수칙 등의 출제범위에서 총 35문항이 나온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사람은 이론시험을 면제받는다. 불합격한 경우, 재응시하려면 최소 7일이 지나야 한다.
이론시험을 풀고 있는 외국인 응시자
(출처: http://meganandricoabroad.blogspot.kr/2011/03/taiwanese-drivers-license.html )
취득자와 응시자가 가장 많은 종목은 배기량 49cc이하의 모페드(moped)를 몰 수 있는 1번 면허와 배기량 50cc부터 249cc의 모터사이클을 몰 수 있는 2번 면허다. 두 면허의 취득 가능 연령은 만18세부터다. 1번과 2번 면허의 기능시험은 썩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정말 어려운 것은 250cc 이상의 대배기량을 포함한 모든 모터사이클을 몰 수 있는 3번 면허다.
3번 면허의 취득 가능 연령은 만20세부터다. 2번 면허를 최소 1년 이상 유지한 사람만 응시가 가능하다. 기본 신체검사 후, 승인 받은 기관에서 일정 시간 라이딩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을 최대한 몰아서 이수한다고 해도 최소 7일이 걸린다. 이수 후 지정된 날짜와 시간에 기능시험을 수행한다. 3종류의 이륜차 면허 중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든다. 기능시험 역시 1번과 2번 면허에 비하면 어려운 축에 든다. 때문에 응시자와 취득자가 적다.
대만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모터사이클은 스쿠터다.
3번 면허를 취득하여 고배기량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는 라이더는 소수다
3번 면허의 기능시험 코스는 2~3분이면 다 돌 수 있을 만큼 짧다. 하지만 평가 항목은 두루 갖췄다. 응시자가 실제 주행과 유사한 상황에서도 안전히 운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신호등과 횡단보도, 건널목까지 포함했다. 협로(폭 60cm에 길이 10m)에서 발이 지면에 닿거나 바퀴가 선을 이탈할 경우, 건널목 앞에서 정지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거나 선을 넘어 정지했을 경우, 건널목과 횡단보도 앞에서 좌우와 전방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을 시 감점된다. 발을 땅에 디딜 경우, 클러치와 스로틀 조작이 미숙하거나 과격할 경우도 감점 사유다. 항목의 경중에 따라 차등 감점한다. 합격 가능한 최소 점수는 70점이다. 실수를 두 번 하면 탈락하는 우리나라의 기능시험보다는 합격 마지노선이 너그러운 편이지만, 평가 항목이 폭넓은 만큼 감점 사유도 많아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 워싱턴, 주 정부의 지원으로 보다 저렴하게
미국은 주(state)마다 법 체계가 다르다. 여기서는 수도인 워싱턴 D.C가 있는 워싱턴 주 위주로 알아보자.
(출처:http://realestatecommunities.com/traveling-to-washington-d-c-check-out-these-attractions/)
워싱턴 주는 자동차 운전면허증으로 배기량 50cc 미만 혹은 최고속도 50km/h미만의 모터사이클을 몰 수 있다. 배기량 50cc 이상의 모터사이클을 운행하려면 반드시 이륜차 면허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에도 무면허 라이더가 의외로 흔하다. 각종 운전면허증의 시험 접수와 발급을 담당하는 DOL(Department of Licensing) 사무소 벽에는 “면허를 취득하고 당당하게 진짜 라이더로 거듭나세요” 같은 문구의 학원(모터사이클 트레이닝 스쿨) 광고가 붙어 있을 정도다.
학원의 라이딩 교육 현장
워싱턴 주에서 이륜차 면허를 따는 방법은 대체로 2가지다. 첫 번째 방법은 DOL에서 인정한 학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다. 시험은 학원에서 치른다. 학원에는 모터사이클, 헬멧, 간단한 보호장구가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2종소형 학원과 비슷하다. 2~3일간에 걸쳐 모든 교육을 받고 나서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본다. 3일짜리 교육은 2일짜리 교육의 절반 가격이다. 워싱턴 주에서 재정 지원을 해 주기 때문이다. 단, 재정 지원 혜택 대상자는 워싱턴 주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여 보유 중인 사람뿐이다.
두 번째 방법은 학원에서 실시하는 필기와 실기 시험을 각기 따로 신청해 치르는 것이다. 수업료가 부담되거나, 굳이 학원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거나, 도전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보통 워싱턴 주의 사람들은 두 번째 방법보다 첫 번째 방법을 선호한다고 한다. 학원(모터사이클 트레이닝 스쿨) 교육을 받고 이륜차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새 모터사이클을 구입할 때나 이륜차 보험을 가입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그렇다. 수업료로 지출한 금액을 충당하고도 남는 혜택이다. 아쉬운 것은 워싱턴 주에서 트라이크 혹은 사이드카를 부착한 모터사이클을 운행하려면 삼륜차용 면허를 따로 취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트라이크를 둘러싼 아이러니
프랑스는 얼핏 보면 우리나라와 이륜차 면허 체계가 흡사하다. 우리나라의 원동기면허라고 볼 수 있는 A1면허는 만 16세부터 응시 가능한데, 배기량 125cc 이하의 모터사이클을 몰 수 있다. 우리나라의 2종 소형 면허에 해당하는 A면허는 자동차면허인 B면허와 동일하게 만 18세부터 취득 가능하다. A면허를 따면 배기량에 관계 없이 모든 종류의 모터사이클을 구입하고 운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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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우리나라와 다른 점 첫 번째. 프랑스에는 배기량 50cc 미만의 모페드를 몰 수 있는 면허가 존재한다. 응시 가능 연령이 만 14세부터라서, 프랑스의 많은 청소년들은 이 면허를 취득하고 모페드로 통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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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점 두 번째는 이륜차 면허만으로는 트라이크를 몰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동차 면허만 있는 사람은 트라이크 운행이 가능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자동차면허만으로 트라이크를 몰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면허가 없는 이륜차 면허 취득자가 트라이크를 모는 것은 불법이다. 때문에 “트라이크를 자동차로 봐야 하나, 이륜차로 봐야 하나?”를 주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한다. 프랑스의 모터사이클 동호회는 “A면허만으로도 트라이크를 몰 수 있게 해 달라”며 면허 체계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호주, 대만, 미국, 프랑스의 이륜차 면허 취득 과정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시급한 항목이 있는가 하면, 라이더 입장에서는 우리나라가 수월한 점도 있구나 싶은 측면도 눈에 띈다. 세계의 수많은 라이더는 이렇게나 피곤하고 성가신 절차를 거쳐 이륜차 면허를 취득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따기 힘든 건 매한가지! 그래서 당신의 이륜차 면허는 더욱 값지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