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화석
조 춘 식
너는 정지 된 시간 속에 갇혀
박제 된 몸으로 멈춰 있었지
내가 네게 손을 얹었을 때
네게는 흐르지 않던 時間이
내 안에서 찰나刹那에 열렸어
그 순간 내 살과 피가
네게 붙고 날개가 펼쳐졌지
네가 한 마리 노랑나비 되어
훨훨 내 안으로 날아왔어
그때부터 내 가슴속은
온통 너의 날갯짓으로 두근두근
지금껏 멈추지 않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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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胡蝶夢)을 생각 합니다. 나비가 내 몸인가요? 내가 나비의 몸인가요? 아님, 장자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자가 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비와 내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깨우침을 주는 이러한 선적(禪的)인 시는 그 맥을 짚어 낼 수 있으리라 보며 이해를 돕기 위해 김동수 시인의 선시(禪詩)에 대한 견해 일부를 차용합니다.
선시(禪詩)는 우주와 내가 본시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근원으로 돌아가 지연 그대로의 순수 본성을 깨닫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 귀에 들리는 명(名)과 상(相)을 초월하여 본래의 성품을 찾아 우주적 졵재와 현상적 자아(自我)가
합일된 실재(實在)그 자체의 경지가 곧 선(禪)이다. < 중 략 > 이처럼 선시(禪詩)는 언어에 대한 부정과 초월 속에서 존재의 실재를
탐구하는 경이로운 문법의 시가 아닌가 한다 . - 김동수 시인, <선시의 미학> 중에서
시인이 목도(目睹)하는 시적 대상은 무한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몇 천 년전의 생명이었던 잔재가 돌무늬로 남아 있는 화석을 대상으로 시적 체감(體感)을 하며 교감(交感)하기까지 하다니요. 가히 일원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우주 본성을 직권한 선(禪)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박제가 되어버린 무생물인 화석을 소재로 삼아 물아일체 (物我一體)의 경지로 자신을 복기(復記)시키는 형상화야 말로 詩 세상에서 만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시는 나비화석을 활유법(活喩法)에 의해 생명화 내지 의인화하여 그를 만남으로써 또는 그를 내안으로 복기함으로써 시간의 죽음 속에서 방황하던 자신의 생명이 비로소 생기를 되찾았다는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뜨거운 체감의 서정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다시한번 詩의 시공(時空)개념의 인식과 사유(思惟)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임을 상기합니다. 詩 속의 시공(時空)은구체(具體)가 추상(抽象)으로 확장되는 사유(思惟), 추상(抽象)이 구체(具體)로 사유되는 인식(認識)과 비로소 融合(물아일체)되는 크로노프적 서정(抒情)일것입니다.
행간을 살핍니다.
화자는 우연히 나비화석을 만납니다. 그 나비 화석은 수천년의 정지 된 시간 속에 박제되어 멈춰 져 있었으나 (1연) 화자는 그 화석과의 만남을 통해 시공을 초월 하는 자기고백적 명상에 들며 자신이나 나비화석에게 멈춰있던 時間들과의 몰아적(沒我的) 교감을 이룹니다.여기서 이미 화자의 時間의 시간은 시공을 초월하며 먼 전생 혹은 그 이전까지 잇닿아 있으며 그의 시선은 먼 출발지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의 철로에 서 있음을 명징하게 목도(目睹)합니다 화자가 살아 온 인생의 시간들도 나비 화석처럼 이미 정지되어 박제되어 있음을 행간에 절절하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찰나에 그 時間이 열렸다고 노래하고 있겠습니까?(2연).
나비 화석과의 교감은 살(육체)과 피(영혼)를 섞음으로써 하나의 완전한 몰아일체를 이루며 호접몽의 경지에 이릅니다. 시공의 흐름은 수천년 전세의 추상적인 죽음의 시간으로부터 현세의 생명력 넘치는 시간으로 확장되며 구체화 됩니다. 화자의 가슴은 이제 온통 되살아 난 화석나비의 멈춤 없는 날갯짓으로 충만 해 있습니다. (3연~4연)어찌보면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삶의 표현임과 동시에 살아있는 현존재로서의 보편적인 인간의 한계(생로병사)문제를 대자연의 신비(나비 화석) 와 경이를 시의 원료로 원용하고 있는 형상화(形像化)에 성공 했다고 보여집니다. (5연)
호접몽(胡蝶夢)과 몰아일체(沒我一體)라는 시상(詩想)의 담대한 도약(飛躍)이 참신하며 철학적 사유(思惟)와 직관(直觀)까지 곁들여진 좋은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2021.6.17 구이태실골 문학서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