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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
[ 可居島 ]
요약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있는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으로, 총면적 9.710km2, 해안선 길이 22km이며 인구는 343세대, 504명이다.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km, 뱃길로는 233km, 흑산도에서 동지나해를 향해 남서쪽으로 82km 떨어져 있는 절해의 고도(孤島)이다.
위치면적길이인구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
9.710km2 |
해안선 22km |
504명(343세대, 2021년 기준) |
목차
가거도 개요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km, 뱃길로는 233km, 흑산도에서 동지나해를 향해 남서쪽으로 82km 떨어져 있는 절해의 고도(孤島)이다.
총면적 9.710km2, 해안선 22km, 343세대, 504명이 살아간다.
쾌속선으로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너무 먼 곳에 위치한 덕분에 6 · 25 한국전쟁도 소식으로만 듣고 지나갔다는 일화가 있다.
가거도-목포행 쾌속선
과거에는 목포에서 출발하면 흑산도에서 일박한 후 새벽에 출항하는 새마을호를 타고 6~7시간 갔다. 중간에 상태도, 하태도, 만재도를 들르고 갔다. 예전에 들렀을 때 파도가 얼마나 사나웠던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목포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뱃길 5시간 정도인 필자의 고향 완도보다 멀고 파도가 험했다.
옛날에는 가거도 주민들이 육지 흙을 밟아 보려면 돛단배를 타고 남풍을 받아 이틀 낮밤을 갔다가 돌아올 때는 북풍을 등에 지고 또 그만큼을 돌아와야 했다. 만일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거나 안개가 끼면 바다 위에서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닻을 내리고 기다리거나 노를 저어가며 파도를 헤쳐 가야만 했다. 대부분 도초도와 비금도에 정박하여 바람을 기다리는데 보통 7일에서 10여 일은 걸렸다. 정박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럽게 하의도와 도초도 처녀들과 친해져서 혼인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다. 지리적으로 여름에는 동지나해에서 불어온 태풍이 직선으로 와 닿고, 겨울이면 대륙을 휩쓸고 온 차가운 북서풍이 정면으로 불어닥친다. 태풍예보가 있으면 초비상인 곳이다.
또한 가거도는 서해안 어업전진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섬이다. 한중일 어선들의 각축장이 되어 있는 황금어장으로서, 동지나해는 가거도에서 불과 16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태풍이나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특히 겨울철이면 외국선박들이 많이 몰려든다. 국토의 최서남단에 있기에 지리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섬인 것이다. 이와 같은 특성은 전남의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가거도 멸치 소리에 잘 반영되어 있다.
가거도는 대한민국과 중국대륙 사이에 위치해 있다. 가거도에서 목포까지 직선거리의 두 배 정도 가면 중국대륙에 닿는다. 그래서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가거도 해변에 밀려오는 쓰레기가 대부분 중국 것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거도 앞바다는 조기가 올라오는 길목이고 동지나해 어장의 북쪽 황금어장 가장자리에 있어서 각국 어선들의 각축장이자 국제적 해상문제의 최일선을 담당해야 하는 곳이다. 가히 국토의 최서남단에서 국가를 엄호하는 섬이라 할 수 있다.
가거도 표지석
가거도가 알려지기 전에 가거도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던 이들도 소흑산도라 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소흑산도라는 지명이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거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흑산군도 중에서 가장 멀리 있는 섬으로 최악의 조건에 처한 곳이지만 섬 주민들은 대대로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섬이라 해서 가거도라 불렀다 한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두 이름이 다 맞는 표현같다. 가거도 사람들은 옛 지명인 소흑산도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자기들의 취향에 맞춰 소흑산도라는 행정용어를 붙였는데 섬사람 어느 누구도 이 지명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한결같이 가거도라고 부른다.
가거도에 처음으로 입도한 사람은 1580년 무렵 서씨이며,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게 된 것은 1800년 무렵 나주 임씨가 건너와서부터라 한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이전인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거도 등대 옆 선사 유적지에서는 패총조개무지와 함께 돌도끼, 돌바늘, 토기 파편 등 신석기 유물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에는 당나라를 오가던 무역선들이 중국 땅과 가까운 이 섬을 중간 기항지로 삼았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가도(可佳島)로, 『여지도서』에는 가가도(佳嘉島)로, 『해동지도』와 『제주삼현도』에는 가가도(家假島)로 표기되어 있다.
선사시대 패총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리, 대풍리, 항리를 병합하여 가거도로 무안군 흑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69년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남쪽 끝은 마라도, 동쪽 끝은 독도, 서쪽 끝은 바로 가거도이다. 가거도는 망망대해에 점 하나로 떠 있는 고도이다. 중국 산둥반도에서 새벽닭이 울면 가거도까지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토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가거도는 마라도, 독도와 함께 국토를 원거리에서 엄호하는 중요한 섬이다. 국토의 끝에 위치하다 보니 육지로부터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거세고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만 갈 수 있는 섬이다.
해상교통이 불편하여 갇혀 있다시피 살아온 가거도 섬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준 것은 쾌속선의 등장이다. 운항시간이 단축된 것과 함께 섬 주민들에게 선박운임을 파격적으로 할인해 주는 제도였다. 오래 전부터 뱃삯 대부분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가 시행된 후에는 섬사람들 삶의 패턴이 바뀌었다. 이제 섬사람들은 이웃집 들르듯 육지로 자주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의 섬 주민 운임 지원사업은 2000년 3월부터 시행되었다. 섬 주민은 뱃삯이 5,000원 이상이면, 주민은 5,000원만 내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해주는 제도이다. 가거도 주민의 경우, 편도 61,000원 중 5,000원만 내면 목포항까지 갈 수 있다. 이 결과, 섬사람은 지리적 물리적인 소통을 도모하게 되었고 문화적 소통 또한 서서히 활성화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산물은 후박나무(한약재), 방목하여 기른 흑염소, 가거도에서만 잡힌다는 뿔소라와 낚시로 잡는 돔, 농어, 멸치, 전복, 해삼, 돌김, 돌미역 등이다.
가거도 둘러보기
가거항에 여객선이 접안하면 부두가 시끌벅적해진다.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과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용한 외딴섬 항구가 이렇게 붐비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루에 한 번 섬에 들어온 승객들을 실어 나르려는 민박집 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이다.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배낭을 멘 등산복 차림이다. 그리고 섬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차림새다.
선착장 앞 옹벽은 거대한 성곽이다. 3단으로 되어 있는데 10m 이상은 되어 보이는 높은 옹벽에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가거도의 명승지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라피티를 한 것이다. 원래는 옹벽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잦은 태풍으로 인해 금지하고 있다. 커다란 방파제 규모에 비해 가거도의 배는 모두 34척뿐이다. 방파제 끝은 거대한 암반인데 인력으로 뒤쪽을 깎아낸 바위산이다.
정상부에 잡초와 키 작은 나무들이 있을 뿐 온통 바윗덩어리. 뒤쪽의 절개 부분은 바위산을 깎아내어 가거도항을 만들 때 골재로 사용했다. 깎아낸 곳은 나무 데크를 설비한 암벽체험길 등이 있는 하늘공원으로 만들었다. 공원이름이 독특하다. 김부연 하늘공원. 안내판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김부연은 4월혁명 당시 학생신분으로 참여해 순국한 가거도 출신 열사였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가거도라는 섬은 사방이 온통 깎아지른 절벽이다. 방파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은 온통 자갈밭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말쯤 동중국해가 황금어장으로 떠오른 후 어업전진기지를 만들고자 이곳에 방파제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방파제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 보니 식당들 사이로 난 가파른 계단길이다.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 좁고 구불구불한 길 주위는 대부분 빈집들이다. 밭이 되어버린 폐가와 지붕이 날아가 버려 벽만 남은 집들….
가파른 길 따라 올라가면 마을에서 밭이나 임야로 다가가게 된다. 길 끝 가장 높은 곳에 학교가 있고 그 아래쪽에는 같은 형태의 건물 여러 채가 있는데, 교직원들을 위한 관사다. 관사 뒤편에 옹벽으로 받치고 있는 학교. 교문을 대신하는 세 개의 기둥에는 가거도초등학교와 흑산중학교 가거도분교장이라는 교명의 동판이 붙어 있다. 학교 뒤편 동산에는 동백나무에 둘러싸인 책 읽는 소녀 상이 있어 낯익은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평평한 곳에 자리한 교사들, 그 옆에는 유치원생을 위한 시설도 있었다. 초 · 중등 및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3개 교육기관이 모여 있어 섬마을 학교치고는 꽤 큰 규모라 할 수 있다.
1949년 소흑산국민학교로 개교했던 가거도초등학교는 1960년에 항리분교와 대풍분교를 개교했으나 지금은 폐교되고 가거도초등학교 하나만 남아 있다. 병설중학교가 개교된 것은 1982년, 이어 1984년에 유치원이 병설되었다. 유치원생이 6명, 초등학생 4학급 15명, 중학생 2학급 10명이 재학 중이다. 다른 섬보다 많은 학생수다. 올해 60회 졸업생을 배출한 가거도초등학교는 그동안 1,51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학교 앞에서 보면 가거도 전경이 펼쳐져 전망이 좋은 곳이다. 학교 뒤로는 경사가 45도쯤 되는 구릉이 정상을 향해 가파르게 솟아 있었다.
마을 앞 공원 한쪽에 돛대를 높이 단 배를 형상화한 석재 조형물이 있다. 바로 멸치잡이 배다. 가거도의 가을은 멸치잡이 철이다. 든 물에 한 배, 썬 물에 한 배, 매일 저녁 두 배씩 잡는다 할 정도로 많은 멸치가 몰려드는 8~10월은 멸치잡이 배가 바다에서 그물을 올린다. 주로 밤에 작업하는 어부들은 노래로써 고단함을 이겨냈을 것이다.
멸치잡이
만경창파 노는 멸치,
우리가 널 모를손가,
너는 죽고 나는 살자~
만경창파에 흐르는 재물 건진 자가 임자로세,
우리 배 임자 재수 좋아 간 데마다 만선일세
우리 고장에 들어온 멸치 우리 배 망자로 다 들어온다~
가거도에 전승되는 어로요(漁勞謠) 멸치잡이 노래 한 대목이다.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는 놋소리, 멜 모는 소리, 그물 넣는 소리, 그물 안 멸치를 배 안에 퍼 담을 때 부르는 술배소리, 그물 올리는 소리 등 모음곡 형식의 9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88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멸치잡이 축제
가거도에는 신안군 일대에서 가장 높은 최고봉 독실산이 있다. 독실산은 639m 높이로 우리나라 섬에 있는 산으로는 제주도의 한라산(1950m), 울릉도의 성인봉(984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독실산 정상에는 경찰 감시초소가 있다. 섬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독실산에 오를 적에, 출장소나 경찰지서에 요청하면 독실산 정상까지 차로 태워다 준다. 필자는 첫날 출장소의 도움을, 둘째 날은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
독실산 정상
올라가는 길은 잘 정비돼 있다. 높이 639m의 독실산은 웅장하기가 육지와 다르다. 가히 신안군의 에베레스트라고 일컬을 만하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에 손색이 없는 산이다.
독실산 정상은 맑은 가을 며칠을 제외하면 거의 구름에 싸여 있다. 청명한 날 산 정상에서는 제주도가 관측되고 중국 땅이 보인다 한다. 정상 부근에는 하늘별장이 있는데 주변 24마일 해상구역을 책임지는 경찰 레이더 기지이다.
독실산 정상에서 3구 대풍리 가는 산길을 택해 내려가기로 했다. 험하기로 유명한 길이지만 3구마을 대풍리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코스여서였다. 한참을 내려가도 마을이 나타나질 않는다. 길을 잃는 게 아닌가 싶게 길인지, 물 흐르는 고랑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어서 전봇대를 지침 삼아 계속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이어서 마을이 나타났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독실산 아래 자리잡은 대풍리의 모습은 홍도 2구 석기미마을을 연상케 하였다. 마치 섬 속에 있는 섬처럼 은둔마을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경사각이 40~60도에 이르는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마침내 대풍리에 도착했다.
가거도 대풍리의 모습
가장 먼저 만난 건물이 폐교였다. 대풍분교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담한 규모였다. 그런데 바람에 날아갔는지 지붕도 없이 뼈대만 앙상하였고 운동장은 잡초가 무성하여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돼 보였다.
푸르른 바다와 높고 아름다운 산, 낚시천국, 풍부한 해산물, 어업전진기지, 아침이면 하늘과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에서 희망의 일출을 볼 수 있는 가거도 대풍리,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누가 대풍리를 가히 살 만한 섬이라고 했던가?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언뜻 대풍리를 보면 가히 살 만한 섬이 아니라 이 마을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마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도 험하고 정박한 배도 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들어와 보면 얼마나 멋진 곳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홍도 1구처럼, 가거도에도 1구에만 사람들이 몰리고 이곳 대풍리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됐다.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는지 이름이 대풍리이다. 동북쪽에 위치하여 이름 그대로 겨울바람이 세다. 겨울이면 망망대해에서 몰아치는 북풍을 고스란히 알몸으로 받는 곳이다. 홍도 최초의 마을도 대풍리인데 그곳은 기다릴 대 자, 바람을 기다리는 마을 대풍리이다. 가거도 대풍리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그런 이름을 가졌다. 홍도의 대풍리는 바람이 불지 않아서 바람을 기다리는 곳으로 자연환경이 이렇게 서로 다르다.
이제 3구 대풍리 가는 도로가 완성되었다. 나그네와 환경을 위한다면 그대로 두었으면 좋으련만, 길은 뚫리고 말았다. 이 외딴 섬의 오지마을이 외부로 속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길이 험해 걸어서 다니는 것이 힘들다. 신안군에서 배를 지원하여 주민들이 1구와 왕래하도록 하고 있다. 목포에서 뱃길로 항구가 있는 1구에 도착하고도 다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거나, 걸어서 2시간을 가야 하는 정말 오지마을이다. 마을에는 공동으로 해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냉동 창고가 있고, 배로 실어 온 쌀이나 소금 등 각종 생필품을 마을로 옮길 수 잇도록 도르래가 설치된 선착장이 있다. 또 미역철에는 도르래를 이용하여 미역을 채취하여 마을로 올린다.
그래도 사람이 살 만한 것은 바다 바위에서 나오는 미역과 돌김, 그리고 갯바위 낚시 덕택이다. 대어가 쉴 새 없이 잡히는 가히 낚시 천국인 섬마을이다. 어선은 한 척도 없지만 갯바위 낚시가 지금까지 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이유임을 알 수 있었다. 소통하는 길이 나고, 아직 문명의 이기에 물들지 않은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구매하여 섬 주민들의 소득을 높여 웃는 그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가거도 등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풍리에서 등대까지의 길은 비교적 무난하였다. 한참 가다 보니 아래쪽에 하얀 등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저 바다를 달리는 배들이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게 하는 등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가거도 등대 전경
1907년 12월 처음 불을 밝혔던 이 등대는 가거도 북쪽 해안 끝 해발 84m인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1구와 너무 멀어서 좀처럼 관광객들이 올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등대 주위를 펜션처럼 예쁘게 시설해 두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등대지기로부터 커피 한 잔을 대접받았다. 청년 등대지기가 방명록을 내밀기에, '부족하지만 등대처럼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이렇게 먼 섬에서 등대지기를 하면 외롭지 않느냐는 물음에,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육지의 가족들과 메일도 주고받아 외롭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가거도 등대입구 해안
등대에서 2구인 항리까지 가는 길은 난 코스다. 태풍으로 길이 없어지는 바람에 하얀 페인트를 칠한 나무를 지표 삼아 따라갔지만 길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원시림과 온통 이끼에 덮인 바위들로 이루어진 등산로가 내리막길로 이어지는데 태풍으로 인해 많은 고목들이 쓰러져 등산로가 훼손되었다. 만약 길을 따라 나무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놓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여지가 있는 길이었다.
2구인 항리에 도착했다. 등대지기도 이 길을 1시간 반 정도를 걸어 1구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간다고 하니, 그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했다. 필자는 전국의 섬에 있는 모든 등대를 다 가봤는데 그 중 가거도 등대 가는 길이 가장 멀고 험난한 곳으로 기록될 만하다.
항리는 가거도 서북쪽 해안에 위치한 마을로, 섬등반도가 이곳에 있다. 섬등반도는 총길이 1km쯤 되는 작은 반도다. 초원으로 뒤덮인 이곳이 가거도의 절반 이상이 조망되는 천혜의 전망대인 셈이다. 가거도에서 가장 독특한 절경으로 꼽히는 이 작은 반도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주요 촬영지였다.
중국해가 바라다 보이는 항리 섬등반도
항리마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지는 멋진 해넘이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오메가(Ω) 형상을 한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춘 뒤에도 서쪽 하늘에는 태양보다 더 붉고 아름다운 노을이 오래도록 스러지지 않는다.
해넘이
이 마을이 가거도에서 가장 많은 고기를 잡고, 멸치잡이를 대량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천혜의 어선 정박지를 갖고 있어서였다. 해안가에는 조그마한 천연동굴이 하나 있는데, 바람이 불면 마을사람들은 목선을 이곳에다 올려놓아 안전하게 배를 보호할 수 있었다. 만약에 이 동굴이 없었으면, 2구 항리마을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워낙 세게 부는 곳이라 달리 배를 피항할 데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거도 방파제 이야기
가거도의 방파제는 길이가 530m에 달할 만큼 큰 규모다. 1979년 공사를 시작하여 30년 만인 2008년에 완공한 이 방파제는, 주민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동중국해 어장을 겨냥하고 만든 국책사업이라 규모가 크다. 1996년 태풍 때 이 섬에 대피하러 온 중국 어선만 3,241척이었다고 한다.
가거항 방파제
1970년대에 이 섬에는 290여 가구에 1,500여 명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200여 가구에 500여 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급속한 이도(離島)현상이 나타난 것은,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불편한 교통과 경제문제 때문이다.
한때 이도 현상이 줄어든 적이 있었는데, 1979년 시작된 방파제사업으로 건설회사에서 30여 명의 직원과 20여 대의 중장비를 파견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방파제를 세우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국내 항만공사 사상 최장기간인 28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공사비만도 1,325억 원이나 들었다고 한다.
착공 이후 셀마(1987), 프라피룬(2000), 라마순(2002), 볼라벤(2012) 등의 태풍으로 공사현장이 번번이 쑥대밭이 되곤 했다. 애초 10년이던 공사 예정기간을 18년이나 늘려 2008년 5월, 28년 만에 완공했다. 쌓는 족족 부숴버리는 파도와 바람에 대항하여 사투를 벌이며 세운 대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네 개의 발 중 하나가 완전히 잘려 나간 테트라포드가 광장 한복판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부두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테트라포드TTP가 보인다. 폭 15.2m, 높이 8m, 64t 무게의 테트라포드가 방파제를 넘은 파도의 힘에 날아온 것이다. 테트라포드는 중심에서 사방으로 발이 나와 있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프랑스에서 발명한 방파제 보호시설이다. 그 거대한 구조물이 2,000개나 파도에 쓸려갔으니 태풍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가거도항에는 높이 12m, 길이 490m, 폭 15.2m의 방파제가 건설되었다. 방파제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는 64t짜리 테트라포드와 108t짜리 큐브블럭을 쌓았지만 2012년 9월 태풍 볼라벤의 여파로 방파제 350m가 부서지고 테트라포드 2천500여 개가 유실되어 피해금액은 274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태풍이 올 때마다 입었던 방파제 피해를 줄이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앞으로는 태풍의 핫 코너인 가거도항에 슈퍼 방파제를 만들 계획이라 한다. 슈퍼 방파제는 아파트 9층 높이(28m)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태풍에 맞대항할 것이다.
철새들이 머무르다 가는 섬 가거도
가거도 등대 앞바다에는 천연기념물인 바닷새의 번식지 국흘도(구굴도)가 있다. 여름철새인 슴새와 뿔쇠오리가 이 무인도에 둥지를 틀고 번식한다. 백여 종의 철새들이 봄과 가을이면 가거도에서 쉬거나 번식을 한다. 가거도는 먹이가 풍부하고 생태적 환경이 좋다. 이곳에서 황로와 쇠백로가 먹이를 먹고 쉬며, 국제적 보호종인 섬개개비는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를 양육한다. 한반도에서 관측할 수 있는 조류 중 65~70%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섬개개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로서 원시의 자연이 그대로 보전돼 있는 국흘도. 방송에서 보도한 내용에 의하면, 최근에 약 10만 마리의 바다제비가 국흘도를 찾아 알을 낳고 번식을 한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수만 마리 철새들의 군무도 볼 수 있다. 바다제비는 육지의 새와는 달리 한 번에 한 개의 알만 낳고 암수가 공동으로 새끼를 양육한다.
그외에도 희귀조류인 뿔쇠오리, 슴새 등이 서식하며 흑비둘기, 흰날개해오라기, 바다직박구리 등을 볼 수 있다.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들이다. 수천, 수만 마리가 태풍 직전에 나타나 비와 바람을 피한 뒤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하는 곳. 가거도는 새들의 낙원이자 생태계의 보고이다. 또한 온몸이 온통 검은 제비나비, 검은 날개 끝머리에 코발트빛을 세련되게 두른 청띠제비나비 등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낚시천국 가거도
가거도가 오늘날 이름을 알리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을 찾는 낚시꾼들 덕분이다. 가거도는 섬 전체가 포인트라는 말이 있듯이 해마다 1만여 명에 달하는 낚시꾼들이 찾는다. 낚시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로 한 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가거도는 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낚시천국이다.
특히, 가거도에서 낚시꾼들이 염원하는 장소인 가거초 일대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이다. 가거도에서 서남쪽으로 47km정도 더 나가면 공해상 접경지인 꿈의 낚시터 가거초에 도착한다. 미지의 낚시터 가거초는 거대한 암초지대이다. 이 일대는 해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수면 밑 7, 8m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수면 밑 15m 정도에 2~4개 정도의 봉우리가 더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일본군함 일향호가 이곳 수중암초와 충돌하면서 침몰하자, 원인을 알기 위해 일본 해군들이 이 해역을 조사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대략 가로 1km×세로 3km의 면적을 가진 수중 암초대이다. 침몰한 배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일향초라고 불러오다가, 수년 전 우리 정부에서 가거초라는 공식명칭을 붙였다.
가거초뿐만 아니라 섬 주변의 해안선 36km에 이르는 넓은 낚시터가 펼쳐져 있다. 특히, 항리와 대풍리 일대, 국흘새로 유명한 국흘섬 석광장 주위에서는 팔이 아파 못 잡을 정도로 북돔, 감성돔, 줄돔, 농어, 광어 등이 줄지어 달려드는 곳이다. 가거도 전체가 낚시천국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다.
해상관광의 보고 가거도
홍도 못지않다는 가거도 해안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시 배를 타야 한다. 가거항 선착장에서 회룡산과 장군바위 사이를 빠져나가면 곧바로 기암괴석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녹섬, 돛단바위, 섬등반도, 납덕여, 망부석모녀바위, 검은여손가락바위, 개린여, 칼바위, 빈주암, 남문 등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거대한 후박나무 군락지 또한 둘러볼 만하다.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가거도 후박나무 수피(껍질)는 한방에서 건위, 이뇨, 해열제로 쓰인다. 이 나무는 묘목에서 10년쯤 자라면 수피를 벗길 수 있으며 20년생 한 그루에서 50여 근이 생산된다. 따라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이 후박나무 소유량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도 볼 수 있다.
후박나무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굴거리나무, 천리향이 빽빽이 우거져 있다. 숲속의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방울새란과 노란 꽃이 매혹적인 금세우란이 여기저기 보인다. 상황버섯, 음양곽, 현삼, 목단피, 갈근 같은 귀한 약초들이 나무 밑에서 자생한다. 이 외에도 가거도의 산에는 곰취, 더덕, 도라지, 창출, 방풍 등 희귀약초가 자생하며 대엽란, 콩란, 춘란 등이 예쁜 자태들을 뽐내고 있다.
또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어서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다. 그리고 9개의 동굴, 칼바위, 국흘도 풍경, 등대의 모습 등이 황홀함을 제공한다. 확실히 해상관광의 보고로 한반도가 숨겨 놓은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일몰 무렵의 장관
가거도를 떠나면서
목포에서 뱃길로 233km여서 육지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고도(孤島)라는 점 때문에 한때는 버림받다시피 한 가거도였다. 20년 전 느림보 여객선 새마을호가 사라지고 쾌속선의 운항으로 천혜의 비경과 낚시천국이란 소문이 돌면서 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가거도를 떠난 젊은이들도 하나둘씩 들어와 민박집을 짓고, 낚싯배 대여와 해상관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섬 주민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준 것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선박요금의 파격적인 할인은 섬사람들의 삶의 패턴까지 바꿔 줄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 때문에 섬 주민들은 마실 가듯 육지로 자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섬 주민들이 뭍으로 오갈 때 내는 뱃삯 대부분을 정부가 지원해 주는 제도가 시행된 뒤 나타난 모습이라고 한다.
흑산도와 가거도 등 신안군 섬 주민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고 만족도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1980년대에 가거도에서 목포에 나오려면 이틀 이상 걸렸던 이 섬에도 이제는 시속 35 노트로 달리는 최신 쾌속선이 운항하여 4시간이면 목포에 나올 수 있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다 반값으로 어느 섬이든지 갈 수 있게 해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섬과 여객선회사가 살고 수많은 여행가들이 섬들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과학기지
가거도 관광명소
가거도 패총은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선사시대의 유물이다. 그리고 국흘도 해조류 번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관광자원이다. 주변 해안은 돔, 농어 등이 잘 잡히는 바다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라 낚시하기 좋다. 홍도 사람들이 크고 작은 여와 절벽에 갖가지 이름을 붙여 38경을 자랑하듯, 이곳 가거도에서도 8경을 내세운다.
제1경 : 독실산 정상의 조망(신안군 내에서 제일 높은 산)
제2경 : 회룡산과 장군바위(섬 창조설화를 형성하는 곳으로 마을을 품에 안고 있음)
제3경 : 돛단바위와 기둥바위(돛을 단 모습, 기암은 오직 조물주의 신비로운 조화력)
제4경 : 섬등반도의 절벽과 망부석(섬등반도가 망부석을 감싸 주고 있는 듯하며 전설과 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5경 : 구곡(九谷)의 앵화(櫻花)와 빈주바위(조선시대의 <꿈에 본 도원>을 연상케 하며 빈주암은 신비한 창조력, 장엄한 절벽과 경관이 어우러져 그림 전시장에 들어선 느낌)
제6경 : 소등(昭燈)의 일출과 망향바위(아침 해가 떠오르면 이 산비탈이 먼저 밝아 오고 해수욕장으로 적합)
제7경 : 남문의 해상터널(용이 드나들기 위한 석문과 60m 정도의 긴 터널이 있다)
제8경 : 국흘도와 칼바위(대국흘도, 소국흘도, 개린여, 두억여, 기무여를 말함)
[네이버 지식백과] 가거도 [可居島] -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 (한국의 섬 - 신안군, 2021. 04. 30., 이재언)
[네이버 지식백과] 가거도 [可居島] -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 (한국의 섬 - 신안군, 2021. 04. 30., 이재언)
[네이버 지식백과] 가거도 [可居島] -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 (한국의 섬 - 신안군, 2021. 04. 30., 이재언)
[네이버 지식백과] 가거도 [可居島] -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 (한국의 섬 - 신안군, 2021. 04. 30., 이재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