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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랜 기다림 끝에 참가했던 대회라 그럴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4년전에 썼어야 할 후기를 이제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긴 기다림만큼이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였지만, 그것 이상으로 충분히 멋진 시간과 새로운 설레임을 가져다 준 경험이었기에, 대회를 처음 준비했던 2017년부터의 기억을 더듬어, 준비 과정과 대회, 그리고 여행의 기록을 남겨 봅니다.
또 한 번의 기회가 된다면, 그 땐 혼자가 아닌 목마 클럽분들과 함께 하는 멋진 마라톤 여행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처음으로 UTMB 대회에 대해 알게 된 건, 2017년 화대종주를 준비할 때였나 보다.
역시 처음 해 보는 장거리 산행을 앞두고, 배낭, 스틱, 랜턴 등을 알아보던 차에, 여러 블로그에서 알프스 몽블랑(Mont. Blanc)을 한 바퀴 도는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다.
"트레일러너들의 꿈", "세계 최대 트레일러닝 축제" 등의 수식어와 함께 올라온 UTMB 사진과 동영상들.
더없이 파란 하늘에, 그린 듯한 흰 구름, 은백색 산봉우리들과 빙하를 배경으로 초록 능선을 달리는 선수들. 그리고 거친 숨소리.
가보자!!!
얼른 버킷리스트에 담아 두고, 참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는데...
전 세계 트레일러너들의 꿈의 무대인만큼, 참가하는 과정과 시간이 길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물론 약간의 운도 따라야 하고. ^^;;
먼저 참가 종목을 골라 보자!
목포마라톤클럽 | 2017년 10월 14일 트랜스 제주 울트라 트레일런 100km - 1 - Daum 카페
2017년 트랜스제주 대회 후기에도 적었듯 UTMB (공식명: 울트라 트레일 뒤 몽블랑)에 당시에는 5개 종목, 2023년 현재는 총 8개의 종목(UTMB(170km), CCC(100km), OCC(56km), PTL(300km), TDS(145km), MCC(40km), ETC(15km), YCC(14km)이 있다.
이 중 맏형격인 UTMB를 비롯, CCC, OCC 3개 코스가 가장 대표적이고, 그만큼 참가 경쟁률이 치열하다. 그런 이유로 위 3개 코스중 하나를 참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가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추첨을 기다려 한다. 나머지 코스들은 선착순 접수.
난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CCC를 골랐다. 왜? 이름이 멋져서! ㅋ
UTMB 170km는 사람이 달릴 수(또는 걸을 수) 있겠다 싶은 상상의 영역조차 벗어난 거리였고, OCC 56km는 쪼금 가오가..ㅋㅋ (그 당시에는 제법 잘 달리던, 무려 330도 막 하고 그랬던 시절이라...ㅎㅎ)
CCC는 거리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C(Courmayeur, 이탈리아)를 출발하여, C(Champex, 스위스)를 지나, C(Chamonix, 프랑스)로 골인한다는 상징성이, 달려서 하룻밤에 3개국을 여행할 수 있다는 매력에 바로 결정해 버렸다. 1타 3피! 렛츠기릿!!
UTMB 참가를 꿈꾼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ITRA(국제 트레일러닝 협회) 회원 등록.
무료 등록이며, 여기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면 국내외 대회 출전시 기록이 남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UTMB 추첨권(참가권 아님^^;;, 물론 각 나라별 ITRA 점수 순위 1~3위 까지는 추첨 면제)을 받을 수 있다.
ITRA 홈페이지: https://itra.run/
자, ITRA에 회원 등록까지 마쳤다면...이제 뭐다?!!!
참가할 대회를 정하고 아주 열심히 산을 달려야 한다~!!! 아주 많이~!!! 2년 동안 내내~!!! 다치지 말고~!!! ㅋㅋ
2017년 당시 UTMB CCC 종목의 추첨권을 얻기 위해선 ITRA에 등록된 국내외 트레일러닝 대회에 2회 이상 참가, 총 8포인트를 따야 했다. 하지만, 2023년 현재, 참가 조건이 바뀌어, 1개 이상의 러닝스톤(Running Stone)과 참가 지원 종목에 맞는 UTMB 인덱스를 획득해야 원서(?)라도 내밀어 볼 수 있다.
먼저, UTMB 인덱스는 예전과 같이 ITRA에 등록된 국내외 대회(우리나라의 경우, 제주, 거제, 강릉, 동두천 대회등 대부분 ITRA에 등록됨)를 참가하면 받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거제 50K를 참가하면 UTMB의 100km와 50km에 지원할 수 있는 50K 인덱스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동시에 러닝스톤도 1개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거 따는게 조금... ^^;;
러닝스톤은 전 세계 UTMB 월드 시리즈로 지정된 36개 대회를 참가해야만 얻을 수 있으며, 거리와 코스 난이도에 따라 대회당 1~8개까지 러닝스톤을 받을 수 있다. 비교적 거리가 가까워 참가하기 용이한 아시아권에서는, 올해부터 UTMB 월드 시리즈 일원이 된 트랜스제주 대회 포함 총 5개의 UTMB 월드 시리즈가 있다. 태국 2개, 중국 1개, 홍콩 1개 그리고 제주도.
UTMB 인덱스와 러닝스톤을 1 개 이상 챙겼다면 참가권을 얻기 위한 추첨에 응모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러닝스톤을 많이 가지고 응모할 수록, 당첨 확률이 높다는 것. 예를 들면 8개 가진 사람은 2개 가진 사람보다 당첨 확률이 4배가 높다. 여기서 꿀팁 하나, 트랜스 제주 50K를 참가하면 50K 인덱스와 2개의 스톤을 받을 수 있는 반면, 태국 치앙마이 100km 대회를 완주하면 인덱스는 물론, 무려 8개의 스톤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어 UTMB 참가의 패스트트랙으로 통한다고. (물론 4배 더 빡세겠지만 ㅋㅋ) 스톤 유효 기간이 2년이며, 한 번 받아 놓으면 2년 연속 참가권 추첨에 응모해 볼 수 있다.
충분한 인덱스와 러닝스톤을 모았다면, 다음 일정(2024년 UTMB 대회 기준, 매년 참가 일정이 비슷)을 참고하여 UTMB CCC 참가 신청을 해 보자.
2023년 12월 14일: CCC 사전 등록 시작 (추첨을 위한 사전 등록)
2024년 1월 11일: CCC 사전 등록 마감
2024년 1월 16일: CCC 참가권 추첨 및 발표 (두둥~!!!)
2024년 1월 29일: 당첨자 최종 등록 (참가비 접수) 마감, 보결(당첨자 중 미등록)이 발생할 경우 추가 추첨.
다시, 2019년 내 얘기로 돌아와서~
2017년과 2018년에 각각 4 포인트씩 모아, 2018년 12월에 CCC 참가 신청 사전 등록을 하고, 한 달을 더 기다렸다.
그 다음해인 2019년 1월 10일 저녁, UTMB로 부터 메일 한 통이 왔다..
"2019년 CCC 대회 참가자로 선발된 것을 알리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 함께 올 여름 샤모니에서 멋진 역사를 만들어 보아용~!"
대박!!!! 30년 전 학교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큰 감동이다~ㅋㅋ
더 감동이였던 건, 당시 CCC 경쟁률이 4:1 정도였는데, 한 번에 딱!!!
2년을 기다려왔던 메일이였다!
바로 참가비 접수하고, 숙소와 항공권을 예약했다.
특히 숙소는 당첨 결과가 나오는 즉시 예약하는 것이 좋은데, 인구 1만명의 샤모니에 UTMB 대회 기간, 무려 3만명의 선수들과 가족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추첨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엘리트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들, 스폰서 업체들은 미리미리 대회장 가까운 숙소들을 선점하기 때문에 위치 좋고 저렴한 숙소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 이다. ^^;;
이렇게 숙소와 항공권 예약을 마치고 나니, 이제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7개월.
총거리 100km, 획득고도 6000m를 넘기위해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대회를 2개월 앞둔 2019년 6월 22일, 자전거를 타다 낙차했다. 처음엔 단순 찰과상인 줄 알았는데, 좌측 무릎 후방 십자인대 파열...;;;;
다행히 수술은 면했지만, 2개월 이상 보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2년을 기다렸는데, 마지막 2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환불이 안되는 숙소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어렵게 손에 쥔 참가권의 취소 버튼을 누르기가....ㅠㅜ
대회 참가 취소를 하기 전, 다시 한번 UTMB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대회 규정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나처럼 대회를 앞두고 사고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규정집 거의 맨 마지막 부분, 그런 사람들을 위한 규정이 있었다!!!
부상에 관한 증거 자료(X-ray 자료, 진단서 등)를 우편으로 제출하면, 참가권을 다음 해로 이월해 준단다~!!!
인대가 끊어진 다리로 다시 트레일러닝을 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일단 1년의 시간을 벌 수 있기에 서둘러 자료를 모아 주최측에 보냈다. 얼마 후, 2020년 대회로 참가권이 이월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2019년 12월, 재활 치료로 조금씩 좋아지는 다리를 믿고 다시 2020년 CCC 참가 접수(이월 선수는 추첨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숙소 예약, 항공권 예약... 다시 연습... 이번엔 다치지 않도록 정말 조심조심했다.
하지만 이번엔.... 전례없던 최악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2020년 대회가 취소 되었다.
대회 한 번 참가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ㅠㅜ
참가권은 다시 2023년까지 그 효력이 연장되었고, 참가권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올해 초, 코로나로 걸어 잠겼던 각국의 빗장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첫 참가 신청을 한지 4년이 지난 올해 초, 참가 신청만 벌써 3번째, 2023년 9월 1일 열리는 CCC 대회 참가 신청을 하였다.
숙소와 인천에서 샤모니까지 교통편까지 예약하고 나면, 대략적인 준비는 끝난다.
대회 3개월 전까지 건강 증명서 (주최측에서 메일로 양식 보내줌)를 작성, 홈페이지에 올리고...
대회 1개월 전, 대회 당일 샤모니에서 출발 지점 (CCC의 경우 이탈리아 Courmyeur)으로 가는 대회 버스 승차 장소 및 시간 지정, 배번 수령 장소/시간까지 지정하고 나면, 드디어 UTMB에 가는구나 실감이 난다....^^
(UTMB 나갈 정도의 경험자들은 다 아시겠지만) 50km 이상 TR 대회 참가시 꼭 챙겨야 하는 "필수 장비".
거리에 따라 필수 장비가 약간씩 다르지만, UTMB의 경우 한국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날씨 변화가 심한 고산 지대를 넘어야 하는 관계로, 개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챙겨야 할 장비가 많고 까다롭다.
특히 방수 자켓을 꼼꼼하게 검사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어떤 걸 챙겨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외의 반전(?)이! (실제 장비 검사 얘기는 2편에서ㅋ) 보온을 위한 세컨레이어(반팔과 자켓 사이에 입는)도 처음 챙겨보는거라 역시 고민.(만 많았음. 대회때 입어보지도 못한건 안비밀ㅎ)
이번에 챙겨간 주요 장비 목록 & 휴대폰 로밍
배낭: U사 12L (담아가야 할 짐이 많아 메이커 상관 없이 10L 이상 추천)
시계: G사 Solar 2 (GPS 켜논 상태로 30시간 사용 가능하다 했는데, 실제로는 24~25시간 정도 가능한 듯, 중간에 충전 필요. 물론 25시간 안에 들어오면 충전이 필요없겠지만 ㅋ, 타 시리즈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고 가볍고 정확하고 밧데리가 오래간다.)
신발: H사 스피드코트 5 (다른 건 신어본 적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
스틱: B사 카본 Z (필수 장비는 아니나, 꼭 필요한 장비. 이번 대회에서 보니 역시나 대세는 L사와 B사)
방수자켓: S사 보나티 방수자켓 (주최측에서 요구하는 방수 스펙에 딱 맞는... 디자인은 ㅂㄹ데 기능성은 짱)
휴대폰 로밍: K사 "데이터 함께 ON" (33000원에 2GB, 대부분의 유럽국가들과 경유지인 두바이에서도 잘 터짐)
출국 이틀 전, 필수 장비 목록과 구간별 보급 계획표를 펴놓고 배낭을 꾸리는데, 정말 이사짐 수준이다. ㅋㅋ
이젠 가장 중요한 "몸 만들기"
벌써 3번째 준비하는 거라 코스도는 눈을 감고도 그릴 정도로 달달 외웠다.
문제는, 한참 잘 나가던, 100km 장거리를 밥 먹듯이(ㅋ) 달리던 2019년이 벌써 4년전 과거가 되어 버렸다는 것.
다리 부상으로 100km는 커녕 하프도 버거웠고 그 와중에... 2022년 6월 오른팔 상완골 골두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난생 처음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7개의 철심을 오른팔에 박았다. 뼈가 잘 고정이 되기 위해선 1년 이상 철심을 박고 있어야 한다고... 1년 후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 날짜를 계산해 보니 대략 대회 2개월 전....UTMB와는 정말 인연이 없나 보다 싶었다...ㅠㅜ
수술 후 안정 1개월, 재활 3개월... 대회 날짜는 갈수록 다가오는데, 몸 상태는 마라톤을 맨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안 좋은 상태로 리셋되어 버렸다.
코로나로 참가권이 3년 연장이 되었지만, 전에 따놓은 포인트들의 유효 기간이 지나버려서 50km 트레일러닝 대회를 1회 이상 참가해야 했다. 철심이 박힌 뻣뻣한 팔로 2022년 가을 트랜스제주 50km, 2023년 Korea 50km(최악의 우중주)를 간신히 완주했다.
그리고 대회를 3개월 앞둔 2023년 5월, 철심 제거 수술. 한 달 후 6월, UTMB 대회 마지막 훈련이자 점검차 신청한 거제 100km. 지난 3년간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를, 거제 대회 하루 전날 딱 걸리고 말았다. 37km에서 DNF.
코로나 후유증으로 다시 한 달 고생. 장거리, 오르막 어느 하나 준비된 것 없이 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월출산 2회 왕복, 부주산 15회전 정도. 턱없이 부족한 훈련량이지만,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고자 싶었나 보다.
출국하기 3일전, 대회 목표 속도로 정했던 "시간당 5km"로 부흥산을 4바퀴 돌고 마지막 훈련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2023년 8월 29일.
장장 6년을 기다려 왔던, 꿈에 그리던 샤모니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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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헉~ 부담스러운 훈련그리고 대회 후기
마치 내가 뛰건처럼 읽는 내내 힘들어요 ㅎㅎㅎ
그래도 저많은걸 해냈다니 대단해요~따봉^^
첫 댓글 감사 드립니다~! 딱 두 달만에 대댓글이네요~^^;;
적어놓고 보니 뭔가 많아 보이는데, 너무 오랜 시간 준비한 거라 급할 거 없이 조금씩조금씩 했네요~
신청하고, 여행 일정 준비하는 것보다 대회 몸 만들려고 꾸준하게 운동해야 하는 것이 젤 힘들었어요 (결국 못했지만 ^^;;)
내년에는 내년 회장님이랑 더 좋은 곳, 재미난 곳 많이 다니시게요~^^
대단한 의지력 끝내 결실을 이루게되서 다행이고 참 그 누구도 쉽게 할수없는 그런 일들을 해내는 세상을 널리 바라보는 강호의 무림도사요~ 굿입니다
늘 응원 감사합니다~
올 초 뜻밖의 부상땜에 여러모로 고생 많으셨을텐데, 이제 거의 회복하신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꾸준하게 재활 운동하신 것도 있겠지만, 부상에 무너지지 않은 정신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열심히 형님 따라 다녀야겠네요~ !
이해가 쏙쏙되는 글~글모아 책발간 추천합니다ㅎㅎ~~~^^드라마틱한 후기…덩달아 힘들기도 하고 재밌게 잘 봤습니다~
신기한게, 분명 내가 쓴 후기인데 나중에 읽어보면 3인칭 시점으로 읽힙니다.ㅎㅎ
그래서 재미도 있고요~ㅋㅋ
책까진 아니더라도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고 운동이 하기 싫어질때, 종종 카페에 들어와 읽어 볼 수 있는 "꺼리"용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