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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담호스티스 22
제6장 필담 호스티스 도쿄로 가다
1 동경하는 도쿄 OL 생활...
"한 번쯤은 도쿄에서 일해 보고 싶다." 도쿄에 온 것은 그런 극히 단순한 동기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오모리의 가게를 몇 군데 경험하고 호스티스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상경을 기회로 호스티스를 그만두고 도쿄에서 동경하는 직장 생활을 해보고 싶다." 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쿄에 사는 지인에게 상담을 하고, 그분이 일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은 해외에서 해산물을 수입하는 회사의 사무직이었습니다.
그분은 커리어 우먼으로 열심히 영업을 하는 모습이 아주 멋진 분이었습니다. 알게 된 그때부터 제가 존경하게된 언니였어요. 물론 제가 그분과 똑같이 일할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전화응대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무원으로서는 부적격일 것입니다.
그래도 회사 분들은 모두 친절하고 사무 경험이 없는 저를 상냥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 조작에 씨름하면서 재고 관리를 하거나 때로는 창고까지 가서 재고 조사를 돕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접객업밖에 해보지 못했던 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일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한편, 외울 것이 많아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 다른 일을 부탁받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대응이 소흘했던 것 같았습니다.
"리에, 좀 신경써줘." 저에게 주의를 준 것은 존경하는 언니였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여유가 없는 것을 넘어 완전히 극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저에게 사무 능력이 없었을 뿐입니다. 냉정하게 자신을 되돌아 보니, 저는 회사의 짐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망의 직장 여성이 되고 싶다."는 처음의 각오는 어디로 갔는지, 불과 몇 달 만에 오로지 컴퓨터의 숫자와 씨름하는 나날에 완전히 지쳐 버렸습니다. 지난 날 지겨워해서 다시는 돌아가고싶지 않아하던 물장사가 아직은 저에게는 맞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직장 여성 경험도 없고, 귀도 들리지 않고 전화응대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인 저를 일하게 해준 회사에는 매우 감사를 하고 있었습니만 "여기서 하는 이런 일에는 나보다 더 적합한 분이 따로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뼈저리게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존경하는 언니에게 퇴직 의사를 전했습니다. 모처럼 회사를 소개해 주셨는데, 기대만큼 일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을 솔직하게 사과했습니다.
"아무래도 리에에게는 OL은 적합하지 않나봐." 그분도, 주위 분들들도, 역시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순조롭게 퇴사가 결정되었습니다. 신세를 졌던 회사를 그만두고 저는 무직이 되었습니다. 경력은 제로와 같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호스티스밖에 없다. 필담 호스티스밖에 없다." 다시 한 번 밤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직 도쿄에 온 지 불과 반 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2. 청각 장애인에게 있어서의 도쿄 생활.
아오모리에 살고 있을 때부터 도쿄에는 몇 번이나 놀러 온 적은 있었습니다. 소꿉친구 미유키를 비롯하여 현지 친구가 몇 명 도쿄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러오는 경우와 생활하는 경우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리감각이 없는 데다 귀가 들리지 않는 제가 혼자 사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오모리 출신이라고 하면 대자연의 시골에서 자란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많습니다만, 본가는 아오모리 시내에 있어 대도시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 중간의 마을에서 자란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도쿄는 모든 것이 커서 아오모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최근까지 2년 정도 도쿄에서 살고 있어도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전철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다지 붐비지 않은 시간대에도 도쿄의 전철은 복잡해서 어느 선을 타고 어디서 갈아타야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익숙하지 않은 전철은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기 마련입니다.
그 중에서도 만원 전철은 더욱 그렇습니다. 너무 혼잡해서 어지럼증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아직은 안 돼!"였습니다. 매일 아침 그 혼잡한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만날 때마다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교통수단으로 택시를 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장소에서 긴자로 가려고 택시를 탔습니다. 거기에서 긴자까지는 택시로 15분 정도, 요금은 2천엔 정도면 도착한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습니다.
택시에 올라 메모로 목적지를 전달한 후, 저는 고객과의 문자 교환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목적지까지의 루트 등은 운전 기사에게 맡기고 있었습니다만,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택시에 탑승한 지 30분 가까이 지나 있었습니다. 황급히 기사님께 물어볼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요금이 평소의 배나 나왔습니다.
"왜 이렇게 사간이 많이 걸렸어요?" 제가 고객과 문자른 하다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 길이 막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필담으로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운전 기사는 놀라운 내용을 메모장에 써내려간 것입니다.
"손님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었는데 대답이 없길래 어디서 내려야 할지 잘 몰라서 긴자 거리를 세 바퀴나 돌았어요." 저의 마음은 너무 슬펐습니다. 목적지를 전달하는 메모를 보여주었을 때, 운전 기사는 제가 난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도 태운 손님이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빙글빙글 같은 곳을 계속 달려도 되는 것일까요? 어디선가 일단 차를 세우고 뒤돌아보기만 하면 아무리 문자에 푹 빠져 있었지만 저도 그걸 깨달았을 겁니다.
난청인이 말을 하면 발음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종종 지적인 장애를 가진다고 착각을 합니다. 저는 목적지를 적은 종이를 보여주면서 "긴자까지 부탁합니다."라고 소리내어 말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운전 기사님도 제가 지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장애인이니까 어차피 잘 모르는 게 틀림없어." 라고 기사님이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대로 항의를 할까 생각했습니다만, 이미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요금을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는 장애인 수첩이 교부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면 택시비가 10% 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도 항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 주었으면 하고 장애인 수첩을 꺼내 운전 기사에게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운전 기사는 담담하게 할인 절차를 진행할 뿐 끝까지 사과의 말은 없었습니다. 저는 점점 더 비참한 마음이 되어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잘 모르는 대도시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여러 가지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은 흔한 이야기이고,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촌놈이기 때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습니다.
황당한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화를 내거나 몰래 슬퍼합니다. "도쿄에서 성공하고 싶다. 그럴러면 이런 일로 좌절해서는 않된다."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자신을 북돋우고 있는 것입니다.
[칼럼] "사춘기 무렵에 생겨버린 골이 아직도 메워지지 않고 있다." 사이토 리에의 부모님.
고향 아오모리를 떠나 도쿄로 가버린 뒤로는 리에는 거의 고향집에 얼굴을 내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아오모리에 와도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고 다시 도쿄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마저 있다고 한다. 역시 사춘기 시절 생겨버린 골이 아직도 메워지지 않은 모습이다.
"리에의 오빠 결혼식에서나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였어요. 얼마 전에도 리에를 만나러 부부가 도쿄에 갔습니다. 도쿄에 도착해서 '드디어 리에를 만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리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일이 생겨서 만날 수 없게 됐다' 고 적힌 문자를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리에만을 만나기 위해서 상경했기 때문에 관광을 할 염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아오모리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역시 슬픔과 한심함으로 신칸센 승강장에서 남의 눈을 꺼리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울어버렸습니다." 라고 어머니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이 책에 실을 어린 시절 사진을 고르기 위해 리에는 오랜만에 고향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몇 년 동안 고향집에는 들르지 않았다고 한다. 고향집에는 가족 외에 귀여워하던 개도 리에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 개는 리에가 돌보겠다고 약속하고 키웠기 때문에, 아빠는 일절 돌보거나 예뻐하지 않아요. 분명 개를 볼 때마다 도쿄에 가버린 리에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 싫어서 인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어머니는 착잡한 아버지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 필담 호스티스 23
3. 필담 호스티스의 긴자 데뷔.
여성 사무원직을 그만둔 저는 당장이라도 일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밤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조금이라도 빠른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가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모처럼 도쿄에서 호스티스로 일한다면 일본에서 가장 수준 높은 긴자에서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긴자의 고급 클럽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선 컴퓨터로 조사하고, 좋을 것 같은 가게를 찾아 메일로 약속을 넣고 면접에 임했습니다. 긴자에서도 손꼽히는 곳으로 유명한 '르 자르당'입니다.
긴자에서 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긴자에서의 경험이 있는가, 소개자가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긴자에서의 경험도 없고 소개해 주는 분도 당연히 없으며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으니 제 앞에는 어려운 문제만 쌓여 있었습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선뜻 일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면접을 해주신 분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호스티스가 아니더라도 가게의 사무 일을 해 보지 않겠는가? 라고 친절하게도 호스티스 이외의 다른 일을 제안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전번 직장에서 뼈저릴 정도로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클럽에서 사무일을 하게 되면 또 여러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때문에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호스티스로 일하게 해 달라고 열심히 어필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에게는 적지 않은 빚도 있습니다. 그것을 갚기 위해서라도 사무직이 아닌 호스티스로 일하고 싶습니다. 아오모리에서의 클럽 경험도 있기 때문에 귀가 들리지 않아도 필담으로 접객할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제발 호스티스로 일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부탁했지만 아직 담당자분은 망설이시는 눈치였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는 합격 여부가 결정되지 않고 결론은 보류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긴자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인가." 저는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치 신의 은총 같은 한 편의 문자가 우연히 도착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오모리에서 저를 예뻐해 주신 손님이 며칠 후에 일 때문에 도쿄에 오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오랜만이니 꼭 만나자" 문자에 그렇게 적혀었습니다.
저는 바로 답장을 드렸습니다. 일하고 싶은 긴자의 가게가 있다는 것과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할 수 있을지 미묘한 상황 등을 숨김없이 전했습니다. 그리고 꼭 함께 그 클럽에 가 주시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그 정도 부탁이라면" 하고 그 손님은 바로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아오모리 고객이 도쿄에 오시는데 그 손님을 소개해 드릴 테니 저도 함께 찾아 뵙고 싶다는 내용을 바로 '르 자르당'에 전해습니다.
열의가 전달된 것일까요, 가게 쪽으로부터 OK의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약속한 날 밤 아오모리의 고객 손님이 저를 가게에 데려가 주셨습니다. 벌써 몇 년이나 호스티스 일을 해 왔는데, 첫 긴자의 밤에 저는 두근두근, 들떠 있었습니다.
그분은 마담과 직원 여러분께 제가 아오모리에서도 호스티스로 어엿하게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 고객의 엄호사격이, 일자리가 정해지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저에게는 얼마나 기쁘고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저는 염원하던 긴자 호스티스의 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칼럼] "역시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가 물장사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르 자르당' 오너마마 모치즈키 아케미씨.
'르 자르당'은 리에가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린 긴자의 클럽으로 긴자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고급 클럽이다. 31세에 '르 자르당'의 주인이 되어, 그 이후 계속 가게를 지켜오고 있는 모치즈키 아케미씨는, 책도많이 내고, 텔레비전에도 이름이 알러진 인기 마담이다.
처음에 리에가 면접에 왔을 때의 모습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역시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가 물장사를 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호스티스의 일은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일입니다. 때로는 즐겁게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상담사의 역할까지 해내는 것이 긴자의 호스티스이기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큰 핸디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받아들인 것은 역시 마담의 아량이 넓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긴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난청인 호스티스는 없었습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본인의 ‘꼭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 베팅해 보기로 했어요.”
리에가 아오모리에서는 최고의 호스티스였다고는 하지만 긴자에서는 긴자의 방식을 터득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마담과 선배 호스티스가 일하는 법과 매너 등을 알려줬다고 한다.
"호스티스는 고객과 대화를 나누면서 잔 속 술의 양이나 재떨이가 더러워지지 않았는지 등 세세한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녀의 그런 배려는 완벽했어요. 제가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하면, 고객에게 보내는 편지나 문자를 쓰는 방법 정도였어요. 제대로 실천하다 보니 손님도 늘더라고요." 다만 답답했던 면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외곬인 면이 있기 때문에 고객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고객과의 거리감 유지 방법, 사귀는 방법이 서툴었어요. 이것은 귀가 들리고 들리지 않고 하는 것과는 무관한 성격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그 부분의 예절을 제가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만, 하지만 좋은 사람을 찾아 결혼을 하거나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마담의 눈은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언니 같은 눈빛이었다.
● 필담 호스티스 24
4. 긴자생활의 어려움
모든 가게는 아니지만 긴자의 고급 클럽에는 영구 지명제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손님을 처음 가게에 데려온 호스티스가 그분의 담당으로 영구히 지명을 받는 겁니다.
고객님이 지불하는 돈은 모두 그 담당 호스티스의 매출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고객님이 모신 다른 손님도 그 담당의 매출이 됩니다. 물론, 그 때의 다른 고객이 다음 번에 혼자 오셨을 때도 그 담당의 매출이 되는 겁니다.
같은 테이블에 다른 호스티스가 도우미로 합석해여 고객의 마음에 든다고 해도 매출의 일부를 할당받는 일은 당연히 할 수 없습니다. 한번 정해진 담당은 그 호스티스가 가게를 그만둘 때까지 바꿀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호스티스끼리 고객을 뺏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생긴 시스템으로, 매우 합리성이 높은 것입니다만, 저처럼 도쿄에서 호스티스 경험이 없는 인간에게는 지명을 해 주시는 고객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장벽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급 클럽에는 매출이나 2차의 할당량이 있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계속 일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제가 처음 일했던 '르 자르당'은 긴자에서는 드물게 영구 지명제를 취하지 않은 가게입니다. 처음 긴자에서 일하기 시작한 저 같은 호스티스라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일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님이 내점하여 어떤 여자를 지명했다고 합시다. 그 고객이 혼자가 아닌 친구와 몇 명이 오신 경우, 도우미로 붙는 호스티스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일행 손님이 마음에 드시면 다음에 가게에 오실 때 자신이 그분의 지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고객과 적극적으로 2차를 가기도하고 연락도 자주 드립니다. 2차란 가게의 폐점 후에 손님과 식사나 노래방 등에 나가는 것입니다. 2차로 고객님과 친해지면 다음에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매출을 올리고 있는 동료는 매일같이 고객과 2차를 하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에 저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오모리와 긴자와는 호스티스의 일에 대한 자세가 현격히 다르다." 는 것이 긴자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의 저의 솔직한 소감이입니다. 얼굴이 예쁜 것은 물론, 모두 다양한 공부를 해서 고객과의 대화에 대비하고, 가게에 오시도록 하기 위한 노력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아오모리의 호스티스가 모두 레벨이 낮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역시 사람에 따라 접객 수준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오모리에서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 번 가게에 와주시는 소중한 손님이 오셨어요. 그날은 접대손님을 대동한 자리에 불러 주시고, 새병의 술도 청해 주셨습니다. 고객님은 그 날도 만족하고 가셨는데, 돌아가신 후에 계산이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새병의 술값이 누락됐던 것입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도 고객이 기분 나쁠 수 있다. 자주 와주시는 소중한 손님이니까 이번에는 내 월급에서 대납해야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차후에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재치 있는 호스티스라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전하기 전에 "계산이 잘못되었으니 다음에 오셨을 때 새병의 술값을 지불해 주세요." 라고 다른 동료가, 담당이었던 저에게 상의도 없이 손님에게 전화를 해버린 것입니다. 담당인 제 체면은 완전히 뭉게져 버린 것입니다.
그 동료는 나름대로 눈치껏 전화를 한 것 같았지만, "그런 말을 손님에게 함부로 해버리면 분명 기분 나빠할 거예요. 왜 나에게 상의도 해 주지 않았어요?"라고 하니 그제서야 제 뜻을 깨달았다는 얼굴을 하였습니다. 이후로 그 손님은 가게에 와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긴자라면 이런 이상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손님이 오셔서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시간도 다른 동료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습니다. 배울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긴자의 선배 호스티스 분에게 이런 조언을 받았습니다. "리에는 지금까지는 젊음만으로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차츰 내면을 충실히 한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아오모리에 있었을 때에 그 말을 들었더라도 분명 의미도 몰랐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도 일류 분들만 모이는 긴자 호스티스의 일원입니다. 이 말의 무게를 날마다 실감하고 있습니다.
"리에짱, 호스티스는 인기가 많아서, 그 때문에 고민할 때가 꽃이야." 라고 아오모리에 있을 때 마담이 했던 말도 자연스럽게 생각납니다.
긴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위의 멋진 언니들을 본받아서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긴자에서 제가 있을 곳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사무원을 할 때와 같은 실수를 더 이상 해서는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접객업 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으니까요.
● 필담 호스티스 25
5, 긴자의 손님.
긴자의 고객은 역시 품위 있고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은 것도 매력 중 하나입니다. 호스티스인 저는 고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일이지만, 반대로 고객으로부터 가르짐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쓰면 남자의 마음을 어지럽혀." 제가 쓴 필담에 오류가 있다며 올바른 한자나 말투를 가르쳐 주시는 문필업을 하고 계시는 고객님도 계셨습니다.
"호스티스는 이렇게 하면 인기가 있을거야." "선물은 이런 것을 이런 타이밍에 드리면 좋은 거야." 긴자에서 익숙한 분들의 이런 조언은 언제나 제게 든든한 아군이자 많은 응원단 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나 특기를 살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소믈리에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 고객님은 와인에 대해, 중국어에 능통하신 분은 재미있는 말 등을 열심히 제 메모장에 써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모처럼 즐겁게 술 마시러 오셨는데 제가 더 공부를 해서 죄송할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다양한 고객을 만나다 보니 제 이상적인 남성상도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멋진 사람이 좋다. 아니면 부자가 좋을까."라고 젊었을 때는, 자신의 처지도 생각하지지 않고 제멋대로 생각했습니다.
긴자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지금은 외모나 부유함보다 돈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많은 분들로부터 신용받고 있다는 것,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를 겸비한 분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만나는 멋진 남자는 대개 나이가 많은 분이기 때문에 예전보다 나이가 많은 분에게 마음이 설레게 되었습니다. 긴자 거리의 마법에 걸려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6. 긴자의 호스티스
아까도 언급했지만, 긴자의 동료들은 모두 호스티스로서의 프로 의식이 높은 멋진 여성뿐입니다. 그 본모습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들뿐입니다.
낮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지 않지만, 이전에 같은 클럽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의 본업은 놀랍게도 여자 프로 레슬러였습니다. 아주 멋진 미소가 매력적인 미인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손님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레슬링할 때는 악역을 하고 있었다고 해서 두 번 놀랐습니다.
"정말 프로레슬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예요?" 저도 모르게 몇 번이나 확인했을 정도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저를 자기 경기에 초대해 주었어요. 첫 프로레슬링 관전입니다. 게다가 맨 앞자리를 잡아줘서 두근두근, 설렘도 최고조였습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보니 상상 이상의 놀라움입니다. 의자가 날아 오기도 하고, 던져진 레슬러가 튕겨져 나오기도 하고, 그때마다 넋을 잃고 꺄악꺄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친구가 등장했습니다. 평소의 귀여운 미소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넉살 좋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무기를 휘두르거나 파이프 의자를 던지거나 하고 있습니다. "역시 여자는 무서워..." 이런말을 하는 것은 뭣하지만, 여자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가 봅니다.
긴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그것만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견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오모리에 있을 때의 저는 돈을 벌면 번 만큼 써 버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된다." 이런 식으로 돈에 대해서도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갖고 싶은 옷이나 화장품을 사고 관심 있는 것에는 아낌없이 돈을 썼습니다. 또 식사하러 가면 아주 취할 때까지 마시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함께 있던 친구는 적당한 선에서 끝내고 있는데 저만 숙취가 될 때까지 마셔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일에 돈을 썼던 것 같아요. 조금도 저축을 하지 않고, 게다가 여러 가지 대출을 받아 빚까지 지고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자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해 온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때로는 바보같은 짓을 하거나 비싼 쇼핑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생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료 중에는 학비를 내기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가족의 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제대로 경제 공부를 하여, 주식을 사고팔아 긴자에서의 일 이상으로 벌고 있는 사람까지 있는 등 정말 다양합니다.
"나도 정신차려야겠다." 정말 긴자의 호스티스로 일을 하다 보면 자극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긴자에서 일하는 것이 지금은 무엇보다도 배움의 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