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서울 17호.hwp
모정 외 1편
김희정
내 품보다
더 큰 녀석이
가슴을 파고든다.
강한 자식을 위해
사지로 내모는
어미 독수리처럼
담담히 그저
보기만 한다.
상처 없는 독수리에게
하늘의 자유가 없듯이
찢어지는 아픔에
눈물이 차오른다
오늘의 이 아픔이
더 큰 환희가 되어 날아오를
그 날을 기다린다.
-------------------------------------
마음
김희정
몇 번을 보고
또 봐야
알 수 있는지
보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그 심정이야 오죽할까
마주 친
두 눈에서
답을 듣지만
그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어서 말해다오
내 생각만
어수선하게 늘어놓고
심난만하네
김희정 약력
영등포공업고등학교 교사, 세목문학회 회원
---------------------------------------------
치명적 클로우즈업 Close-up
최 문 구
4월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낮잠을 자는 중 이었다. 불안한 손 전화 진동소리에 잠이 깼다.
‘응 엄만데... 느그 아부지가 칼 갈아준다 싸드니.. 손을 벼불었다. 그자... 병원 갔는데...피가 안 멈춘다고 큰 병원 가라고 한단다... 전화 좀 해봐라..’ 별 일 아닌 듯 시큰 둥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뿜어 나온다. 우리 집안 특성이 무소식이 희소식. 갑작스런 소식은 좀 걱정스러울 때가 대부분이다.
즐겨찾기에 가서 3번째 번호를 연신 눌렀다. 아직도 텃치 폰이 익숙치 않다. 잠시 후. 낯익은 목소리. ‘아빠다. 어쩐 일이냐?’ ‘병원 가셨다면서요? 괜찮으세요? 피는 멈췄나요?’ 이것저것 여쭈니.. 좀 있다 수화기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한 소리 하신다. ‘병원이 손가락 혈관 수술할 의사가 없단다. 벌써 세 번째 병원인데, 아무래도 주말이라 어렵나부다. 그냥 월요일에 보훈병원 갈란다. 병원비가 솔찬히 나온다. 6 만원 넘게 달라드라. 보훈병원 가면 공짠데...’ 결국 혈관과 신경 손상은 겨우 지혈로 봉한 채 월요일을 맞았다. 모든 게 공짜인 보훈 병원에 가신다나.
1941년생. 금년 73세. 서초동 S고 학교 지키미. 2년째. 새벽 5시30분, 은평 뉴타운 아파트 출발. 구파발역 15 분 소요. 3호선 전철 50분 소요 남부터미널 역 도착. 다시 도보로 15분 소요. 7시20분에 학교도착해서 오후 5시까지 근무. 출근과 똑같은 귀가. 7시 도착. 이것이 퇴역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일과다. 멀리서 본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 퇴근하면서 아버지를 가까이 보게 되었다. 모자 쓰시고 양복 입으셨으며 한쪽 손에 반깁스를 하시고 정형외과 병원 앞에서 만난 아버지. 수술은 간단치 않았다고 한다. 2분 정도 칼갈다가 다친 후 2일이 지나 수술시간이 무려 2시간 넘는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었단다. 배고프신듯해서 둘이 함께 설렁탕 집에 들어갔다. 다행히 다친 손이 왼손이라서 식사하시는데 지장이 없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어버지와 마주앉아 둘이서 식사를 했다.
모자는 여전히 쓰신 채 한손으로 맛있게 국물을 드시면서 연신 시원하다고 꺼억 꺼억 하신다. 설렁탕을 몇 년 만에 드시는 듯한 장면이다. 식사 중에 눈을 들어보니 주름살보다 모자가 눈에 자꾸 거슬렸다. 모자 벗고 드시라 하니 머리숱이 거의 없으시다며 창피하시다고 한다. 생각보다 머리가 많이 빠지셨다. 아버지를 이렇게 가까이 본적이 얼마만인가... 솔직히 가까이 마주대한 적이 철들고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 화제가 된 드라마 ‘그 해 겨울 바람이 분다’ 가 종영 되었다. 앞 못보는 송혜교, 극중 오 영과 그녀의 오빠라고 사칭하던 조인성, 극중 오 수. 그 둘의 러브 스토리가 긴장과 애틋함을 시청자들에게 불러일으키게 했던 촬영기법이 익스트림 클로우즈업 샷 이었다. 화면 가득히 눈물짓는 송혜교와 사랑스런 눈빛을 담은 조인성의 미소는 심장을 멈추게 했다. 영상미를 최고로 추구하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배경샷을 애써 담아냈지만, 그보다 더 드라마의 인기는 극단적인 클로즈업샷, 치명적이라고 할 수있는 클로우즈업샷 에 그 비밀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시청하는 우리들에게 바로 앞에 다가서는 송혜교, 조인성의 미소와 눈물을 바로 담는 우리들의 눈과 귀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 이 촬영기법은 연기자의 마음을 바로 느끼기에 감정이입의 도구로 연출기법에 많이 사용되고있다. 사실 이 기법으로 촬영되고 연출된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우리들은 폭발적인 감정과 극도의 흥분을 경험해 왔었다. 나도 이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열정적으로 가르쳐 온 이론이었는데.. 내 삶의 클로우즈업은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뭔가에는 극도로 가까이 다가서는 열정으로 살아왔는데 내 아버지는, 내 가족은 그렇게 가까이서 마주한 적이 언제였었나.. 어릴적에 엄마의 볼과 엄마의 등에 바짝 가까이 마주했고 동생들과 마주하고 잠을 청했으며 아빠의 가슴에 안겨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두 손 높이 올리고 하늘을 향해 두 손 불끈 쥐고 다녔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만나던 그 숱한 시간들도 좀 더 가까이, 더, 더, 바짝... 지금은 왠지 가까이 바라보면 부담스러워 진 것 같은 내 일상이 아닌가. 가족뿐만 아니라 누군가 가까이 다가서면 움찔 물러나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영상 속 연기자들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더 눈물짓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은 조금 씩 멀어져가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멀리멀리 보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설렁탕 국물처럼 하얗게 그리고 뽀얗게 떠오른다.
아버지 손이 좀 부어오른 듯 붕대사이로 보이는 손가락을 한번 만져보았다. 괜시리 아프시냐고 여쭈어보니 괜찮다고 하셨다. 아버지 손 잡아본지도 참 오랜만이었다. 쌀쌀한 4월의 월요일 밤. 병원에서 식당을 들러 은평뉴타운으로 향하는 차창 밖 세상은 스산했지만, 운전하는 내내 옆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쳐다보는 나는 시간이 도로 옆 한강물보다 더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문구 약력
영등포공업고등학교 교사, 세목문학회 회원
------------------------------------------------------
하 관 외 1편
김창수
눈부신 비상
천천히 유영하는
한낮의 자유
그윽한 국화 향에 싸여
관은 내려간다.
내려가는 것은
관이 아니다.
영혼이 없는 주검이다.
버려야 할 육신이다.
썩어져야 할 몸뚱어리다.
땅은 문을 닫고
하늘은 문을 열어 주었다.
하늘 위로 춤추는 나비야
태양 아래 빛나는 영혼아
눈물도 때로는 힘이 되고
슬픔도 때로는 위로가 되는 것은
내려가는 것은
관이 아니라
오히려
황홀한 날개 짓이며
비상하는 몸짓이기
때문이리라.
---------------------------------------------------------
눈꽃나무
김창수
칼바람 휘두르던 어둠
비명과 고통의 순간에도
눈부시게 그려낸
눈꽃 세상을 보라
아픔도 잠시
환한 아침을 맞으며
환호하는 나무들의
은빛 날개 짓을 보라.
굴곡진 세월,
계절의 숨 가쁜 호흡에도
흔들림 없이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다
어느새 하얀 노년을 맞이한
저 고고한 자태를 보라
그 누구도 탓하지 않으며
그 무엇도 탐하지 않으리라
다만 어둠 속
빛나는 눈꽃 속에
또다시 봄을 잉태하는
생명의 숨소리를
너, 지금 들어 보라
김창수 약력
시 전문 계간 「시세계」시 부문 신인상 등단
영등포공업고등학교 교사, 세목문학회 회원
----------------------------------------------------------
겨울 추자도에서 외 1편
김항걸
바다 가운데
가마우지, 갈매기
바람에 부딪치고
추자도 오후
갯바위 낚싯대
새우미끼 드리지만
칼바람
파도치는 물결
찌가 장단에 춤을 추고
월척의 기대는
삿갓조개로 된장 풀어
허기진 창자 채우며
앞서 가는 속마음을 달래네
--------------------------------------------
축구장 조명등
김항걸
저녁노을 밀어내고
어둠내린 운동장에
빛을 발한 조명등
차가운 밤공기
거친 숨소리
열기가 높아만 갈 때
캄캄한 운동장
조명등 아우성과
외로운 달빛
더욱 밝게 다가오는
세상의 등불
김항걸 약력
영등포공업고등학교 교사, 세목문학회 회원
------------------------------------------------
봄날에 외 1편
김 동진
개나리와 진달래꽃에서 묻어나는
아쉬운 마음을 싸들고
우리들의 꽃노래를 불러보지만
간 날을 보내고
조용히 올 날을 기다리며
몸만 홀로 두고
목련꽃 떨어지듯 가버린
봄날에
만져보는 아픔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이던가
-------------------------------------------------------
눈은 내리고
김동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창밖에 쏟아지는 눈
가슴의 상처를 덮으려고
모든 것들 위에 쌓이는 걸까
그 속에 묻혀 녹아내린 눈물
서러움이 이다지도 큰 걸까
지나간 날에 잠기어 우두커니 서서
폭풍처럼 밀려오는 소리
눈은 펑펑 내리고
나는 그리움에 젖는다
김동진 약력
영등포공업고등학교 교사, 세목문학회 회원
----------------------------------------------------
장터 외 1편
안현주
시끌시끌
마법 소리 부름에
졸래졸래 쫒아 가니
시골장터라
여기저기
음악 같은 흥정소리
발걸음이 종종종
나도 흥겨워
덩실덩실
돌아가는 상인들
주머니 속 짤랑 소리
행복한 뒷모습
뉘엿뉘엿
넘어가는 장터 노을
다음 약속 기다리는
텅 빈 장터
------------------------------------------------------------
빠른 세월
안현주
후들후들 걸었더니
어둠과 침묵만 남았고
온몸 힘주어 울었더니
넓은 세상이 보여
땅을 박차고 뛰었더니
끝없는 우주가 다가왔네
세월이 흘러 멀리와 뒤돌아보니
추억과 연민만 남아
멈추고 한숨 쉬니
다시 찾아보는 고향 길이네
안현주 약력
영등포공업고등학교 교사, 세목문학회 회원
----------------------------------------------------
고희역에서 외 1편
- 김정희님 고희연에 부쳐
윤제철
기쁠 때나 슬플 때를
혼자만 만나는 냥
겪어야 했던 많은 일들마저
하룻밤의 꿈처럼 묶어져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늘 주인공으로 산 기억 하나일 뿐
세월이 아무리 흘러갔어도
다시 보이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만
앞에 나타나 나를 반긴다.
벌써 고희역에 오다니
고비마다 붙여진 역 이름들을 뒤로 하고
한 생애 도중에 지나가는
또 하나의 커다란 역이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들과
함께 만든 사람들이 모여 앉아
지나간 날들을 축하하며
다가올 날들의 축복을 비는 오늘은
여정의 안전한 주행을 준비하는 날이다.
-------------------------------------------
붕어빵
윤제철
자장면 자장밥이
메뉴에서 지워지고
떡볶이에 덤으로 올라온
맛 뵈기 붕어빵 한 마리.
지느러미가 팥 빛 혈관을 비치며
파르르 떨다가 튀고 있다.
꼬리를 한 입 무니
몸통을 뒤틀며 뿌리는
서러움 섞인 비명.
떡볶이 국물에 곤두박질치며
낯가림 어린아이처럼 운다.
-----------------------------------------
윤제철 약력
(사)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사랑방시낭송회 상임시인,
서울교원문학회 회장 역임, 사랑방시낭송회 상임시인,
시전문 계간지「시세계」편집주간, 한국문인협회 남북교류위원 역임,
종합문예지 월간「문학세계」편집주간 역임,
시집 :「고향생각 한 잎」,「꼭 끼는 삶의 껍질」
「나를 앉힐 공간 하나」,「가려지지 않은 흠집」등
영등포공업고등학교 교사 역임
서울특별시동작구사당2동105극동아파트109동1505호
02-596-8167(집), 010-7229-8167(핸드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