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을까? 어떻게 읽을까? ‘독서’가 좋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학생, 학부모가 많다.여러 독서법이 있지만 학습과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중학생들에겐 수준에 맞춰 단계별로 깊이를 더하는 독서가 필요하다. ‘꼬리 물기 독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하나의 주제로 사고의 깊이를 더하고, 흥미를 넓혀나갈 수 있기 때문. 책 읽고 싶은 중학생, 책을 읽히고 싶은 학부모를 위한 독서법을 안내한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도움말 유순덕 관장(대치도서관)·안진훈 박사(MSC브레인 컨설팅)
독서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는 이가 많다.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고,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렵다고. 사고력이나 언어 이해력 등 독서의 효과를 누리면서 진로도 찾는 독서를 시키고 싶은데, 학원 말고는 답이 없는 걸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꼬리 물기 독서를 추천한다. 꼬리 물기 독서란 한 권의 책을 읽은 후 그 책과 주제나 소재가 유사하거나 연결성이 있는 다른 책을 읽어나가는 독서법을 말한다.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다독이 아니라, 단 몇 권이라도 깊고 꼼꼼하게 읽는 정독을 강조해 ‘독서의 양’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이 시도하면 좋다. 대치도서관 유순덕 관장은 “<사회>나<과학> 수업 시간에 지구 온난화를 배운 후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이 생겼다면 남종영의 〈북극곰은 걷고 싶다〉와 윤신영의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등의 책을 읽고, 이후 번스의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와 하기스의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을 접하면, 환경 파괴는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경제 관련 도서로까지 관심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이처럼 관심 분야의 깊이를 더하거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꼬리 물기 독서”라고 전한다.
이 같은 책읽기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사고력을 넓히거나, 진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MSC브레인 컨설팅 안진훈 박사는 “환경-경제, 과학-윤리처럼 서로 다른 분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을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연결되는 책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선 유사한 내용의 책을 한 장소에 모아두기 때문. 서점의 북마스터나 도서관의 사서, 교과 교사 등에게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여름방학 책 읽기에 도전하고픈 이들을 위해 두 학생의 경제·과학 분야 꼬리 물기 독서를 따라가 봤다.
CASE1 책을 통해 공정한 분배를 생각하다
사회 수업 중 전 세계 기아 사망률 그래프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에 관해 더 알고 싶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선생님께 추천받아 읽었는데, 굶주림은 불평등한 분배의 문제라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지요.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를 찾아 읽은 후 150년 전 영국의 산업혁명이 불평등을 키운 주요 원인이었던 것처럼, 지금의 불평등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과연 공정한지를 고민하던 중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를 접했어요. 책을 통해 불평등은 전 세계인들의 고질병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학생이라는 제 위치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다 〈공정한 무역, 가능한 일인가?〉를 읽게 됐어요. 제가 쓴 돈이 강대국의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가려면, 이를 추구하는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고 상품의 출처가 올바른지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간식으로 먹을 초콜릿을 살 때도 꼭 공정무역 제품인지 확인해요.
MINI INTERVIEW
독서를 통해 꿈을 찾았다는데
어릴 때부터 외국에 관심이 많았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가고 싶은 나라를 찾아보거나 <먼나라 이웃나라> <세계사를 보다> 등 외국의 역사나 문화를 다룬 책을 자주 봤다. 부모님이 세계와 우리나라를 잇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그런 일을 하는 직업을 찾다 외교관이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외교관이 하는 일을 알아보니 매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필요로 했다. 전쟁이나 무역 분쟁, 난민, 기아 등 세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소양을 쌓아야 할 것 같아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조언한다면?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친구들과 독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서로 나누고 싶은 책의 목록을 선정하고 독서 후 토론도 한다. 며칠 전 <나의 한국 현대사>를 파트별로 나눠 읽고 발제·토론을 했다. ‘독재’는 허용될 수 없다는 내 의견과 달리 혼란스러운 나라에서는 질서의 확립을 위해 독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친구의 의견도 있어 신선했다. 같이 읽으니 덜 지루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키워드로 살펴 본 꼬리 물기 독서의 예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지은이 장 지글러 펴낸곳 갈라파고스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가? 지은이는 분배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빈곤과 기아의 실태에 대해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지은이 브랑코 밀라노비치 펴낸곳 21세기북스
인류의 1%가 전 세계 부의 99%를 독점하는 불평등 경제학을 다룬 책. 지은이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까지 세계 각국의 불평등이 전쟁, 질병, 기술, 재분배 등의 문제로 반복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
지은이 박민영 펴낸곳 북트리거
청소년들의 눈높이에서 우리 사회의 이슈를 분석한 책.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인‘학벌, 게임, 돈, 가난, 노동, 여론, 군대, 전쟁’ 등 12가지 주제와 관련된 사회문제들을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공정한 무역, 가능한 일인가?
지은이 데이비드 랜섬 펴낸곳 이후
무역에서 이익을 얻는 소수와 실제로 그 무역에 기여하고 있는 다수의 생산자들이 불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인지,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CASE 2 동아리 필독서로 우주에 눈뜨다
중1 자유학기 때 천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동아리 필독서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우주의 신비에 눈을 떴죠. 태초의 우주와 생명의 진화, 우주로의 여행을 장엄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했더라고요.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더 깊게 알고 싶어 〈평행우주〉를 읽었어요.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이동할 수 있는가?’ 등이 궁금했거든요. SF소설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예로 들어가면서 평행우주나 다중우주 등 현대 우주론을 흥미롭게 풀어내서 재밌어요.
이후 우주와 물질, 시간과 공간의 역사처럼 자칫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림을 곁들여 쉽게 설명한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고선 블랙홀의 매력에 빠졌어요. 〈블랙홀 화이트홀〉을 통해서는 빛마저 삼키는 블랙홀도 있지만 무엇이든 뱉어버리는 화이트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우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137억 년의 역동적인 우주 역사를 모두 담아낸 천문학자 이석영의 〈빅뱅 우주론 강의〉를 읽고 천문학자라는 꿈을 꾸게 됐어요.
MINI INTERVIEW
독서가 어떻게 진로에 영향을 줬나?
원래 우주에 관심이 많았고, 중학교 때 별과 별자리를 알아보려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좀 더 본격적으로 천문현상을 비롯해 우주에 빠지게 됐다. 이후 우주와 관련된 여러 최신 이론을 다룬 책들을 차례로 읽으면서 천문학자라는 진로를 세우고, 좀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과고에 진학하게 됐다. 특히 <코스모스>는 과학 이론을 소설 문장처럼 표현해 읽기 쉬웠다. 즐겁게 읽은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 나중에 좀 더 전문적인 과학 서적을 찾아 읽을 때도 책 내용을 친근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위해 조언한다면?
한 권이라도 꼼꼼히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본문은 물론 작가 소개나 옮긴이의 글, 출판연도까지 주의 깊게 본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썼는지 알 수 있어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독후 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지역도서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천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독후 활동을 대신한다. 좋아하는 천문학을 알릴 수 있고, 책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
키워드로 살펴 본 꼬리 물기 독서의 예
코스모스
지은이 칼 세이건 펴낸곳 사이언스북스
우주의 탄생부터 은하계의 진화, 우주를 떠돌던 먼지가 의식 있는 생명이 되는 과정, 외계 생명의 존재 문제 등을 다룬다. 과학적 지식을 문학 작품처럼 풀어내 청소년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평행우주
지은이 미치오 카쿠 펴낸곳 김영사
지은이는 이 우주가 소멸하면 인류는 평행우주로 탈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다중우주·평행우주 같은 어려운 용어를 SF소설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예로 들어 설명해 흥미롭게 일을 수 있다.
시간의 역사
지은이 스티븐 호킹 펴낸곳 까치
우주와 물질, 시간과 공간의 역사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간결하게 담은 우주과학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 초끈 이론 등 현대 물리학의 면면을 알 수 있다.
블랙홀 화이트홀
지은이 일본 뉴턴프레스 펴낸곳 뉴턴코리아
빛마저 삼켜버리는 블랙홀, 무엇이든 토해내는 화이트홀, 공간과 공간을 순식간에 연결하는 웜홀까지. 이들 3개의 홀을 속속들이 안내한다. 앞으로 전개될 우주 연구가 궁금하다면 필독할 것.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