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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메시아닉과 한국에 흔히 알려진 메시아닉의 차이
한국에 흔히 알려지고 있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이라거나 히브리적 관점의 신앙이라는 것이 제가 알고 있는 성경적 메시아닉과는 차이가 있다고 판단되어 그 차이를 알려드립니다. 여기서 한국에 흔히 알려진 메시아닉을 < 한국적 메시아닉> 으로 표기하여 차이를 설명합니다.
1. 우선 제가 아는 메시아닉은 대부분 그들이 유대인들로서 유대교를 믿고 있다가 충격적인 계기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인 사람들로서 결정적 계기인 구원의 경험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기로 거부하다가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는 간증들을 합니다. 메시야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피흘림과 죽으심에 의한 영원한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한국적 메시아닉>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계기라는 구원의 역사를 증거한 적도 없고 예수님의 속죄를 강조하기 보다는, 율법 순종이며 안식일 준수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며 그것을 거부하면 구원을 잃는다고 주장합니다. ㅇㅇ님에게 여러 차례 구원받은 간증을 부탁하였으나 그것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2. 다음으로 제가 아는 메시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신앙의 초기 단계 또는 중간단계 또는 그 이상의 중상류의 단계의 믿음까지 발휘할 수 있지,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기적의 하나님의 사람들의 단계에는 못 이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웨슬레, 스펄젼, 무디 같은 사람들이 구원얻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러한 크리스쳔들 덕택에 자기들의 조상들이 지켰던 하나님 믿는 믿음, 자기들의 조상들이 전했던 메시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보전되었고, 자기들도 그들 덕택에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유대인들은 구원은 오직 아도나이 예슈아 하마시야와 그분의 피흘리심, 죽으심에 의한 영원한 속죄를 믿음으로 얻어진다고 강조합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과거 2천년 동안 기독교인들중에, 심지어 구원받은 기독교인들중에도, 많은 유대인 혐오주의자들, 반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반면에 한국적 메시아닉이 전파하는 종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순종하지않아도 구원에는 지장이 없다는 ..거짓선지자들이 이 시대를 덮고 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가면 죽습니다>>
또한 웨슬레, 스펄젼, 무디 같은 사람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립니다. 그들의 구원을 모르겠다면 구원을 전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좇아 증거했던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안식일 준수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고 전하다가 좀 너무 위대한 사람들에 관해 질문받으면, 부정하기는 어려우니까 잘 모른다고 얼버무리는 것은 주장의 일관성이 없는 간사함이 아니겠습니까?
3. 제가 아는 메시아닉들도, 신약 교회의 조직, 모임의 원리 등에는 어두운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랍비( 북미 발음으로 래바이)들을 두고 있으며, 그 랍비들이 키파( 둥근 모자)를 씁니다. 그들의 일부 관행들은 그들이 속해있는 유대인 사회들에 적응하고 그 사회에서 교제하기 위함 정도로 용인될 수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약의 교회 원리에는 그다지 충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중에는 형제모임과 같은 신약의 모임 체제를 추구하는 곳도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스라엘에 소수있고 북미지역중 미국 지역에 드물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적 메시아닉 신앙에서도 역시 신약의 진리에 관해서는 매우 깜깜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적 복수 장로제도가 아닌 일인목회, 목사제도, 매주일의 주님의 만찬이 아닌 일년에 한번의 유월절 행사, 만찬예배의 인간 설교 대체, 일인목회의 목사 설교독점 강단 독점,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 십일조의 유지, 여자들이 예배수건 쓰지 않고 예배함 등이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제가 아는 메시아닉과 한국적 메시아닉이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제가 아는 북미 메시아닉들 중에도 블러드문이나 종말 휴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들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과거 유대인들의 수많은 기대에 어긋나게 메시야의 재림 예언이 실망으로 끝났던 경험에 비추어 쉽게 종말 현상에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ㅇㅇㅇ은 여러번 블러드 문이니, 여러 종말현상을 갖고와서 무슨 일이 있을지 공포감을 조성한다음 그냥 지나가면, 한번 가져와 보았다고 변명하고 넘어갑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 술이 취해 한번 해본 말이야> 라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지금 당장 걸려있는 예언은 9월 23일 행여나 주님이 오시지 않을까 하는 예언이며, 오바마와 교황이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예언들은 계시록에 예언된 현재 상황과 앞으로 있을 사건들에 대한 몰이해에 의한 엉터리 예언일 뿐입니다. 이 또한 성령께서 한국적메시아닉 신앙에 함께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 교황 할애비가 감기 걸리는 것>에 신경 쓸일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주목하면 됩니다!
5. 진정한 율법의 순종이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이 지켰던 순종과는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님을 좇아서 행할 때 타당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오늘날 한국적 메시아닉 관점에서의 안식일 준수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주님 승천하신 이후 40년이 못되어 참혹한 죽음으로 멸망당하지 않았습니까?
성령께서는 어찌하여 신약성경을 통해서, 초대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신 모임의 진리는 그들에게 깨닫게 해주지 않으시면서 구원이 달려있다고 주장되는 중대한 문제라는 안식일 준수에만 목매달게 하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고 하시겠습니까?
행 15장10절의 < 어찌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에게 두려하느냐? > 하신 말씀에 안식일 준수가 들어있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구원을 잃게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중에 성장하여 성령순종을 통해 그것을 지켜나갈 수는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어찌하여 쉽게 순종할 수 있는 교훈들은 안가르쳐주고, 국가와 사회가 온전히 변해야 순종이 용이한 안식일 준수부터 가르치시겠습니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할 수 있는한 성경적으로 안식일에 예배하려는 것은 아주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그들의 구원관, 거듭남의 간증을 내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붙드는 구원은 행위 여하에 따라 상실되는 거짓 구원임을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그것은 우리중의 누가 스스로 더 이상 예수님의 속죄와 구원을 믿지 않기로 결심하였거나, 배도 수준의 범죄로 하나님을 배척하였을때에만 상실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계 3:5 이나 출 32:33 에서 경고하는 바라고 믿어집니다.
안식일 예배를 행하지 않았으면서도, 결코 주님을 배도하지 않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스펄젼이나 무디가 배도했습니까?
그들은 율법 유효믿음을 가졌지만, 일요일 예배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한국적 메시아닉 신앙은 메시아닉 쥬대이즘과도 다르고, 일종의 구원의 역사를 부정하기 위한 구원 대적행위로 들립니다.
거듭남의 경험, 단번에 주신 구원, 구원의 확신이 없이 그에 대한 강한 반발이 그 증거입니다.
6. 우리는 오직 성령님을 좇아야 합니다.
그것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영과 육을 좇는 차이로 설명된 바라고 믿어집니다. 그 성령님을 좇을 때 우선 실행하기 쉬운 것부터 바로 잡기 원하실 것입니다. 예컨대 십일조가 아닌 넉넉한 연보면 충분하며, 십일조는 레위 제사장들이 폐해지고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들이 된 신약시대(벧전 2:9, 계 1:6, 5:10) 에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는 까닭에, 또는 십일조의 수혜자가 제사장들이었던 까닭에 더 이상 십자가 이후의 신약에서 가르쳐지지 않았던 사실을 통해서 폐해졌음이 가르쳐지고 믿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약시대에는 누구나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들로서 서로 형제 자매로 불러야 하며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성도들 위에 군림하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형제자매들로서 성령님으로부터, 기름부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요일 2:27) 목사님, 목사님, 하는 호칭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너희 선생은 단 한분 그리스도 뿐이요, 너희 모두는 형제니라> 하시면서 < 너희는 랍비라 불리움을 받지 말라> 고 마태 23:8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란 말은 < 목양하는 선생> 이란 말입니다. 어찌하여 성령께서는 이런 쉬운 것들은 깨우쳐서 시정하도록 알려주시지 않고, 국가와 사회적으로 지키기 힘든 것부터 고치라 하시겠습니까?
이제 먼저 시정하기 쉬운것부터 시정하고, 다음 단계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올바른 믿음을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7. 율법은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중에서 희생제사, 성전 제사에 관한 법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의미해졌고 폐해졌습니다. 수천만 마리의 동물제사로도 끝낼수 없었던 인류 모두의 죄값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피와 죽음으로 인류 모두를 대신하여 갚아주셨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히 여기셨으며, 마침내 인류 구속의 영원한 속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인하여, 그것이 코르반이 되어( 마가 7:11)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누가 이토록 평범하고 분명한 진리를 벗어나게 속이려 할 때 속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은 사람은 인류 역사상 한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모쉐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얻었던 것입니다(히 11:26, 요 5:46)
이러한 희생제사에 관련된 법과는 반대로, 도덕법은 결코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인류 모두의 범칙금을 대신 납부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교통법규가 폐해졌겠습니까? 인류 모두가 율법을 범한 죄값을 예수님이 지불해주신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차츰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도록 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머지 도덕법은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은 폐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하여도, 예수님은 종말에 <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 마 24:20) 고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날들이 동일한데 어찌하여 특별히 안식일에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다른 날에는 일어나도 된다는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왜 어느 특정한 날을 가르쳐 < 주의 날> 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계 1:10) 그 날이 안식일이었음은 그의 제자 폴리갑을 통해 증명됩니다.
안식일 준수도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안식일에 대한 자의적인 숭배나 자의적 준수(골 2:18) 를 한다면 그것은 육신의 계율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를들면, 전등이나 컴퓨터를 안식일에 켠다면, 그것은 화력발전소를 가동시키는 일이 되어 불피우지 말라는 출 35:3의 말씀에 위배될 것입니다. 예배당에 갈때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만 허용될 것입니다.
그것은 되고 다른 것은 안된다면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은 자의적 기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모든 것은 그냥 넘어가도 되지만 예배 행사만큼은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에 행해야 한다면, 명백한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성령께서 인도해주실때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공휴일이 안식일이 아니라 일요일이 되어진 환경을 아십니다. 저는 일요일날 예배하는 교회에 가서 일요일에 거듭났습니다. 저는 참혹한 죽음을 앞두고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에 들려지는 설교를 듣고 거듭났던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방식대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해주실 것이며 그리하여 보다
성경에 충실한 예배요일에 그분의 방식과 그분이 기뻐하는대로 예배드려지기를 원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면 됩니다.
우리가 율법을 순종하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쉬었다 가면됩니다.
그러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말할 수 없는 기쁨가운데서 주님이 영광을 드러내실 날을 앙망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주님의 큰일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입니다. 그때쯤되면 주님의 방식대로 예배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안식일에 예배한다고 하면서 거짓 구원을 전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이 바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안식일에 예배한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 목사가 앉아서 인간들의 존경을 받으며, 폐해진 십일조로 공갈치면, 그것이 반석을 두번 두드리는 일(민 20:11) 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해마십시오. 성령님께 충실하게 순종하여, 진정으로 신약성경의 여러 교훈들을 충실하게 순종하면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는 공갈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예배로 주님의 피흘리심을 기억하는 만찬을 자주 실행하되, 그 연장선상에서 그것을 안식일에 실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실 것이며, 또한 그러한 사람들중 많은 사람들이 144,000 과 같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전반에 관한 하나님의 종합적이고 입체적이며, 정의롭고 영적인 판단에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ㅇㅇ님이나 구원반대파가 우리의 재판장이 안되고 자기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님이 우리의 심판의 주가 되실 것이라는 진리에 크게 안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오직 보배로운 자기 피로 속죄하시고 구원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립니다.
2015. 9. 30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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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글은 다른 게시판에 올려져 있던 글을 객관적으로 수정하여 올린 것입니다. 최근에 저에게 이글에 대해 문의해온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알려지고 있는 메시아닉들의 특징은 대체로 두가지 특징입니다 < 종말론적이고, 율법주의적> 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율법주의적이 아니면서도, 유대인들의 구약 믿음을 승계하고, 종말론적이 아니면서도 신약의 교훈들을 중시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율법은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을 통해서이고, 순종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신약의 교훈들은 매우 중요하고 직접적입니다. 특히 거듭남의 증거가 없는 사람들은 성경을 가르칠 자격이 없습니다.
[ 자칭 유대인 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 ( 계 2 ; 9 )
자칭 유대인과 진정한 유대인의 구분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그들은 육체로 유대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유대교를
교회 안으로 가져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듯 합니다
갈라디아의 교회에도 구원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율법을 행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있다고 가르친 것을 알수 있읍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사제도 역시 구약의 제사장 제도에 기인된 것이라 생각 됩니다
그리고 구약의 율법은 오늘날 사람들로 규범을 지키게 하는 행위로 변했고
절기는 오늘날 교회에서 절일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 변한것 같습니다
요즈음 다른 카폐에서도 메시아닉의 활발한 활동을 보았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었는데
하토브님이 잘 구분하여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