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배심원실에서 12명의 배심원들이 어떤 살인 사건의 평결을 위해 모여 있습니다. 그날은 그 해 여름 중 가장 더운 날씨였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습도 높은 날씨였습니다.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고장이 났는지 돌아가지 않고 있어서 모두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유무죄를 가리는 평결은 12명 배심원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하고,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논의를 계속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평결은 쉽게 내려질 것 같았습니다. 18세의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해서 일급살인으로 기소된 사건인데, 증거와 증인이 확실해서 배심원들은 얼른 끝내고 집에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빨리 끝내기 위해 투표를 하기로 합니다. 당연히 12명 모두 유죄에 손을 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8번 배심원(헨리 폰다)이 무죄로 투표합니다. 11명의 배심원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고 왜 무죄라고 생각하냐고 추궁합니다. "전부 유죄라고 하니 나까지 손을 들면 이 애는 죽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대화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무슨 대화를요?"
첫째, 새벽에 소년이 살인을 저지르고 이층 집에서 밖으로 나갈 때 일층에 사는 노인이 소년을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둘째, 소년은 살인이 일어난 시간에 자기는 영화를 보고 있다고 했지만 체포되었을 때 영화제목이나 배우 이름을 대지 못했으며 셋째, 길 건너에 사는 여자는 살인이 일어날 때 소년이 살인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넷째, 전날 저녁 때 소년이 아버지에게 두번 얻어 맞고 아버지에게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고 밖에 나갔다는 것을 소년의 아파트 복도 맞은 편에 사는 주민이 증언했고, 더구나 그 아이는 전과 5범이니 무슨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배심원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를 찔렀다는 재크 나이프는 바로 전날 저녁 소년이 고물상에서 산 것인데 독특한 문양이 있어서 이 칼 하나 밖에 없다고 고물상 주인은 증언했지만, 배심원 8번은 자기가 전당포에서 구입한 똑같은 모양의 칼을 보여주면서 사실은 흔한 칼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식으로 뭔가 이상한 점을 추리하면서 배심원들을 계속 설득하자 무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심원실에서 서로 대화를 할 뿐입니다. 배심원8(헨리 폰다)이 <확실하지 않으면 무죄로 한다>는 평결의 원칙을 가지고 탐정이 수수께끼를 풀듯이 배심원들을 설득하고 대화하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이 살인을 진짜로 했을 수도 있고 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배심원들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제시된 증거에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면 무죄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57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이지만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무죄에 찬성하는 배심원이 한명 한명 늘어날 때 마다 쾌감이 대단합니다. 왓차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영화<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돌이켜서 생각해 보니 그 소년이 유죄일 가능성이 더 큰 것 아닌가 하는 찜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마을에 재크 나이프가 실제 몇개 밖에 없다면, 소년이 전날 사서 주머니에 두었던 칼을 잃어버리고 범인이 하필이면 똑같은 모양의 칼을 가지고 살인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고 사실은 영화에서 다른 배심원이 한 이야기에 다 나옵니다. "칼이 10개가 있다고 해도 소년이 주머니에 든 칼을 잃어 버리고 다른 범인이 똑같은 모양의 칼로 살해할 확률은 수백만분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배심원이 너무 흥분해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바람에 차분하게 이야기 하는 배심원8번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있게 들렸을 뿐입니다. 나머지 증거와 증언에 대한 배심원8번의 반박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재반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인 장면을 목격했다는 건너편에 사는 여인이 잠결이라 안경을 쓰지않고 봐서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라고 추리하지만, 나는 잘 때 안경을 벗고 자지만 일어나자 마자 대부분 안경을 씁니다. 더구나 건너편을 쳐다보는데 아무리 잠에 막 깨어나도 안경을 쓰지않고 보는 경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석방해서 결국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