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과 양귀비, 어머니의 정부(情夫)를 죽인 진시황, 여성 최초의 황제였던 측천무후…. 역사책보다 영화나 드라마로 먼저 접한 중국 야사(野史) 속 주인공이다. 베이징 고궁박물관 연구원이자 중국 황실 전문가인 저자는 중국 황실 속 성(性)문화를 역사적 기록을 통해 소개한다. 자손 번성을 구실 삼아 수많은 후궁을 거느렸던 중국 황제들과, 성(性)을 무기로 황제의 절대권력에 도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한 명의 남성(황제)과 수만 명 여성이 모인 황실에서, 황제라는 희소한 자원을 두고 벌이는 정치게임은 때로 황실을 파멸로 몰고 갔다. '누가 황제와 잤느냐'는 문제가 성이 아닌 권력에 대한 담론이 되는 것이다.
자손번성이 황제의 중요 임무였던 황실에서,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성교육을 받았고 명 희종처럼 유모와 성관계를 가진 경우도 있었다. 황후는 스스로 예쁜 여성을 골라 황제에게 바쳐야 했으며, 당 현종 시대에는 후궁전에 미인들이 무려 4만 명에 달했다. 책은 체제유지라는 명분 아래 자유롭게 성을 탐하면서도 백성들에게는 금욕을 강요했던 중국 황제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칸막이 방을 만들고, 그 방에 거울을 붙여 성관계를 가진 수 양제는 수나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이었다.
나약한 왕과 야심만만한 황후의 조합은 역사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무미(측천무후)는 후궁 시절 자신의 딸을 죽이고 그 죄를 왕황후에 뒤집어씌워 폐위시켰다. 피비린내 나는 암투를 평정하고 황제에 오른 측천무후는 당나라를 태평성세로 이끌었다. 이처럼 성(性)은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이 최고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황제를 두고 비빈들이 벌이는 암투는 '성악설'을 떠올리게 한다. 황후들이 황제가 좋아하는 궁녀의 손발을 자르는 것은 예사였다. 무측천은 왕황후와 소숙비를 빛 한 줄기 없는 독방에 가둔 후, 백 대씩 치고 술독에 넣었다.
책은 중국 황실에서 유행했던 방중술과 동성애뿐 아니라 명헌종과 시녀의 목숨을 건 낭만적인 사랑도 소개한다. 황실의 미용과 화장법, 궁중악무 등을 접하는 것은 중국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