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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빌 3:7-14)
할렐루야! 귀하고 복된 성일을 맞이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번 외쳐 봅시다.
“오직 예수”, “오직 예배”, “오직 말씀”, “오직 기도”, “오직 찬양”, “오직 전도”.
올 한 해, “오직 예수” 붙들고,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하나님 편에 서서,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복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지금껏 살아온 삶의 모습을 정리하면서, 올해는 분명한 믿음의 변화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듣는 믿음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변화를 경험하여야 합니다.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고, 믿음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끼며 살 수 있기를 꿈꿔 봅니다.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이 아니라, 식어버린 신앙이 아니라, 주를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열정적인 신앙으로 회복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프랑스의 문필가 앙드레 모로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을 사는 기술은 하나의 공격 목표를 선택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시키는데 있다”
뜨거운 마음으로 “오직 예수”에 집중해 봅시다.
여러분!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 가운데는 “과거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늘 과거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과거에는 좋았던 일도 있고, 안 좋았던 일들이 있습니다. 마냥 기뻐했던 일들도 있고, 가슴 조이며, 안타까웠던 일들도 있습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은, 과거에 좋지 않았던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안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과거의 좋았던 일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대부분 보면, 지난 날의 아픔, 고난의 경험, 뼈저린 고통들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안고 살아갑니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면, 삶에서 밝은 부분이 없어지고, 늘 어둡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기쁨도, 즐거움도, 다 뺏기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과거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깊이 파묻혀서, 골똘하게 세상에 집착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오늘뿐입니다. 내일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그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집착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집착해서 살면, 내일이 안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안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 속에 내일이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뭔가 이루고, 성취해 보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인내하고, 땀을 흘리고, 저축을 하고,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아주 건강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고 고백합니다.
사울 바울은, 우리에게, 푯대를 향하여, 쉬지 말고 달려가라고 말합니다.
첫째, 버릴 것과 얻을 것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7-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아멘.
누구에게나 목표가 있습니다. 성취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실패하기 보다는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직장에 취직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사업을 하면, 날마다 사업의 지경이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일이 추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나서, 지금을 생각할 때, “참 그런 때도 있었지”라고 웃을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살이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지만, 아직도 웃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맘껏 웃어 볼 수 있을까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바울 사도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일이 성취되었기에 기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성취되지 않았지만, 기뻐하면 차후에 성취될 것이라는 말인가요?
기쁨은 우리의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얼마 전, 서울 서초동 10억 짜리 아파트에 살던 강모씨라는 사람이, 아내와 두 딸을 죽였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실직을 하고, 주식 투자에도 실패를 했지만, 그리고 집을 담보로 5억을 대출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10억 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부인 통장에는 3억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서, 부인과 자녀들을 죽였다고 일관되게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0억짜리 아파트를 팔아서, 5억 대출을 갚으면 5억이 남습니다. 통장에 들어있는 3억을 합치면 8억입니다. 8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함께 죽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고 해도, 돈이 돈의 가치를 못한다고 해도, 8억은 많은 돈이 아닙니까? 아직까지 그 정도 돈을 만져 본 적이 없어서, 그만한 돈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어서, 저에게는 꿈의 숫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 돈이라면, 아무 일도 안하고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큰 돈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정도 돈이 생기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여하든 유명한 배우와 술 마시고, 함께 어울리다가, 음담패설 동영상을 찍어, 그에게 50억을 달라고 협박한 이야기를 들으면, 8억은 껌값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페체르부르크’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동안 일하고 저축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80 루블의 돈을 저축하여,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 날은 노인에게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매우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그는 그의 성공을 강탈당하고, 그의 행복을 강탈당했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골리”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노인의 목표는 고급 외투였지만, 좋은 아파트, 고급 승용차, 사회의 높은 자리 등, 소유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뭔가를 소유하는 것이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우리의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무엇을 성취하고 싶으십니까?
성공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수없이 많은 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실하라. 정직하라. 일찍 일어나라. 겸손하라. 나누어서 투자하라” 등등.
그 중에 하나가 “먼저 버리라”는 것입니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많은 책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책을 보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것을 많이 아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중요한 것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을 붙들고 있으면, 믿음을 붙들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기 때문에, 세상 지식을 다 버렸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아는 것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살다보니까, 옷장 속에 입지 않는 옷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입을 수 있겠지” 하면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책장에는 읽지 않는 책들이 있습니다. 읽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책들이 있습니다. 전에는 “내가 안 읽어도 다른 사람들이 읽겠지” 했는데, 내가 안 읽는 책은 다른 사람들도 읽지 않음을 알고, 하나 둘 꺼내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때는 잘 입었던 옷들, 한 때는 열심히 읽었던 책들이지만, 한때는 내게 너무 소중했던 것들이지만, 그래서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었는데, 버릴 때 보니, 가치가 하나도 없습니다. 쓸데없는 것을 꽁꽁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시세로 보면, 옷은 1kg에 150원 정도, 책은 1kg에 70원 정도 밖에 가치가 없습니다. 봉고로 한 차를 싣고 가도, 만원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옛날 당나라에 “송청”이라고 하는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약을 조제하는데 탁월했습니다. 그에게 와서 약을 사 먹고 병을 고친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송청은 돈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약을 지어 주었습니다. 연말이 되면 외상장부가 수십 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약값을 독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연말이면 외상 장부를 불태워 버렸고, 두 번 다시 약값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어리석다고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대범한 인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송청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40년 동안 약 장사를 하면서 수백 권의 외상장부를 태웠습니다. 그러나 크게 손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약값을 떼어먹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나중에는 약값보다 훨씬 많은 보답을 해 주었습니다. 선을 베푸는 것이 손해 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그런 마음씨를 가졌기에, 더 효험 있는 약을 조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막연히 살기보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어제 일을 잊어버립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무엇을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게 소중한 것인지 몰라도, 남들이 보면, 웃을 수가 있습니다. “별 소중한 것도 아닌 것을 움켜쥐고 있다고”, 한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버리면서 삽시다.
탐욕을 버립시다. 욕심을 버립시다.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편합니다. 싸울 일이 없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욕심 때문에 싸우는 것 같습니다. 교만을 버립시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 반대편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삽시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은혜는 공짜 아닙니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돈 주고 사는 것이 공짜로 얻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치가 없으니까, 공짜로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거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올해는 불신앙과 불순종을 버립시다. 믿음과 순종함으로 하나님 편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예수”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맘껏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확실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10-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아멘.
확실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39:7절 말씀입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42:11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여러분! 성취하고자 하는 소망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달성하고 싶습니까? 그것을 달성하면, 끝나는 것인가요?
지금 호주에서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태극전사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우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우승하면, 축구선수들은 다 은퇴를 하는 것일까요?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해도, 그들은 또다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달려가지만, 그것을 달성하고 보면, “내가 왜 달려왔을까? 내가 왜 이것을 성취하고자 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목표달성의 기쁨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다 이루었다”고 멈춰버리면, 더 이상의 성장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 또 목표를 설정하고, 또 그것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 일도 멈추면 성장이 없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게으르고 나태하면 안됩니다. 땀을 흘려야 합니다.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성실하게감당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을 괴롭히고, 아프게 하고, 상처 주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살피고,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도 성장해야 합니다. 믿음은 과거가 아닙니다. 믿음은 현재입니다. 옛날 믿음으로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믿음으로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현재의 믿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옛날 믿음 다 버리세요. 그래야 새 출발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옛날 믿음 붙잡고 있다가는 믿음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이야기하다 보면, 자꾸 옛날 이야기만 합니다. 그런 분일수록, 지금 현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고 자기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간증은 해야 되겠지만, 자랑이 옛날 자랑으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옛날처럼, 그렇게 신앙생활하고 있노라고, 더 나아가 옛날보다 더 뜨겁게 신앙생활하고 있노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 9:23)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용맹스럽게 살아오셨습니까? 용맹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재물을 많이 모으셨습니까? 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혜도, 용맹도, 부함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주 안에서, 주님의 성호를 자랑하고,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고 했습니다.
늘 주님을 자랑하면서 살아 가십시오.
마태복음 19:30절을 보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믿음 생활 멈추지 마세요. 중단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여기서 멈춘다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계속해서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은상 시인이 1956년에 발표한 “민족사의 고난 극복의 의지”를 담은 시가 있습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는 시입니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때로 힘들고 어려울 때,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는 글귀가 힘이 되었습니다.
고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청주에서 서울을 가기 위하여,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두 시간을 달렸습니다. 가다가 이정표를 보니까, 서울이 아닌, 전라도 광주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다시 돌아오면 되겠지요.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돌아서고 싶어도 돌아설 수 없습니다. 전혀 엉뚱한 방향이라는 것을 알지만, 멈추지 못하고,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손해입니다. 목표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정표를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길을 달려가고자 합니다. 세상 출세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이 버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강단에 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하여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주가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되심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위로받고자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힘을 얻고, 위로를 받고, 삶의 지혜를 얻고자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끝까지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아멘.
예수님께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고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소중합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보면, 정말 믿음직스러운 사람, 신실한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입에서는 천사의 소리가 흘려 나오는데, 조금 있다 보면, 그 모든 말들이 거짓말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맙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면, 마음을 닫아 버리고, 귀를 닫아버립니다. 매 맞기 싫어서 도망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들어야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돌아서야 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돌아서서, 역주행하면 큰일 나지만, 인생살이는 바로 돌아서야 합니다. 돌아서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 주님도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돌아서라”
“내게로 돌이키라. 돌아서라. 돌아오라”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5년에는 예배 중심, 말씀 중심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람들도 멀리 있을 때보다 가까이 있을 때, 마주 보고 있을 때, 마음이 쉽게 통한다고 말합니다.
예배 가운데, 말씀 가운데, 기도 가운데, 찬양 가운데, 전도 가운데,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한 마음, 목회자와 성도간의 한 마음, 성도들간에 한 마음이 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15년이 그냥 흘러가는 한 해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의미가 없는 한 해가 아니라, 우리 교회에서 그냥 흘러가는 한 해가 아니라, 뭔가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 축복의 역사, 사랑의 역사, 치유의 역사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푯대를 향하여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아멘.
성장은 멈추면 안됩니다. 아이들이 한창 자라야 할 나이에, 성장판이 닫히면 키가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껏 이 정도 했으니, 쉬엄쉬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잠시 쉬어야겠다. 다음에 해야겠다. 지금껏 신앙생활했는데, 별로 유익된 것이 없었는데.....지금껏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도 별로 없고,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은 것 같고, 교회 다닌다고 별로 나아진 것도 없는 것 같고.....”
다른데 마음을 두지 맙시다. 의심하지 맙시다.
빌립보서 1:5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아멘.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면서 의심하면 얻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빌립보서 1:6-7절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아멘.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의심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구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믿고 구하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두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머뭇머뭇거리지 마십시오. 확실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십시오.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수많은 거짓말에는 잘 속으면서도, 때로는 “이번에도 한번 믿어보지” 하다가, 또 속으면서도, 왜,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못하십니까?
빌립보서 4:2-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욕심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탐욕을 만족시켜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푯대를 향하여 달려갑시다. 목표를 분명하게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달려가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하다고 나아가는 앞날에 어려움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리 옆에 실내화를 챙겨 놓고, 그 안에 열쇠를 넣어 둡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서, 신발을 신으려면, 발 밑에 열쇠가 걸립니다. 그러면 그는 열쇠를 꺼내 들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내 앞에 잠겨진 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겨진 문이 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내게는 그 잠겨진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제 앞에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일 때, 저로 하여금 좌절감을 느끼지 말게 하시고 모든 난관을 헤치고 닫힌 문을 열고 지나가는 열쇠가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여러분! 이 열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문제의 해결자입니다.
이제 이 목표를 향하여, 지체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말고, 앞으로 힘차게 달려 나아가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라는 말은 똑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똑바로 보고, 신앙의 마라톤을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가 우리의 푯대여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를 붙잡을 때, 예수만 똑바로 바라보고 나아갈 때,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우리의 시선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고정시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갑시다.
여러분! 해바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해를 향해 자란다고 해서 해바라기입니다.
옛날 인도의 왕이, 중죄를 지은 사형수에게, “기름이 가득 담긴 그릇을 주면서 이 그릇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온 성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죄를 사면하리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죄수는 온 정신을 그릇에 집중하며, 복잡한 성 밖 목표 지점을 돌아왔습니다. 왕은 죄수가 정말 다녀왔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고, 어디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죄수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왕은 그것도 모르면서, 갔다 왔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냐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때 죄수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왕이여, 나의 생명이 이 그릇에 달려 있는데 어찌 한눈을 팔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직 그릇만 보고 다녀왔습니다.”
임금은 죄수의 성실함을 인정하여 죄를 사면했다고 합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곳곳에서 다가오는 유혹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우리들은 오직 주만 바라보며,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합시다.
“오직 예수”만 바라봅시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됩시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믿음이 좋으셨습니까? 믿음이 안 좋으셨습니까?
지나간 과거는 다 잊어 버립시다. 잘 했든 잘못했든 지나간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우리들이 달려가야 할 앞을 똑바로 바라봅시다. 죄로나 우로나, 눈 돌리지 말고, 앞만 제대로 보고 달려갑시다. 뒤돌아 보지 맙시다. 뒤를 바라보고, 멈추지 맙시다. 미련을 두지 맙시다. 잘 했건 잘못했건,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새로운 날들입니다. 새로운 날들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해 봅시다.
작년 여름에 열심히 걷고, 달리고 하면서, 또 일주일에 한두 번, 1-2시간 씩 풋볼을 하면서, 몸무게를 많이 뺐는데, 바쁘다고, 춥다고, 운동하는 것을 멈추었더니, 원래 몸무게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식욕만 좋아져 가지고,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고,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날씬한 몸매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달릴 때, 몸무게가 달라지게 될 줄 믿습니다.
요쉬카 피셔가 쓴 “나는 달린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저자인 요쉬카 피셔는 독일의 외무부 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사람입니다. 그는 성공적인 정치인이었으나, 문제 해결에 대한 압박감과 책임감, 스트레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쌓이게 되자,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해서, 112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뚱보가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뚱뚱해서,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그는 하루에 10km씩 달리므로, 112kg 뚱보에서 75kg 날씬한 몸으로, 37kg을 뺐습니다. 처음에는 100m도 뛰기 힘들어 헉헉대던 뚱보 피셔는, 단 일 년 만에, 한밤중에라도 1시간 정도 10km를 뛰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을 재충전하는 ‘달리기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달리기를 통해, 외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는 과정에서, 내적인 평온과 조화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달리기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 번 달려 봅시다. 푯대를 향하여, 목표를 분명하게 정해 놓고, 힘차게 달려 봅시다.
여러분! 무엇이 되었든간에, 새로운 해를 맞이해서, 다시 한번 시작해 봅시다.
“해봐도 도루묵인데”, 하지 마시고, 새로운 각오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 봅시다.
그리하여 연말에는 우리 모두, 승리의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