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덕을 생각한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그가 에이즈에 걸렸고, 국무총리는 의료보험도 안 되는 동성애자이며, 백혈병을 피할 수 없는 오염된 쓰레기들이 바닥에 뒹구는 어딘가에서 자란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이 16살 때 낙태를 했으며, 마지막 애인은 에이즈로 죽었고, 눈을 감으면 자기 품에서 죽어간 애인의 모습이 늘 떠오르는 그런 여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냉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살았고, 병원에 가기 위해, 가족생활보조연금을 타기 위해, 고용안정센터에서 구직을 하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실업자였고, 해고당했었고, 성적으로 학대당한 적이 있으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쫓겨난 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가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고, 강간에서 살아남은 자였으면 좋겠다. 누군가와 지독한 사랑에 빠졌었고,상처 입었으며,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나 거기서 교훈을 얻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이 흑인 여자이면 좋겠다. 그가 썩은 이빨들을 가졌으면 좋겠고, 병원에서 나오는 맛없는 식사를 먹어본 사람이면 좋겠다. 그가 마약을 경험해 보았고,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 본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지 알고 싶다. 왜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대통령은 언제나 꼭두각시이며, 창녀의 고객이며, 결코 창녀 자신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믿게 한 건지 알고 싶다. 왜 그는 항상 사장이며 결코 노동자일 수는 없는 건지, 왜 그는 언제나 거짓말쟁이며, 언제나 도둑이고, 결코 처벌되지는 않는 건지 알고 싶다.”
나는 경향신문 파리 통신원인 목수정씨가 그의 칼럼에서 인용한 조에 레오나르드의 이 글을 읽으며 가슴이 떨렸다.
2010년, 처음으로 스웨덴 의회에 극우정당이 진출하게 되었을 때, 스웨덴 여성 예술가들에 의해 대중 앞에서 낭독이 시도된 이후, 이 글을 시위 현장에서 낭독하기는 운동으로 발전하여 핀란드, 에스토니아, 덴마크, 스페인, 프랑스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다.
여기에 대해 목수정씨는 덧붙인다.
“우린 언젠가부터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 선거를 우리 중에 가장 잘 나가는(!!) 인물을 뽑는 인기투표로 여기게 되었다. 가장 돈을 잘 벌고, 가장 부모 백이 든든하며, 가장 번득이는 학력을 가졌고, 가장 높은 곳까지 단시간에 올라간 누군가를 마치 우리의 거울인 양 뽑아서, 그의 영광의 생애에 화룡정점을 찍는 데 가세하는 게, 그것이 투표였던가? 우리가 실행하고자 하는 간접 민주주의란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민의를 가장 잘 대변해 줄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던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고난의 긴 터널을 걷고, 쓰디쓴 소외와 굴욕을 겪어본 사람이 우리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마사지걸을 잘 고르는 지혜를 만인 앞에서 설파하는 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그에게 마사지를 해준 아가씨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가능한 사회여야 한다는 사실. 그럴 때, 우린 감히 민주주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왜 우린 진작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가.”
이번 선거에서 나는 이 사람만은 꼭 당선돼야 한다고 생각한 후보가 있었다. 의정부시에서 출마한 청소부 출신 홍희덕이었다.
홍희덕은 시골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땅이 없어 남의 농사만 짓다가 도회지로 나가 날품팔이 막노동을 비롯해서 먹고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운이 좋아 의정부시 청소 용역업체에 취직하여 환경미화원이 되었다. 말이 좋아 환경미화원이지 청소부로 똥푸기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도 언제 목이 잘릴지 모르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여 노동조합 간부가 되었다.
내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그는 민주노총의 산하조직인 경기도 연합노조의 위원장이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민주노동당은 분당사태를 맞았고 나는 진보정치는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민주노동당의 비상대책위원회에 결합했다. 당시 비대위는 비례후보 공천권을 가졌는데 노동부문 담당이었던 나는 비정규노동자의 몫으로 홍희덕을 추천하여 2번으로 출마시켰다.
분당의 후유증으로 한두 석도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당의 최고의 간판스타가 비례후보로 나서야 당 지지율도 올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우려도 많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여곡절 끝에 홍희덕을 포함한 다섯 명이 당선되어 국회로 들어갔다. 최초의 청소부 출신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나 정치권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뭘 제대로 하기나 할까하며 비아냥거렸다.
4년이 지났다. 그는 회의에는 충실히 참가하면서도 지구 여섯 바퀴 반에 해당하는 거리를 투쟁 현장으로 뛰어다녔다. 쌍용 자동차 조합원들이 77일 간이나 공장점거 파업투쟁을 벌여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공장 앞으로 달려가 천막을 치고 단식투쟁으로 싸움의 물꼬를 튼 사람도 바로 홍희덕이다. 시민단체와 출입기자들에 의해 3년 연속 우수 국정감사 위원으로 뽑힐 만큼 의정 활동에도 충실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노동계나 소속 당에서는 그를 크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9대 총선이 시작되고 야권 단일후보가 되어 사학 재단 소유자며 미국 유학파 대학총장 출신 홍문종과 맞붙게 되었다. 너무나 대비되는 싸움이었다. 처음에는 그 지역 맹주인 홍문종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홍희덕으로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오차범위 안에서 혼전을 벌이는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중앙당이나 노동계에서 전폭적 지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몇 번인가 지원을 갔는데 그때마다 왠지 쓸쓸하고 힘들어 보였다.
왜 그랬을까? 내가 그 오묘한 현실 정치판을 어이 알겠는가? 다만 나라도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안타깝고 죄스러울 뿐이다.
홍희덕은 결국 5% 정도 차이로 아깝게 졌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노동운동의 현실이고 진보정치의 수준이다.
이제 우리도 집회를 하며 조에 레오나르드의 글을 낭독해야겠다. 다시 새롭게 겸허하게 출발해야겠다. 그 동안의 노력으로 우리는 이미 95% 고지에 올라와 있지 않은가? 정상이 보인다. 모두 힘을 내자.
이수호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 한길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