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방문하게 되었다
예측했던 대로 백두산 천지는 기가 없었다
혈을 맺거나 천기가 내려오지 않았으며 수맥도 없었다
천지에는 수맥이 없어 흉하게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천기나 혈이 맺어 거대한 기가 분출하는 곳이라면
아주 온화하게 보였을 것이며 천지물이 차갑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두산은 풍수에서 요구되는 기운의 시발점이 되지 못했다
백두산은 화산으로 생긴 거대한 호수에 불과했다
많은 풍수가들이 백두산을 기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백두산 천지는 웅대하게 펼쳐진 산 정상에 천지는
아름다움 자체로만 만족해야 할 곳이다
장백폭포에도 기운은 없었다
백두산 천지는 행운이 있는 사람만이 본다고 한다
3,4,9.10월 중 날씨가 좋은 날에만 가능하다
백두산 정상은 하루에도 수시로 날씨가 변하며
그 날도 장백폭포 근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우박을 만났다
어떤 분은 10번이나 방문했어도 천지를 보지 못했고
중국 주석도 3번이나 방문했는데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첫 방문에 천지 위에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백두산에는 이런 전설이 내려온다
어떤 유명한 풍수가가 조상 뼈를 짊어지고 산천을 유람하며
명당을 찾다 백두산 천지까지 오게 되었다
천지 물 속에 있는 용바위를 발견한다
이곳이라면 왕을 내는 대명당 자리로 보았다
물이 너무 차서 자신은 들어가지 못하고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용뿔 우측에다
조상 뼈를 싼 보따리를 걸어달라고 했다
심부름꾼이 왜 우측에 걸어야 하는지 물으니
우측은 왕이 나고 좌측은 왕비가 나는 자리라고 했다
심부름꾼은 물 속에 들어가 부탁한 그분의 조상 뼈를
왕비가 나오는 좌측에 걸어 놓고 나왔다
그 후 자신의 조상뼈를 왕이 나온다는 우측에 걸어 놓았다
그의 후손이 조선을 건립한 이성계라 한다
현실성은 없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청나라를 건립한 누르하치가 장백산의(백두산)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고 하는데 백두산 바로 주위에는 명당이 없었다
청나라 태조는 백두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독자적으로 형성된
대명당 기운을 받고 태어났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릉지 만주벌판의 어느 언덕의 산 아래
대명당 기운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내가 참선 기도한 곳도 백두산에서 멀리 떨어진 약수동이었다
약수동은 만주사변 때 일본군 간부의 숙소였다고 하며
일본 패망 후 중국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지금은 불치병을 고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물 맛이 초정약수와 흡사했다
아침 식사 때 만난 조선족 여자 공무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분은 자신의 불치병을 이곳에서 완전히 고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주인은 조선족으로 한국말을 하고 있었으며
안 주인은 아버지 고향이 충남 부여라고 했다
선대 산소가 부여에 있기에 가끔씩 남동생들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음식과 언어 풍습이 한국과 차이가 전혀 없었으며
한국의 어느 시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곳에서 단군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은 단군신을 모시고 있었다
단군신을 모시고 있는 곳은 백두산 주위에서
오직 자기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이 부족해도 단군신을 모신 방은 손님에게
절대로 내 주지 않고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찾고자 했던 단군 성지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 밤을 새우며 참선을 했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 할아버지는 대명당이
아닌 곳에는 절대로 머무르지 않는다
청룡백호 안산주산이 없는 형세를 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천기와 혈의 기운이 머무는 대명당이었다
농가주택으로 방안에 부엌이 있는 온돌방으로 지어져 있고
닭을 길러 백숙을 해주고 방 값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이곳은 신성한 단군신전이 들어설 자리 같았다
중국 방문에서 느낀 점은 물과 공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물과 공기가 건강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특히 깨끗한 물이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은 물을 철저히 관리하고
물을 제대로 멸균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중국인들은 50인 내 나이를 38세 정도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중국인들보다 젊게 산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나는 중국인 얼굴색이 우리처럼 밝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여 산이나 강에 뿌린다고 한다
이런 장묘문화 때문에 조상의 기운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산이나 강에 뼈를 뿌리는 것은 흉지에 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들이 많지만 중국은 국가 정책이기에
모든 국민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혜의 문이 열린 유식한 모 공사 부사장과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풍수를 모르면서 명당과 흉지를 알고 있었다
양택 명당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집이 두 채가 있는데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명당이었으며
비어 있는 집은 암반수가 있는 흉지에 속하는 곳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이 편안해 더 큰 평수의 집이 있어도
비어 놓고 이사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분은 덕을 많이 쌓은 조상이 지켜주고 있었으며
기감도 열려있어 중국에서는 꽤 성공하는 케이스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양택의 명당에서만 에너지를 받고 있는데
양택 명당도 별로 없었다
우리는 명당이 없다고 해도 하늘의 별처럼 많은데
만주에는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인지
명당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만주에는 태풍을 모르며 산다고 한다
기압의 변화가 없어 태풍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기의 순환이 잘 되어야 생명력이 생기는 것이다
한반도 배달 후손은 에너지 덩어리로 이루어진 땅을
하늘로부터 선사 받은 민족이 분명했다
중국 지도를 보면서 한 구석에 붙어 있는 작은 땅 덩어리를
왜 복속시키지 못했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땅은 비록 작지만 명당 영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인물이 많이 나왔고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힘을 합치는
강력한 저항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주벌판 위에 일자로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풍수의 모순점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에 세워진 도시에서
청룡백호 안산주산은 큰 의미가 없었다
파구의 위치로 명당을 구분하는 포태법 등
이기법이 적용될 수 없다
연길 길림 장춘을 둘러 보았다
도시 크기 순서대로 명당 기운이 많았다
큰 강을 끼고 벌판에 있는 도시는 형세를 떠난
명당 기운을 보고 터를 잡았던 것이다
특히 장춘은 일본군부가 터를 잡고 설계한 계획도시다
도로가 사통팔달로 시원스럽게 뚫려 있었다
일본 관동군 사령부가 있었으며
박정희 대통령도 이 곳 육사를 나왔다고 한다
도시가 명당이면 그 속에 사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받으며 활력이 생기므로 도시가 번성하게 된다
길림시청은 천기가 건물 중심부로 내려오는 명당에 있었으며
길림에 하나뿐인 천주교 성당도 명당에 있었다
이 건물은 해방 전에 건물로 명당 기운을 보고 잡은 것 같았다
삼월이 되면 백두산을 방문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우연하게 연길에 오신 조선족 교수님을 만났다
그 분의 도움으로 특별대우를 받아가며 가 보고 싶었던
백두산 여러 곳을 둘러 보았고 단군신전을 모신
대명당에서 기도할 기회을 얻었다
모두가 인연법이고 하늘의 뜻으로 생각한다
중국에는 손님을 접대하는 문화가 한국과 매우 달랐다
같은 일행인 모 출판사 사장님 부부와 최고 손님으로
대우를 받았다
교수님은 중국 광동 동화선사 주지이며 중국의 달마로
칭송받는 만행스님을 설법한 내용인 "마음의 달"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분이다
마음의 달은 만행선사의 깊은 사상이 응축되어 있어
불심이 돈독한 불자나 참선을 하시는 분은
한번쯤 읽어 볼 가치 있는 책이다
만행스님은 중국의 선승으로 3번에 걸쳐 7년 간
동굴 밖에서 문을 걸고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고통스런 수행을 통해 크게 깨친 분이다
앞으로 중국 불교에 큰 스님으로 남을 분으로 보였다
광동까지 가서 만행스님을 만나 볼 계획까지 잡았으나
거리가 멀고 한국에 일정이 잡혀 다음 기회에
방문 하기로 하였다
풍수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반드시 답산해야 할 곳이 백두산이다
백두산이 민족 정기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풍수에서 요구되는 기에 시발점은 분명히 아니었다
이번 백두산 방문은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다음 방문에는 우리 민족의 고대 역사의 주역이었던
고구려 옛 흔적들을 둘러 볼 예정이다
아쉬운 것은 북한지역에 있는 백두산 명당들이다
많은 대명당들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오길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