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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자식을 위하여
탈북 학생이 전학을 왔다. 담임선생 얘기론 그 어머니가 울면서 “제발 아이의 신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더라는 것이다. 과연 그 아이는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고 한다. 말을 하면 그 말투에서 금방 표가 나기에 놀림감이 되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까닭이다. 전학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온 듯한데, 탈북 학생 중 집단따돌림 등으로 중도탈락하는 비율이 50%에 이른다니 사정을 알 만하다. 타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협량이 새삼 가슴 아프다.
이른바 ‘왕따’는 학생들 세계만이 아니라 교무실에도 존재한다. 학교도서관을 담당하는 교사들 모임이 여럿 있는데 거기서 전해들은 ㄱ 교사의 이야기다. 학교 교무실이란 대체로 조용하지만, 성격이 적극적인 한 사람만 있으면 분위기는 금방 뒤바뀐다. ㄱ교사의 학교에도 ‘분위기 메이커’를 자임하는 한 교사가 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각종 사사로운 얘깃거리로 대화를 유도한다.
“아침에 차를 빼는데 누가 뒤를 박지 않겠어? 한판 하려고 내렸더니 우리 동서지 뭐야!” 이 ‘치어리더’ 덕분에 교무실은 즐거운 ‘광장’이 된다. 유재석·김원희가 진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놀러와’처럼 매순간 재치 넘치는 말놀이와 웃음소리로 왁자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약도 독이 되는 법이다. 시인이기도 한 ㄱ 교사는 다만 한 시간이라도 침묵과 정적 속에 있을 수 있는 ‘밀실’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공간이 도서실이다.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오랫동안 초·중·고 도서실은 먼지 앉은 낡은 서가나 몇 개 들여놓고 육중한 자물쇠로 잠가버리는 무관심지대였다. 그는 부임하는 학교마다 담당사무로 도서실 운영을 자원했다. 그러고는 먼지를 털고 서가를 정리하고 전용 책상을 가져다놓아 그럴듯한 연구실처럼 만들었다. 수업 외의 시간을 주로 거기서 보내면서 그는 비로소 명상 등 자기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무실 구성원 모두의 갈채 속에 있어야 하는 치어리더로서는 늘 자리를 비우고 있는 ㄱ 교사의 존재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자기의 자장에 들어오지 않는 타자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적대적 반응은 다양한데, ㄱ 교사를 찾는데 보이지 않으면 “교수님은 연구실에 계신가?” 하는 축은 그래도 기품 있는 편이고, 어느 해 갓 전입해 온 활달한 여선생이 했다는 말은 충격적이다. “이 버림받은 자식 어디 갔어?”
동료 교사를 향한 무뢰배 같은 언사는 물론 천박한 교양에서 온 것이겠지만, ㄱ 교사 나름의 해석은 이렇다. “자신이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무의식에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따돌리며 경계를 지어야만 그 집단 속에서 안도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이질적인 타자들을 결단코 허용하지 않는 일차원적 우리 사회가 일단 두려움을 유포하고, 그것이 ‘왕따 만들기’ 같은 파시즘적 공격성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버림받은 자식’인 한 혼혈아가 미국에 가 탁월한 ‘하이브리드’(잡종) 하인스 워드로 성장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 크다. 문제 많은 미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인 이유 중 하나는 그 사회가 ‘이질적인 것과의 불편한 동거’를 일상적으로 견뎌내는 수준 만큼은 세계 최고여서가 아닐까.
이석범/소설가·서울 신원중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