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놀이, 그리고 상호성(Interactivity)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놀이의 정신적 계보
놀이의 정신적 계보는 생각보다 그 역사가 깊다. 고전철학,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놀이(유희)’를 동물적 불안정함의 표현 정도로만 이해했다. 단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분전환이나 카타르시스 기능에서 놀이의 가치를 일정정도 인정했을 뿐이다. 물론 세계를 하나의 놀이라고 파악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 BC 540경-BC 480경)와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의 철학적 입장에서 놀이라는 것은 그렇게 주요한 대상은 아니었다. 그 뒤 한동안 놀이는 사유의 대상이 되질 못하다가 18세기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 새롭게 호출된다. 쉴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 1759~1805)가 『인간의 미적교육에 관한 편지』(1795년)에서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서의 ‘유희’라는 개념을 주장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는 칸트의 이론에 기대고 있다. 어쨌든 쉴러는 예술과 놀이는 모두 유희충동에서 비롯됨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뒤 100년이 지난 즈음 니체를 경유해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 “호모 루덴스”를 주장하게 된다.
놀이의 의미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니체일지도 모른다. 니힐리즘의 극복을 철학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했던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에게 있어 놀이는 비목적적, 비인과적, 비도덕적 행위를 대변하는 기제였다. 신과 윤리에 삶을 저당 잡힌 인간을 ‘해방’하기 위한 기획을 감행했던 니체에게 ‘놀이’가 주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놀이는 감성적 충동이 만들어낸 물리적 필연성과 형식충동이 초래한 이성적 ․ 도덕적 필연성의 강제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에 이룰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초인 (Übermensch)’, ‘힘에의 의지 (Wille zur Macht)’는 모두 어떠한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난 상태인 ‘자유’의 동의어들이다.
<중세의 가을>로 명성을 얻은 호이징가는 뜻밖에 <호모루덴스>를 집필한다. 역사학자인 호이징가가 20세기 초반 전쟁의 광기를 목격하면서 써내려갔던 책이다. 인류문화의 기원이 ‘놀이’에 있다는 호이징가의 충격적인 주장은 당시 어린아이들의 행위 정도쯤으로 여겨지던 ‘놀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인간이해의 지평을 넓힌다. 호이징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네덜란드를 침략한 독일군의 점령 치하에서 독일을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42년에 석방되어 가족과의 면회도 금지된 채 시골집에서 쓸쓸히 사망했다. 그런 면에서 호이징가의 <호모루덴스>는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강하게 베여있는 저술이다.
한편 정신분석학의 등장으로 놀이는 새롭게 해석된다. 정신분석에서 놀이는 일 만큼 진지하고 목적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대립항이 이제까지 믿어왔던 ‘일’이나 ‘실용성’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보기에 놀이는 만족 할 수 없는 ‘현실로 부터의 도피’인 셈이다.
현대미술과 게임의 법칙
이러한 ‘유희’ 혹은 ‘놀이’의 의미는 미술의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어져 왔다. 예술을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무의식의 영역으로 이해했던 사람들은 초현실주이자들이다. 정신분석학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이들은 예술을 하나의 ‘우연적인’ 놀이로 치환한다. 비현실적인 풍경을 마블링 기법으로 재현했던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 언어와 이미지의 간극사이를 유영했던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 무의식적인 추상회화를 시도했던 아르프(Hans Arp, 1887- 1966)의 작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그 이후 자동 기술적 드로잉이과 추상회화를 시도했던 톰블리(Cy Twombly, 1928-2011)나 폴락(Jackson Pollock, 1912-1956) 등의 작품들은 예술에 있어 유희적인 미학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일과 놀이’ 혹은 ‘노동과 유희’의 만남은 현실주의 미학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 졌다. 노동해방을 갈망했던 리얼리스트들에게 ‘놀이’와 ‘일’의 결합은 ‘생산성 증대’라는 자본의 욕구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를 결합하고자 하였다. 즉 임금노동자로써 자신의 노동을 자본에 의탁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억압된 ‘노동’을 해방함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되찾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노동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성찰하기 시작하였고,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던 노동자의 주체적인 자각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을 출현하게 하였다. 사실주의의 선구자인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를 비롯해 바르비종파의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러한 정신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민중미술에서는 태백 광산촌의 광부들의 삶을 형상화 했던 황재형의 작품이나 전통 연희의 형식을 빌려 노동의 건강함을 표현했던 오윤과 같은 작가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예술의 유희적 특성은 동시대 미술에서는 ‘상호성’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한다. 특히 미디어를 활용하는 작업들은 그 속성상 관객의 참여를 ‘게임(놀이)’이라는 개념으로 구현한다. 경희대 백수희교수는 <놀이적 맥락에서 본 인터랙티브 설치예술의 특성, 2009,디지털 디자인학연구 Vol.9>이라는 논문을 통해 상호작용적 관계, 허구의 세계, 재현과 우연의 결합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거칠게 요약해 보면 인터랙티브 작품은 작품과 관객, 혹은 관객과 관객의 상호작용을 유발하며, 실제생활에서 분리되는 시공간의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재현과 우연의 결합은 놀이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관객의 참여로 작품의 의미나 해석 혹은 그 형태마저도 달라지는 ‘우연성’을 결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예술의 ‘상호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에는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 1915-1980)의 <저자의 죽음>,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저자란 무엇인가>등에서 논의 되었던 사회적 ․ 역사적 주체로서의 ‘저자’. 즉, 저자는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주체에 가까우며 “하나의 기술(記述)이 이루어지는 순간 저자는 스스로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남겨지는 것은 텍스트 뿐1)”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1970년대 미니멀리즘 논쟁에서 작품에 내재된 ‘절대적’ 혹은 ‘정지된’ 시간을 부정하며 관객이 체험하는 현실적인 시간과 관점을 호출했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다. 즉, 작품이 가지는 고유성보다도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예술의 범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이론 이전에 “상호성” 의미는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이미 현존하고 있다. 고유한 오브제 혹은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작품’의 개념은 20세기 초반부터 심각한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그 기원은 알려져 있다시피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자전거 바퀴>이다.
1913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관객이 자전거 바퀴를 스스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그 능동성을 끌어 들여 상호작용적 예술의 기원이 된다. 그리고 1950-60년대 옵티컬이나 키네틱 아트에서도 관객의 직접적인 행동이 작품에 수용된다. 예를 들면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의 모빌 작업들은 자연의 바람에 의해 움직임을 획득하기도 하지만 관람자의 개입으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구조이다. 뿐 만 아니라 해프닝은 그 자체로 관객의 참여를 전재하고 있다. 물론 작가에 의한 리얼타임 해프닝도 있지만 관객과 함께 진행된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해프닝의 창시자 앨런 카프로우(Allan Kaprow, 1927–2006)의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여덟 개의 해프닝>은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백남준(1932-2006)의 <자석 TV>는 관객이 자석을 움직임에 따라 영상이 변화하는 비디오 인터랙티브의 시초가 된 작품이다. 그리고 급진적인 미니멀리스트인 칼안드레(Carl Andre, 1935- )는 <144 Zink Square>라는 작품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밟고 지나가도록 의도했다. 그 유명한 부르스 나우만(Bruce Nauman, 1941- )의 <Live-Taped Video Corridor>는 좁고 긴 복도를 지나가는 체험을 통해 관객이 가지고 있는 현실 체험을 전복시킨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의 <기다림> 같은 경우 관객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작품이 서서히 드러난다. 관객의 신체적인 적응이 작품으로 표현되어지는 경우로 작가보다는 관객에게 그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리크릿 티라바냐(Rikrit Tiravanija, 1961- )는 1992년 뉴욕의 303갤러리에서 관람객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그들이 떠난 후의 흔적을 작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2) 이 작품은 니꼴라 부리요의 <관계의 미학>에 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지워진 이름 ‘관객’의 재발견과 ‘상호성’
현대미술과 놀이의 관계를 크게 맥락화 시켜보면, 일과 놀이(노동과 유희), 현실과 비현실(가상현실/정신분석적 해석), 감각과 이성의 조화로서의 유희, 인터랙티브티(상호성) 등의 개념들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예술작품의 기저에는 유희적인 성향을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미술에서 ‘놀이’는 예술에 있어 다양한 영향을 미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흐름중의 하나는 바로 ‘관객’을 넘어선 ‘상호성(Interactivity)’의 발견이다. 이제 예술은 오브제 화된 물질적인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작품, 작품과 관객, 관객과 관객사이(비물질)에 존재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놀이는 호이징가가 주장했듯이 자유로운 행위이자 실제 삶을 벗어난 일시적인 행위이며, 장소의 격리성과 시간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적이고 고유한 질서가 있다. 그러나 예술의 영역에서는 ‘장소의 격리성과 시간의 한계성‘을 넘어서고 있으며 ‘절대적이고 고유한 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놀이는 ‘상호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상대방이 존재하거나 프로그래밍 되어진 툴이 있어야만 놀이는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과거의 예술은 ‘상호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모나리자는 그 자체로 모나리자이자 예술로 존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동시대 미술은 작품 그 자체보다는 ‘횡간의 의미(context)’에 주목하거나 작품과 관객, 관객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것은 놀이에는 분명하게 존재했지만 예술에서는 잊혀졌던 개념이다. 이제 예술은 ‘상호성’을 회복시킴으로서 또 다른 게임(?)이 되고 있다.
1) 롤랑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김희영옮김, 동문선,1997.
2) 여기에 언급된 작가들은 김현진의 <현대미술의 상호작용성 연구>라는 논문을 참고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