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 오후에 시청인근 정동길에 다녀왔습니다.
때마침 열리고 있던 정동축제 마지막 날이었기에 곳곳에 벌어진 볼거리를 구경하면서 찾아간 곳은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
‘품사랑’ 갤러리에서 열리는 ‘촛불 바람에 응답하는 15차 천주교 시국미사’ 자리였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기륭전자 정문 장기 농성장에서 열렸던 제14차 시국미사에서 때마침 듣게 된 한겨레신문 홍세화님의 특별강연에
대한 예고 때문에 일부러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두 번에 걸친 시국미사 참석이유가 한 번은 기륭전자 방문이요 또 한 번은 홍세화님 강연청취였으니 누가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팔린 사람이라고 흉을 봐도 어쩔 도리가 없게 되 버리고 말았지만 이왕에 젯밥에 팔려버린 정신이라면 배라도
불려야 하겠기에 홍세화님 강연에 귀 기울여서 잘 새겨듣고 온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
후기를 겸하여 홍세화님의 강연을 요약하여 올립니다.
- 미디어와 제도교육은 민주주의와 대단히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둘 다 우리의 의식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의식체계에 습득시킨 생각은 쉽게 바꾸지 않고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 생각은 자라면서 채워지는 것이며 미디어와 교육체계는 우리의 의식세계를 어떤 생각으로 채우느냐에 관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미디어와 교육체계를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우리나라의 제도교육은 이미 오랜 전인 일제통치 시대부터 국가권력이 장악하고 있다.
미디어는 상대적으로 시장(자본)이 좌우해 왔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국가권력이 장악하려는 시도가 거세지고 있다.
- 신문을 구분하면서 통상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이라고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중간에 회색지대가 존재하고 조중동과
같은 극우 수구언론과 한겨레, 경향과 같은 진보성향의 신문 이외에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 중간지대에서 중립주의를 표방하면서
어정쩡한 입장으로 시류에 비위를 맞추어가며 안주하고 있다.
- 이러한 기계적인 중립주의의 폐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선명하게 분류해야 하는데 그 분류기준은 상식에 기초해야 한다.
즉 ‘상식적인 신문’과 ‘몰상식한 신문’으로 구분해야만 하는 것이다. 상식이 아닌 것은 모두 몰상식이기 때문에 상식과 몰상식의 중간지대란 없는 것이다.
- 과거에는 적어도 자신의 의식과 사고역량이 부족함에 대한 자각은 이루고 살았으나 현대와 같이 제도교육과 미디어가 지나치게
확산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의식체계가 충분히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여 별다른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채워져 있는 것은 국가권력과 거기에 기생하는 지배세력이 원하는 방식의 생각일 뿐이다.
- ‘공화국’은 단순히 ‘군주국’의 반대개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Republic(공화국)는 어원은 로마어 Re publica(공적인 일)로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진정한 공화국이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제도교육이 공화국의 기본개념인 ‘공공성’과
‘공익’에 대하여 교육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의 근본에는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이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 볼테르가 이르기를 세상에서 가장 열성을 가진 자는 바로 광신자라고 했다.
광신자말고도 사익추구에 몰두하는 자들 역시 열성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노름꾼들이 좋은 예이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광신과 사익추구에 대한 열성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다
- 광신자에게는 열성이 스스로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지식을 가진 자는 그렇지 않아서 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의지’를
발휘해야만 한다.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열성을 부리지 않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광신자와 사익추구세력에 맞서 공공성과 공익을 수호해야 하는
사람들의 열성이 아쉽다. 열성을 의지와 결합시키자.
홍세화님께서는 강연 모두에 현대 프랑스의 양심이라 불리던 피에르신부의 말을 이렇게 전한 바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둘로 나누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이렇게 나뉘는 것이 아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와 그렇지 아니한 자’로 나뉘는 것이다”
제가 찾아 보니 피에르 신부의 발언 중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나는 자주 화내는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을 무너뜨리는 무언가에 대해 비난해야 할 때면 화를 내기도 한다. 성스러운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사랑이며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미사후 바로 이어진 홍세화님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졌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기회를 잡지 못하였지만 다행히
틈을 봐서 홍세화님과 간단하나마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e mail로 연락을 달라는 말씀을 들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겠습니다. *^^*
나중에라도 기회를 봐서 시도해보고자 하는 것은, 기륭전자, KTX 등의 비정규직 이슈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여지없이 파괴
시키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점들을 인식함에 있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인간성의 결함이 함께 결부되어 있다는 저의 관점에
대하여 홍세화님의 생각도 들어보고 깨우침도 얻는 기회를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시국미사를 주관하는 천주교 단체가 합동으로 제작한 만화(표지포함 20쪽)입니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자'라는 제목인데 사회의 문제를 인식함에 있어서 이기적인 관점이 아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시각을 유지하기를 당부하는 좋은 내용입니다.

시국만화(제가 붙힌 이름입니다. *^^*)의 표지와 뒷면입니다. 여러권 가져 왔지만 우리 녹평독자 여러분들은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서 제 친구들이나 다른 주변사람들을 위주로 배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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