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고유한 발달의 그물망을 만드는 중
-평균의 종말_토드 로즈를 읽고-
우리의 일상은 평균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일차원적 사고의 흐름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마주치는 상황마다 끊임없이 자동으로 분류되고 평가받는다. 외모도, 소품도, 말투도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사람과 똑같되 더 뛰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성공도 자꾸만 주위 사람들과 비교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옹졸한 꿈이다. 매순간 분류당하고 등급이 매겨졌던 표준화된 학교와, 직무 수행 평가와 성과급이 살아있는 직장과, 성공에 따라 보상과 인정이 주어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보이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까?
토드 로즈는 ‘평등한 맞춤만이 평등한 기회의 밑거름이 된다(268쪽)’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평균적인 사람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개개인에 대한 평등한 맞춤이야말로 우리의 소중한 가치와 보다 밀접히 연결되도록 이끌어준다는 것도. 각자가 최고의 자신으로 도약하도록 기회를 열어준다는 사실도. 게다가 이제는 개개인성을 구축할 만한 과학과 기술이 있다. ‘개인 맞춤형’이라는 용어가 그리 낯선 말도 아니다.
그런데 진짜 난제는 이거다. 변화의 시급한 대상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나는 여전히 내 아이들이 남들과 다르게 분류되면 성공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표준적인 경로에서 이탈하면 고용시장에서 비교당할까 염려된다.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등 아이들의 생애주기별 발달 과업을 앞으로 수행해야 할 무거운 과제로서 걱정한다.
심리학자 커트 피셔의 말은 내 머릿 속이 쩌릿해지는 울림을 주었다. “발달의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라기보다는, 우리 각자가 저마다 발달의 그물망을 가지고 있다”(202쪽).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평균주의 눈가리개는 바로 사다리였다. 평균주의 교육에 모범적으로 순응해 살아오면서 표준경로는 단계적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사다리로 보았다. 세상을 사다리라는 잣대로 들이대며 내 아이들이 어떤 높이에 있는지 수시로 체크했다. 아직도 제자리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나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면서. 그런 염려가 무색하게 우리 아이들은 예체능의 길을 고집했다. 평균주의자로 인정받아온 부모에게 표준경로를 수시로 이탈하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강도 높은 불안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부부가 위안을 삼고,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는 옛말을 수긍해 가면서 지금은 그저 아이들을 응원만 할 뿐이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을 읽는 시간은 내 눈가리개인 평균주의 사다리를 제거하고 그물망으로 교체하는 개안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특별하다. 저마다 고유한 그물망을 만들며 살고 있다. 아이들을 표준경로라는 사다리 위에 두면 성공의 평균적인 수순에 사로잡혀 온갖 걱정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보다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 과업만 보일뿐이다. 각자가 걸어가는 경로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유용한 길이 어떤 형태일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다. 그리고 그 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탈’은 어쩌면 꼭 필요한 경로이며 저마다의 ‘고유한 그물망’을 만드는 특별한 과정일지 모른다.
오늘도 너희들은 새로운 길로 이탈 중이다.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두 아들은 각자가 개성 넘치는 그물망을 엮고 있는데 엄마는 문득문득 사다리 생각이 난다.
구시대적 굴레라면서 벗어 던지고서는.
사다리 렌즈로 바라보면 너희 둘 다 한걱정 거리들인데, 그물망으로 다시 보면 도전하는 모습이 꽤 자랑스럽다.
갈짓자로 걷다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쫌 울컥도 한다.
둘 다 큰 그림이 있다고 큰 소리 땅땅치면 엄마는 마냥 좋다.
너희가 앞으로 어떤 ‘큰 그물망’을 완성할진 모르겠다.
다만 엄마는 너희들의 ‘일탈’마저도 그저 미답이 되길 기도할 뿐이다.
첫댓글 두 아이를 향한 편지글에 울컥..
그런데 마음이 말랑말랑 따뜻해집니다.
책을 읽으며 선생님에게 있었던 변화가 '개안의 과정'이라 표현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재순쌤이 교육의 현장에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위로, 살짝 벅찬 기분좋은 감동이었어요^^
재순쌤 글을 보니 그때 나눈 이야기들이 다시 생각나네요~~~
저도 혜화쌤처럼 그 날 우리가 나눴던 정다운 대화가 생각나는 글이었어요.
선생님의 고민과 걱정과 분투와 그럼에도 내려놓고 믿어주는 엄마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글에서도 선생님의 삶에서도 잘 드러나서 좋았어요.
저도 발달의 사다리가 아니라 그물망이라는 구절에 밑줄 쫙 쳤는데! 역시 통했네요 :-)
앞으로도 멋진 개안의 과정을 함께 격려하면서 갈 많은 날이 기대됩니다.
제 고민을 나누는 관계는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책을 함께 읽고, 같이 글까지 쓰면서 나누는 관계는 노워리 기자단뿐이에요. 가만히 노워리 기자단 쌤들을 보고 있으면 신기해요. 같은 방향을 보는 것도 놀랍고, 무어라도 실천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대단하구요. '소중한 분'들과 함께한다는 든든함과 자랑스러움을 갖게 해주는 분들이에요. 혜화샘, 정인샘 같이 읽어주시고, 기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