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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행복 에세이】
며느리의 ‘새해 달력’과 손자의 ‘젖니’
― 할아버지에게 행복한 새해 ‘시적(詩的) 영감’을 주다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할아버지, 저 이가 빠졌어요.”
손자가 왔다. 반가운 손자가 왔다.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퇴근길에 손자를 데리고 왔다.
새해 달력을 가지고 손자와 함께 현관 앞에 우뚝 섰다. 반가워서 손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퇴근길에 새해 달력을 가지고 왔다. - 음력 표기가 잘 되어 있는 활자가 큰 달력과 탁상 캘린더, 가계부도 들어 있었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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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이가 빠졌다’라는 사실을 먼저 알린다.
이가 빠졌다니, 어린 손자로서는 이만큼 중대한 뉴스가 없다. 며느리가 보충 설명을 했다.
“젖니가 빠졌어요. 이제 마지막 젖니가 아닌가 싶어요.”
▲ 손자의 ‘마지막 젖니’가 빠졌다고 한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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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는 조금 전 치과에 다녀왔는지, 약솜을 입에 문 채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지갑을 꺼냈다. 손자에게 용돈부터 주었다. 손자가 지폐를 받아 들고 “고맙습니다” 인사했다.
할아버지에게 행복한 새해 ‘시적 영감(詩的 靈感)을 주는 장면이었다.
문득 시상(詩想) 한 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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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젖니와 새해 달력》 윤승원 지환이 할아버지 손자의 젖니가 빠진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 며느리가 가져온 새해 달력과 같은 것 연말에 때맞춰 손자의 젖니가 빠진다는 것은 한해 묵은 달력 떼어내고 새해 달력을 바꿔 단다는 의미 희망찬 새해 달력을 벽에 거니 손자의 얼굴도 밝아지고 할머니 주름살도 펴지네 연말에 벽에 걸린 달력을 바꿔 다는 일은 새 역사를 창조하는 일 좋은 운수를 만들어가는 일 손자의 마지막 젖니가 빠지고 새하얗고 예쁜 이가 희망처럼 돋는 것은 집안에도 새로운 운기가 새싹처럼 돋아나는 일 꽃처럼 행복이 피어나는 일 ♧ 2025. 12. 16. 희망찬 새해 달력을 받아 걸며 ============= |
해마다 연말에 며느리가 직장에서 가져오는 달력은 여느 달력과 다르다. 왜 아니 그런가.
엊그제 골목에서 만난 팔순의 이웃 할아버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새해 달력을 가슴에 안고 가기에 여쭤보았다.
“새해 달력을 어디서 구하셨나요?”
그러자 무슨 ‘횡재(橫財)’라도 한 듯 밝게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금융회사에서 발행한 달력을 집안에 걸어두면 좋다고 하기에 동네 은행에서 구했지요.”
아니, 놀라운 일이었다. 돈을 취급하는 금융회사 달력을 벽에 걸면 좋다? 새로운 민간 신앙인가?
슬며시 웃음이 나왔지만, 온갖 풍파 이기고 굳건히 살아오신 팔순 노인의 말씀이니 일단 존중한다.
그래서일까? 금융기관 달력은 우리 동네에선 인기였다.
자주 가는 단골 음식점 벽에도 금융회사 달력이 걸렸고, 단골 이발소 벽에도 은행 달력이 걸려 있다.
그러니, 공교롭게도 며느리가 챙겨온 금융회사 달력은 그 할아버지 말씀처럼 귀하게 대접해야 할 일이다.
며느리는 방마다 걸을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달력을 가져왔다. 글을 쓰는 ‘할아버지용 탁상 달력’이며, 살림하는 ‘할머니용 가계부’까지 알뜰히 챙겨 왔다. 게다가 달고 맛있는 감귤도 한 상자 들고 왔다. 며느리의 따뜻한 효심이다.
벽에 걸 달력은 무엇보다 음력 표기가 잘 돼 있다. 이렇게 큰 활자의 달력을 보면 옛 부모님이 생각난다.
“얘야,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냐?”
눈이 어두우신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음력을 자주 물으셨다.
농부가 절기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고, 지붕에 이엉이나 용고새(‘용마름’의 충청도 방언)를 얹을 때도 아무 날이나 하지 않았다. 꼭 ‘손 없는 날’을 택했다.
그렇다면 새해 ‘운수 좋은 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일간지 칼럼으로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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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칼럼 : 『좋은 운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2011.01.05.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 ‘윤승원의 세상풍정’)
【윤승원의 세상風情】 좋은 운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 ‘긍정’의 자기 최면 효과 윤승원 논설위원 시골에 계신 팔순의 장모님은 음력이 크게 표기된 새해 달력을 좋아하신다. 그 옛날 선친께서도 그러셨다. 음력이 상세히 표기되지 않은 달력은 벽에 붙여 놓지 않았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얼굴과 정치구호가 들어있는 달력을 가가호호 배포했는데, 1년 열두 달이 한 장에 들어있는 달력이다 보니, 일자가 깨알 같아 노인들은 보기 어려웠다. 선친께서도 눈이 어둡다면서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냐?”고 내게 자주 묻곤 하셨다. 음력이 표기된 달력에는 일진(日辰)이 상세히 나타나 있다. 땅과 하늘의 이치를 중시하는 농부에게는 절기와 일진이 대단히 중요했다. 무슨 특별한 일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일진을 보았다. 이를 ‘날 잡는다’고 했다. 이사를 하거나 원행(遠行)을 하거나 심지어 이엉과 용고새(용마름)를 지붕에 올릴 때도 아무 날이나 하지 않았다. 꼭 ‘손 없는 날’을 택했다. 택일(擇日)이란 좋은 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쁜 날을 따져서 피하는 것이다. ‘손 없는 날’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사람의 한쪽 손가락은 다섯 개다. 음력 1~5일까지는 손이 있는 날이다. 음력 6~10일은 손이 없는 날이다. 음력 9일은 손 없는 날 중에서 제일 좋은 날이다. 음력 10일은 무해무득(無害無得),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날이다. 또 하나 해석은 이렇다. 원래 ‘손’이란 말은 궁핍한 시대에 부담스러운 손님을 고민했던 데서 유래됐는데, 이것이 ‘두렵다’는 뜻으로 쓰여 멀리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의미한다. 우리 민속에서 ‘손’이란 날짜에 따라 사람들이 가는 쪽을 따라다니며 심술을 부리는 귀신을 말하기도 하는데, ‘손’은 손님을 줄인 것으로 ‘두신(痘神)’을 가리킨다. 두신은 천연두다. 시대가 바뀌었고 생활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손 없는 날’을 따져 일을 행하는 것은 나약한 마음을 위로받기 위한 방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생만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 택일이다. 혼사 날, 개업 날 등 기왕이면 나쁘지 않은 날을 택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흔히 ‘토정비결을 믿느냐’ 하지만 살아가면서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면 “저 이는 정초에 토정비결도 보지 않았나?”라고 안타까워한다. 무슨 달에는 물가(강과 바다)를, 무슨 달에는 윤화(輪禍, 자동차)를 조심하고, 무슨 달에는 설화(舌禍, 말)를 조심하라는 등의 삼가야 할 대목도 많다. 지난 해 유명 정치인 중에 잇따른 설화(舌禍)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고 어떤 이는 “한 해 운세만 보았더라도 저런 실수를 거듭하지 않을 텐데…”라고 말했다. 한 해 운수가 아니라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만 눈여겨보았더라도 연거푸 실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띠별 운세에는 황당한 미신으로만 여길 수 없는 삶의 지혜도 들어있다. 때로는 생활지침이 되기도 하고, 새겨들어야 할 잠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내게 좋은 뜻이면 받아들이면서 하루를 산다면 후회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매사 분수를 지키는 자제력과 자기 통제는 인격수양에서 나오는 것이고, 인간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수 없는 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 인지도 모른다. 새해, 한 가장으로서 소망은 세 가지다. 국가는 강하고, 사회는 건강하고, 개인적으로는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 첨단 미디어시대에 말과 글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살아가면서 화가 나는 일도 많은데 늘 도덕군자처럼 좋은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가시 돋친 말도 하고 산다. 그러나 가려야 한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는 표현은 없는지, 한 밤중에도 벌떡 일어나 퇴고(推敲)를 하듯 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필자는 등단 초기 내 글에 대한 평자(評者)의 말 한마디에 최면이 걸렸다. 『‘만원버스에 이골이 난 사람은 구두가 밟혀도 옷 단추가 떨어져 나가도 화를 내지 않고 그날의 운수소관으로 돌리고 만다는 사실이다.’(수필 「만원버스에서」 끝 문장)라고 한 것도 긍정적인 삶의 태도이고, 달관된 여유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삶의 지혜와 진실성을 찾아내는 것이 아주 밝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라는 문학평론가의 덕담 한 마디에 ‘최면의 인자(因子)’가 들어 있었다. 가족의 반응도 고무적이었다. “성공적인 글을 쓰려면 비관보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최초 독자인 가족의 반응에 최면이 걸려 글을 쓸 때마다 ‘긍정의 요소’ 찾기에 지금도 여전히 골몰하고 있다. 긍정에는 늘 좋은 운수가 따르는 법이니까. ▣ (금강일보 2011.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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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좋은 운수’는 누가 만들어 주길 바라선 안 된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한 해도 그래왔고, 새해에도 그럴 것이다.
새해 달력을 챙겨다 준 며느리의 남다른 효심과 성의가 고맙다. 엄마 손을 잡고 함께 따라와 예쁘게 인사했던 ‘젖니 빠진’ 손자 지환이도 사랑스럽고 귀엽다. ♣
2025. 12. 16.
윤승원, 며느리가 가져온 새해 달력에서 ‘효심’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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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이 수필은 윤승원 작가 특유의 ‘생활 서정’과 ‘가족 윤리’가 한 장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응축되는 작품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독자를 따뜻한 일상 속으로 초대하며, 사소한 사건을 시적 사유로 끌어올리는 문학적 힘과, 세대를 잇는 사회 교육적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1. 흥미로운 문학적 요소
① 일상의 사소함을 ‘시적 상징’으로 전환하는 감각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젖니’와 ‘새해 달력’이라는 극히 평범한 사물을 삶의 전환과 희망의 상징으로 승화시킨 데 있습니다.
손자의 젖니 하나는 단순한 성장의 징표가 아니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간의 경계이며
가정 안에 새로운 기운이 스며드는 징조로 읽힙니다.
젖니가 빠지는 순간과 묵은 달력을 떼어내는 행위를 나란히 놓은 시적 병치는, 독자로 하여금 삶도 그렇게 한 장씩 넘겨진다’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② 산문과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조
수필 속에 자연스럽게 삽입된 시 「손자의 젖니와 새해 달력」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산문에서 싹튼 감정이 시라는 응결된 형식으로 한 번 더 사유되는 장치입니다.
이는 윤승원 수필이 지닌 특징인 ‘시적 산문, 산문적 시’의 미학을 잘 보여줍니다. 독자는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시 앞에 서게 되고, 그 지점에서 감정은 더욱 맑게 정화됩니다.
③ 회상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서술 방식
며느리의 달력에서 시작해
→ 팔순 이웃 노인의 말
→ 음식점과 이발소의 은행 달력
→ 부모 세대의 음력 기억
→ 농경 사회의 택일 사상
→ 과거에 쓴 칼럼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한 가정의 풍경을 한국 사회의 집단 기억으로 확장시키는 서술 전략입니다.
개인적 체험이 곧바로 공동체의 문화사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이 수필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2. 사회·교육적 가치
① 세대를 잇는 ‘가정 교육’의 교본
이 수필에는 훈계나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며느리의 달력 준비
손자의 정중한 인사
할아버지의 자연스러운 용돈과 마음
이 모든 것이 ‘보여주는 교육’으로 작동합니다.
독자는 이 장면을 통해 가족 안에서 예절과 효심은 가르쳐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내며 전해진다는 사실 을 조용히 깨닫게 됩니다.
② 미신을 삶의 태도로 재해석하는 균형감
‘손 없는 날’, 달력, 운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작가는 이를 맹목적으로 옹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민속적 지혜에 대한 존중과 주체적 삶의 태도를 함께 강조합니다.
“좋은 운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결론은, 전통을 배척하지도, 맹신하지도 않는 성숙한 시민 윤리를 보여줍니다.
③ 긍정의 언어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글의 마지막까지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긍정은 태도이고, 태도는 결국 삶의 방향을 만든다.
이는 개인에게는 마음가짐의 교육이고, 사회적으로는 언어와 생각의 책임성을 일깨우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글과 말의 영향력이 큰 시대에, 작가의 이 성찰은 더욱 설득력을 가집니다.
3. 종합 감상
『며느리의 ‘새해 달력’과 손자의 ‘젖니’』는 거창한 사건 없이도 인생의 큰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필입니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본 손자의 젖니 하나, 며느리의 손에서 건네진 달력 한 권이 한 가정의 행복을 넘어
- 세대 간 신뢰
- 삶을 대하는 태도
-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온기까지 환기시킵니다.
윤승원 수필의 힘은 늘 그렇듯, “작은 것을 크게 말하지 않고, 그러나 크게 남기는 데”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독자의 마음속 벽에, 조용히 그러나 오래 걸리는 ‘희망찬 새해 달력’ 한 장을 걸어 줍니다. ♣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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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댓글
◆ 박경순 작가(전 경찰서장, 해경 총경) 2025.12.16. 10:01
손주의 젖니 빠진 것을 보고
쓰신 시가 감동이네요.
어릴 적 이 빼는 일이
정말 무서웠는데
귀여운 손주의 모습을 보니
참 좋네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그 광경이 상상이 됩니다.
벌써 한해가 다 가네요.
새 달력에, 가계부에
며느님의 모습도 보이고...
참,
행복한 가족입니다.
부럽습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2025.12.16.10:08
와, 박 작가님의 격려 말씀은
댓글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감동의 선물’,
저는 그래서 글 쓰는 일이 행복합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사소한 행복을
세상에 내놓으면 이렇게 박 작가님처럼
따뜻한 인정의 선물을 주시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저만의 행복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공유하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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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댓글
◆ 박경순 작가(전 경찰서장, 해경 총경) 2025.12.16. 10:01
손주의 젖니 빠진 것을 보고
쓰신 시가 감동이네요.
어릴 적 이 빼는 일이
정말 무서웠는데
귀여운 손주의 모습을 보니
참 좋네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그 광경이 상상이 됩니다.
벌써 한해가 다 가네요.
새 달력에, 가계부에
며느님의 모습도 보이고...
참,
행복한 가족입니다.
부럽습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2025.12.16.10:08
와, 박 작가님의 격려 말씀은
댓글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감동의 선물’,
저는 그래서 글 쓰는 일이 행복합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사소한 행복을
세상에 내놓으면 이렇게 박 작가님처럼
따뜻한 인정의 선물을 주시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저만의 행복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공유하는 행복입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댓글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2025.12.17. 09:14
지환이 이갈기가 성장을 알리는 청신호.
그것도 세말에.
새해 달력도 어쩌면 윤 선생의
시상에 담은 것처럼 !
거기에 귀여운 손자와 함께 나타난
며느리가 새로운 빛을 전해줍니다.
송구영신!
축하와 새해 축복을 기원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손자의 이갈기 성장과 함께
며느리가 가져온 새로운 빛에 축하와 축복을 듬뿍 주시니 송구영신의 뜻에 아주 멋지게 어울립니다.
그래서 예부터 가정이나 사회나 큰 어르신의 덕담이 좋은 운기를 높여줍니다.
교수님 따뜻한 격려와 사랑의 말씀 덕분에 온가족 행복한 연말연시가 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도 더욱 건강하시고 댁내에도 좋은 운기가 상승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