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집에서의 마리아 막달레나 (1656)
필리프 드 샹파뉴
가톨릭 바로크 미술에서 회화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개신교 국가들이 성상과 성화를 파괴하는 것에 대항하듯이,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더욱 화려하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회화를 장식했다.
필리프 드 샹파뉴(Philippe de Champaigne, 1602-1674)가 1656년경에 그렸고,
현재 낭트 보자르 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는 <시몬 집에서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색깔과 구도가 우아하고 화려한 가톨릭 바로크 회화의 모범을 따르고 있으며,
이 작품의 배경은 루카복음 7장 36-50절이다.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6-38)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바리사이 시몬 집이다.
그의 집은 대리석 기둥이 있고,
은과 금으로 만든 그릇을 벽에 장식할 정도로 부유한 집이다.
그의 집 식탁에는 과일과 고기들이 풍성하고,
여러 시종이 음식을 나를 정도로 그는 부자이다.
그의 이마에는 ‘쉐마 이스라엘’(שמע ישראל, 이스라엘아, 들어라.)이라고 쓰여 있고,
그의 옷깃에는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라는
‘쉐마 이스라엘’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의 의상에서 그는 온몸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바리사이 시몬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 맞은편에 앉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치에는 금발의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발을 끌어안고 볼을 비비고 있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바닥에 내려놓고,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며,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고 나서,
그 발에 볼을 비비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 시몬이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루카 7,39)
성경은 마리아의 행동에 침묵하는 예수님의 태도에
바리사이 시몬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했는데,
화가는 시몬 뒤에 있는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태도에 화가 난 듯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눈을 부릅뜨고 예수님께 항의하려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러자 시몬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
시몬 뒤에 있는 젊은 남자는 그를 막으며,
그들 앞에 있는 어린 시종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조용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며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린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0-47)
예수님께서는 오른손 손가락으로 마리아를 가리키고 왼손을 당신 가슴에 대며
시몬을 바라보고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며 말씀하고 계신다.
마리아는 회개하여 많은 죄를 용서받았고,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샹파뉴는 이 그림에 고양이를 등장시키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이자 고양이 애호가였던
리슐리외 추기경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교 도상학에서 고양이는 악마를 상징하는데,
집주인 시몬의 의자 밑에 몸을 숨긴 검은 줄무늬 고양이가
그림 밖을 응시하고 있지만,
충성을 상징하는 갈색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폴짝 뛰어 주인에게 더 가까이 가려 한다.
어둠 속의 고양이와 빛 속의 강아지는 대립과 갈등을 상징하는데,
이를 통해 마리아 막달레나를 용서하는 예수님과
율법을 엄격히 지키려던 시몬의 생각이 서로 부딪히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만일 화가가 예수님과 시몬의 대립과 갈등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왜 개와 고양이를 각각 예수님과 시몬 아래 나눠 그리지 않고
둘 다 시몬 곁에 두었을까?
그 해답은 시몬의 뒤에서 예수님께 따지려는 남자를 제지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고 하는 시몬의 손에 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비록 율법을 어겼지만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는 마리아를 칭찬하며,
율법에만 치우친 시몬에게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를 가르치는 중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바리사이 시몬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할 만큼 충실한 제자였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중적 상태이다.
어둠 속에서 고개를 내민 고양이는 그런 시몬의 내면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림 밖을 바라보는 고양이는 우리에게도
‘너희는 지금 시몬인가? 아니면 마리아인가?’
‘너희는 지금 율법만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고 있는가?
너희는 지금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기만 했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