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얼마나 유효한 개념인가. 갑론을박이 예상되지만, 우리는 이 한 가지만큼은 분명한 시대에 살고 있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이 다층적·복합적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일본을 안다는 것은 가능해도, 일본만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재일 한국인 최초의 도쿄대 정교수'로 알려진 강상중 교수 역시 일본만을 알기를 스스로 거부한 인물이다. 그는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熊本) 출신의 재일 한국인 2세로서,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재학 시절 한국을 찾은 후 '나가노 테츠오'(永野鐵男)라는 일본명을 버리고 현재의 한국 이름을 택했다.
강 교수는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한국과 일본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해왔다. 그는 현재 도쿄대 대학원 학제정보학환 교수 및 현대한국연구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고민하는 힘>, <재일 강상중>,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살아야 하는 이유> 등의 저서를 냈다.
지난 11월 20일 오후 강상중 교수를 만나기 위해 도쿄대 캠퍼스를 찾았다. 인터뷰에는 평화네트워크 이제영 간사와 일본 요코하마 소재 시민단체인 '피스데포'의 김마리아 활동가가 참석했다.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꽤 인상적이다.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 강상중 도쿄대 교수. ⓒ평화네트워크
먼저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교수님께서는 3.11 (2011년 대지진) 이후의 일본은 '어제의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발언하신 적이 있다. 2년 가까이 지난 오늘, 일본은 어디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3.11을 관동대지진과 비교하게 된다. 1923년에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5~6년 정도 지났을 때 쇼와공황, 이어서 세계대공황이 일어났다. 그 때부터 일본은 큰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물론 역사란 그리 간단히 반복되는 건 아니다. 3.11 이후 아직 2년이 안 됐지만, 그 당시의 일본은 더욱 민주화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2차 세계대전 이전과 같이 다소 국가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현 추세로 볼 때 '국가중심주의'라고 부를 만한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관점에서는 '우경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보면 일본은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인들은 굉장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발생, 이웃나라인 중국과 한국의 경쟁력 강화가 그 원인이다. 예전의 일본은 <Japan as Number One>이라는 책이 보여주듯 아시아에서 커다란 존재였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와중에 독도 문제와 센카쿠(尖角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문제마저 일어나고 있다. 상당히 강한 국가 중심의 구심력이 작용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3.11은 지역 수준에서 시민사회가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였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일본에서는 국가중심의 새로운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중심이라는 흐름은 부정적인 영향이 큰 것인가?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본다. 민주주의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진보와 보수 세력이 분명히 나뉜다. 미국의 경우, 어쨌든 진보(리버럴)라고 부를 수 있는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했고, 이에 대항하는 보수 세력으로서 공화당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안'(얼터너티브)이라는 정치세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에도 이 같은 '대안'이 존재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민주통합당, 안철수 씨, 문재인 씨 등 대안이 있다. 물론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권 수준의 보수적인 형태로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씨든 야당이든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소 중도를 취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의 구심력이 매우 강해지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아무래도 우익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는 아마도 민주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 선거에서 상당히 패퇴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국가중심의 시대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데, 이 점이 우려되는 점이다."(이 인터뷰는 한국 대선 및 일본 총선 전에 이뤄졌다)
일본 내에서 우익의 흐름이 강해지면서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이 힘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거시적으로 보면, 동아시아와 유럽의 상황을 미국이라는 변수를 놓고 비교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이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통합의 움직임을 보였을 때, 역시나 미국의 반대는 상당히 강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미국도 유럽의 통합이 자국의 부담을 더는 의미에서 오히려 이익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고 전면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다. 냉전체제도 붕괴되었으니 유럽은 유럽 나름대로 통합되는 게 좋다고 판단한 미국은 결과적으로 EU 형성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를 보면, 오바마 정권은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번 재선 직후에 버마(미얀마), 캄보디아, 싱가포르를 첫 해외순방지로 택했다. 그런데 동남아시아는 다름 아닌 중국의 뒷마당이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호주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바마 정권이 중국의 대두, 그리고 미국을 제외하고 아시아가 뭉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 남중국해, 필리핀, 베트남에 이어 호주까지 확대되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전략적 중심축 이동'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미국 내에는 '동아시아가 하나의 공동체로 발전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는 압력을 가하되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방향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강하다. 즉,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형성에 대한 반발이 꽤 심하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이 점이 후텐마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외부 이전을 약속했던 하토야마 정권이 잘 굴러가지 못한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오키나와 기지문제를 계기로 미일안보의 차원에서 일본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공동체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던 것이다.
경제적인 맥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요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이 주요 이슈다. 원래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과 TPP를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현재는 TPP 추진에 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과 일본 내에는 한중일의 통합 움직임을 꺼려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이것이 커다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 내에는 중국의 위협에 대해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과잉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 후진타오(胡錦濤) 체제 하에서 사회격차 심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겪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밖으로 나오려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로부터 약간은 봉쇄당하고 있다고 여길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차후 미국과 중국 간의 정치 및 안보 측면에서 다소 어려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이대로 일본의 총선거가 끝난 후 새 정권이 들어섰을 경우에 일본은 중국과 상당히 대립각을 세울 것이다. 또한 역사와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과의 대립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악화되고 있는 중일관계를 화해와 평화의 관계로 바뀌기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 문제가 양국이 아닌 다국간 협력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세안지역포럼(ARF)라는 걸 갖고 있다. 싱가포르의 국내총생산(GDP)은 매우 높은데 반해 미얀마나 캄보디아의 경제력은 매우 낮다. 또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정치체제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하나의 포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그와 같은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이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바로 남북관계를 더욱 평화로운 공존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한국의 주도권이 확대될 것이다. 즉,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대로, 북한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매우 자립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안보 측면에서 보면, 최대의 위협이라 불리는 휴전선 이북의 위협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남북관계 개선은 한국이 현재보다 훨씬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북교섭을 추진해야 한다. 현 이명박정권은 대북관계에 거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가능한 내년 중에는 남북회담을 열어야 한다. 또한, 일본이 북한과 교섭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내년은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개발에 대해 어떠한 자세로 나올지는 모르지만, 역시 북일교섭이 진행되고 기존의 긴장이 조금은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은 미국에게도 북한과의 교섭을 추진하도록 조언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 및 미국에게 대북 접촉을 조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 스스로가 북한과의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 창구를 넓혀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노력이 쌓인다면 6자회담도 열릴 수 있다.
그러면 중일관계가 아무리 나쁘다고 하더라도 6자회담 내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를 위해 협력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이 더욱 강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역시 북한과의 교섭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최소한 김대중 정권 또는 노무현 정권에는 이미 남북공동선언이 있다. 이에 근거해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등 다양한 인적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중국, 일본,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하나는 최근 한국이 미사일사거리를 800km로 연장한 일이다. 또 하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다. 한국은 2015년까지 우라늄농축 및 재처리가 가능하도록 미국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를 북한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문제인데,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어느 정도까지 줄일 수 있는지 여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종의 군축을 어느 정도까지 시행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현 정권 하에서 최악에 치다른 남북관계를 최소한 원상복귀시키는 것이 한국이 독자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북한이 강하게 반발할 때 한국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즉, 중국과 미국, 때에 따라서는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남북관계가 훨씬 평화롭게 변한다면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6자회담을 통해 한국이 큰 역할을 맡게 될 경우,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6자회담을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지역포럼으로 발전시키는 구상'에 대해서 약 10년 전부터 주장해 왔다. 내년에 누가 정권을 잡게 되든지 간에 남북교섭을 추진해서 동아시아 전반에 한국의 역할을 확대시켜 나가는 일이 대단히 필요하다."
한일관계도 대단히 어려울 전망인데, 한국의 차기 정부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려운 문제이다. 한국의 차기 정부는 '앞으로 일본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가'라는 매우 어려운 선택 앞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 차기 정권은 다분히 영토 및 역사 문제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 강조하지만 먼저 남북관계를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북미간의 교섭을 최대한 장려하고, 한국도 솔선수범해서 교섭을 추진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일본의 차기 총리는 대북 초강경파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될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한국과 미국이 각각 북한과의 교섭을 진행한다면 일본만 고립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북한에 간섭 및 지원 조치를 취할 것이다. 러시아도 천연가스 수출을 위해서는 북한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설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가 북한과 평화적인 교섭을 바라게 될 경우, 일본 역시 안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일본의 외교 자세가 변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기존의 대북강경책을 고수해 오던 사고를 버려야 한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돈독해질수록 한국의 협상력도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한일관계가 악화된 국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방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한국 정부의 원전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근 한국에서는 고리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일어난 원전사고가 주민 및 일반 시민들에게 은폐되었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후쿠시마의 교훈이 한국정부에게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히려 일본이 원전기술을 수출하기 어려운 상황인 지금이 한국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에서 후쿠시마형의 원전사고가 일어날 경우, 한국은 국토가 좁기 때문에 수습이 불가능할 것이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일본도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이 있지만 전혀 가동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종적인 핵폐기물 처리 장소에 대해서도 전혀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정책도 이대로 간다면 일본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쫓아가는 형국이 될 것이다. 더구나 한국이 농축 우라늄을 보유하는 것은 북한과 중국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일본은 현재도 다량의 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한국은 일본이 언제라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의 원자력규제위원회설치법에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문구를 넣은 게 한국이나 중국에서 큰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한국이 원자력발전 추진에다가 농축 우라늄까지 갖게 된다면 중국으로부터도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최근 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연장했는데 이는 오사카, 도쿄 부근까지 해당되는 거리이다. 미국 내에서는 이를 두려워하는 의견과, 오히려 중국 견제용으로 사용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보면, 일본이 미일안보체제 하에서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또한 머지않아 '일본도 핵을 보유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현재보다 많아지게 될 경우, '핵 도미노 현상'이 안 일어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한일 또는 중일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불안감이 고조되고 서로가 과잉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어려운 시기라고 본다. 어찌됐든 일본 민주당 정권은 2030년까지 원자력 없는 상태(원전 제로)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솔선해서 장기적으로는 '향후 몇십년 안에 원자력 의존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택이 한국의 경쟁력을 저해할 리도 만무하다. 한국의 기술력이라면 풍력 등 대체에너지를 최첨단 수준으로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구태여 지금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리스크가 높다."
동북아의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비핵지대와 같은 구상이 필요한 것 같다. 평화네트워크와 피스데포도 오래 전부터 이런 주장을 펴왔는데, 이러한 구상의 실현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는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실현을 위한 순서를 말하자면, 먼저 남북관계의 진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룩해야 한다. 그 대신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일체의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보장하고, 북한의 존재 자체와 안전도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최종적으로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반도 비핵화가 가능해지면, 일본과 한국이 협력해서 동북아 비핵지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보수적일지도 모르지만, 민주당의 정치인 중에는 오카다 카츠야(岡田克也) 전 외무대신과 같이 동북아 비핵지대 구상을 내놓은 인물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북한 문제의 해결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북교섭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남북공동선언을 실현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구상들이 실현된다면 한반도에서 핵은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일본과 한국이(몽골을 포함시키자는 의견도 존재)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핵탑재선박 등 일체의 운반수단도 통행할 수 없게 만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일본에는 비핵3원칙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이것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의 영토와 영해에는 핵운반수단이 들어올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여기에 비핵안전지대를 창설하는 것은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다시 일본 문제를 묻고 싶다. 일본의 현정세로 볼 때 희망은 있다고 보는가? 만약 있다면 희망은 어떤 게 있을까?
"2011년 3월 11일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것은 탈원전 및 반원전을 비롯한 시민의 참여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상황으로 볼 때 '일본의 변화'라고 하는 희망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고 본다. 현재 일본은 '국가개조'라고 해서 위에서부터 국가를 고치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한국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격차도 심하고 청년층 고용도 불안정한 게 사실이다. 사회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지면서 개인의 고립도 심해지는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화를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했기 때문에 시민의 정치참여가 여전히 살아있다. 이게 바로 정치를 바꾸는 힘인 것이다. 만약 이번에 여당의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중도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거라고 본다. 물론 박근혜 측근들의 힘이 어떻게든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계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야당이 정권을 잡게 될 경우, 경제문제를 풀기가 상당히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지금 경제성장이 매우 주춤해 있는데 세계경제 전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은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 하더라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한국의 미래를 크게 빛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분단시대를 조금이라도 종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일본처럼 중국과 정면에서 대립하는 선택을 할 리가 결코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변화는 일본에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즉, 남북관계나 한중관계가 진전되거나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호전시키게 된다면, 일본도 바뀔 가능성은 커진다. 일본은 현재 독도나 종군위안부와 같은 역사문제로 한국과 대립하고 있지만, 전략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한국과 가까워지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한일관계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맥락에서 기능하길 원할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이 남북관계를 잘 다룬다면 일본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경제적인 성장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소득재분배 및 복지에 힘을 쏟으면서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어놓은 길을 조금이라도 전진시키는 일이 동아시아의 긴장을 푸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일본 내에서 희망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 강경파와 같이 중국과 정면에서 대립하는 정권은 결국에는 잘 굴러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선가 새로운 정권이 방향전환을 하든지 코너에 몰리든지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진보(리버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당이 없다. 그러나 한국에는 있기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다. 그래서 한국이 변함으로 인해 일본이 간접적으로 충격을 받고 조금이라고 변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은 멀리 내다보는 정치적 역량이 매우 크다.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 민족은, 아무리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하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계승되는 정신은 그리 쉽게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말씀 감사드린다. 남북관계의 미래지향적 중요성에 대해 지적해주신 것이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