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출생했다. 아버지 페르난도는 빵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 아델레는 담배공장 노동자였다.
아델레가 다니는 공장에 여자 노동자 아르첼리가 새로 취업했다. 아르첼리는 많은 일 때문에 신생아 딸 프레나에게 젖을 먹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유아에게 젖을 먹여주는 동네 직업 유모에게 딸을 맡기고 일터로 나가야 했다.
8개월 뒤 아델레도 아들 파바로티를 출산했다. 아델레 역시 일 때문에 아기에게 직접 젖을 먹일 수가 없어서 프레나를 키우고 있는 동네 유모에게 파바로티를 맡겼다. 덕분에 파바로티와 프레나는 한 유모의 젖을 나누어 먹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파라로티와 프레나는 자연스레 소꿉친구로서 어린 시절을 함께 지냈다. 한 동네에서 그렇게 함께 자랐으니 성악을 같은 스승에게 배운 것도 예정된 행로였다.
뒷날 둘은 모두 세계적 성악가로 성장했다. 두 사람은 가끔 푸치니 작곡 <라 보엠> 등에 나란히 올랐는데, 카라얀이 지휘하고 파바로티와 프레나가 동시 출연한 음반은 지금도 세계 최고 불멸의 명반으로 인정받는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흔히 파바로티와 프레나가 갓난아기 때 한 유모에게서 같은 젖을 먹고 자랐고, 어린 시절을 줄곧 소꿉친구로 지냈으며, 음악 스승도 동일 인물이었으니 후일 성악가가 되었을 때 같은 무대에 서서 호흡을 맞추었을 때 절정의 하모니가 탄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옳은 판단이 아니다. 같은 유모가 아니라 같은 친모에게 태어난 쌍둥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각각 개체가 다르므로 저절로 일심동체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로마 건국신화에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등장한다.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고아가 된 형제를 늑대가 거두어서 젖을 먹여 키운다. 파바로티와 프레나의 유가 아니다. 하지만 형 로물루스는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왕이 된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신화가 증언해주는 바와 같이, 파바로티와 프레나의 경우는 그저 우연일 뿐이다. 두 사람의 음악적 조화가 동일 유모에게 젖을 먹인 결과라는 판단은 어처구니없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두 사람의 유년기를 지배한 동일 유모 사례는 당시 독재자 무솔리니가 실시한 ‘복지’ 정책의 일환이었다. 갓 출산한 어머니들을 공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시행된 비인간적 노동 착취였다. 무솔리니의 ‘복지’ 정책이 파바로티와 프레나의 명품 화음을 낳았다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의 극치이자 예술가에 대한 최악의 망언이다.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