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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에 다녀오다.
일자 : 2011년 1월 28일 금요일
인원 : 유석재 선생님, JM 전재만 선배, 러블리 박종신
토왕소개
토왕성의 겨울 폭포는 혹자가 말하길 동양 최대의 빙폭이라 할 정도로 그 웅장함을 간직한 폭포이며 또한 설악동에 들어갈 즈음 좌측 멀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길처럼 보이는 폭포이다. 겹겹 계곡으로 둘러 쌓여 사람의 발길을 잘 허락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신비롭기 까지한 토왕성 폭포는 대청봉-화채봉의 화채능선으로 연결되는 외설악의 칠성봉 (七星峰:1077m) 북쪽 토왕골 상부에 걸려 있다. 지기(地氣)가 왕성하다는 뜻의 토왕이라는 말은 옛날 설악동 이름에서 따왔으며 이 전에는 신광(神光)폭포라고 했다고 한다.
토왕성 폭포는 빙폭등반거리 기준 하단 100m, 중단 120m, 상단 130m의 3단 연폭(連瀑:350m)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 깎아지른 기암괴봉들이 V자 형태의 깊은 계곡을 이뤄 폭포를 한층 신비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소공원 건너편 달마봉 (635m)에서 보면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두곳에 주름잡아 바위에 늘어뜨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비룡폭포부터 토왕골의 입산은 통제하고 있으며 매년 2월 초순 속초시에서 추최하는 빙벽 등반대회가 열리면서 이틀 간 일부 일반 산행객들에게 공개 되기도 한다.
<토왕폭 전경>
<비룡폭포에서 보이는 토왕폭 상단의 모습>
들어가며....
몇 주간의 고된 빙벽교실이 드디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빙벽을 처음 하는 나로선 토왕성폭포를 오른다는 것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 하길 토왕성 폭포를 오른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많은 산악인들의 꿈이라 한다. 그만큼 상징적인 등반이면서 동시에 많은 산악인의 동경의 대상인 것이다. 재만이 형이 올 겨울 빙벽교실을 교육생인 나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참여한 것도 사실은 토왕을 오르기 위한 준비였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빙벽교육을 받았기에 그 의미는 잘 모르지만, 토왕성 폭포 등반의 날이 다가 올수록 두려움과 설레임, 한편으로는 어떤 기대가 나의 마음에서 몇 일째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인터넷에 들어가 관련 등반 정보를 찾아 보기도 하고 그 웅장함을 간직한 사진들을 살펴보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토왕폭 등반준비를 마음으로 조금씩 하고 있었다.
일주일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날이 너무 추우면 취소하자고 선생님께 재만이 형한테 몇 번이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길 여러 번, 하지만 날은 너무도 완벽하게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28일의 속초의 기온이 영하 7~0도가 예상되는 일기예보가 말해주듯-그러면 토왕골은 영하 10~5도 정도 될 것이고, 이러한 기온예보는 이전까지 늘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선생님은 장비의 무게를 고려해, 자일은 120M 하나만 가지고 가고, 등반 방식은 선생님 리딩, 러블리 등강기를 이용한 확보 후 고정자 등반, 재만이 형은 빌레이를 통한 등반으로 하자고 하신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위해 무전기를 두 대 챙긴다.
자일 한동만 가져 가는 것이 내심 불안해 보조자라도 하나 더 가져 가자고 해 보지만, 결정은 이미 내려 졌고 우리는 그런 대장의 결정을 믿고 따른다.
27일 목요일
암장에 4시 반에 모인 우리는 기본적인 행동식을 구입 후 장비를 점검하고 다섯 시에 설악을 향해 출발, 가는 길 원통에 들려 맛있는 황태 정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8시를 넘겨 설악동 입구 송월파크에 숙소를 잡는다.
숙소에서 내일 등반을 위해 배낭을 다시 꾸리고 간단한 음주와 함께, 재만이 형과 나는 바일을 정비한다. 정성과 기를 담아 날을 세우니 내일 하루 종일 나와 재만이 형의 든든한 손이 되어 줄 바일 끝이 마치 먹이 감을 잡으면 놓지 않는 매의 발톱처럼 곧추 선다. 어느덧 시간은 9시를 넘기고 내일의 결전을 위해 이른 잠자리에 드는데, 어정쩡하게 먹은 술로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쉽게 잠에 빠지기가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숙소에 겨울 캠프 차 이미 진을 치고 있는 중학생 어린이들은 우리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소란스러움을 더해 가며 깊어가는 겨울 밤을 즐긴다.
28일 금요일
토왕성 폭포를 향해 : 오전 3시반 ~ 6시반
거의 선잠과 뜬 눈으로 밤을 보내는데, 어느덧 새벽 두시 반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고, 자리를 털어 내고 일어난 선생님은 분주하게 준비해 온 누룽지를 끓인다. 그 와중에도 숙소 방문 밖으로는 아직도 잠들지 않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식사를 마치고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선생님이 등반 허가서를 가져오니 시간이 세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차를 세우니 주차료도 통과요, 신흥사에 내 주어야 하는 불편한 문화재 보존료도 통과다.
새벽 별을 친구 삼아 운행을 시작한 우리 일행은 모두가 깜짝 놀란다. 한겨울의 설악산에 눈이 없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이십 년 넘게 설악산을 왔지만, 이렇게 눈이 없는 설악산은 처음이란다. 내 경험에도 이런 겨울 설악산은 처음이다. 워킹용 아이젠을 준비해 왔지만, 필요가 없다. 눈이 없는 설악산을 빙벽용 등산화를 신고 걸으니 조금은 불편하다. 대략 40분 정도를 걷고 난 후 한참을 앞서가던 선생님이 잠시 멈추곤 쉬었다 가자고 하신다. 등산로 한 켠에 멈추어 선 우리는 땀이 나기 시작해 불편해진 겉옷을 탈의하고 잠시 산중 새벽의 고요함을 몸으로 느낀다.
비룡폭을 지나 본격적인 비 등산로 구간인 토왕폭 접근로로 들어서는데 앞선 선생님이 외친다. 우리 앞에 한 팀 더 있는 것 같다고 랜턴의 불빛이 앞쪽에 보인다고. 재만이 형과 나는 믿을 수 없다. 오늘 제일 먼저 얼음에 오르기 위해 우리가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앞선 팀이 있다니, 그러면 그 팀은 도대체 몇 시에 기상해 출발한 것일까?
한 20분을 더 걸었을 까 우리 앞 팀의 정체가 밝혀 졌다. 올라 가는 팀이 아니라 등반을 마치고 하산을 하는 팀이었던 것이다. 이런 새벽 4시 반에 등반을 마치고 하산을 하는 팀을 마주치다니, 그들이 스쳐갈 때마다 느껴지는 고단함과 힘겨움, 대부분의 하산자들이 장비도 정리하지 않은 채 안전벨트와 대부분의 등반장비를 찬 채로 달그락 달그락 쇳소리를 만들어 내면서 내려온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마음일까? 토왕을 올랐다는 성취감? 아니면 등반을 안전하게 마치고 간다는 생각?
기나긴 등반이 가져다 주는 피곤함과 지긋지긋함? 나도 한참 뒤에 저들과 같은 입장이 되어 하산할 때 쯤이면 알게 되겠지. 스쳐 지나가는 그들에게- 아직도 한 시간여를 더 지친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만,- 다 내려 왔으니 힘내라는 응원의 말을 전한다.
그들과의 짧은 만남 이후 재만이 형과 나의 숨소리, 발자국 소리 만이 조용한 계곡에 흩어진다(선생님은 저만치 앞서가는 터라 아주 가끔씩 뒤를 돌아 보실 때마다 우리를 향하는 저 멀리의 랜턴불빛 만으로 길을 인도해 주실 뿐^^). 삼십 여분을 그렇게 우리는 걸었을까? 이후 길이 점점 더 험해 지자 위험한 구간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은 우리 일행을 기다려 주시기 시작했다. 얼음이 얼어 건너가기 위험한 구간을 나는 바일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통과한 후 한 십 여분을 더 걸어 오르자 토왕폭으로 통하는 계곡입구에 도착한다. 이미 도착한 선생님은 크램폰을 착용하시면서 재만이 형과 내게도 크램폰을 착용하라고 하신다.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는 시간이라 랜턴으로 확보되는 짧은 시야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계곡을 올려다 보며 사진에서만 보아 왔던 토왕폭의 웅장한 모습을 찾아 보지만 얼음이 얼어 있는 가파른 경사의 계곡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이미 크램폰을 착용한 선생님과 재만형의 철커덕 철커덕 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나도 서둘러 크램폰을 착용한다.
이후 한 십 오분 정도를 더 오르니 점점 넓어지는 계곡의 길게 뻗은 빙판 위에 하늘을 향해 우뚝 쏟아 성처럼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절벽이 눈이 들어오고 그 한가운데로 겨울이 아니라면 엄청난 소리를 내는 위용으로 우리를 압도했을 거대한 물길이... 떨어지다 시간이 그대로 멈춰 정지된 듯 희뿌연 색으로 옷을 입은 채로 말 그대로 '얼음'이 된 형상으로 하늘 길을 열어두고 우리를 맞이한다.
(돌이켜 보면, 오늘 날이 밝은 시간 멀리서 상단의 모습과 함께 토왕 전체를 조망했다면, 그 느낌은 또 달랐을 테지만, 오늘은 시야가 트인 시간 내내 토왕 바로 곁에서 토왕의 일부만을 보고 느꼈을 뿐 오로지 토왕폭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진 못했다. 다만 토왕폭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하늘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은 실컷 맘에 담을 수 있었다.)
<하단에 도착한 후 장비를 착용하는 유석재 선생님과 러블리>
토왕폭포 하단부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곤 장비를 착용하니 시간은 여섯시 반을 조금 넘는다. 아직 날이 어두워 여명이 터 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멀리서 일군의 무리들이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토왕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온다.
토왕성 폭포 하단을 오르다. 오전 7시 ~ 9시반
시간이 일곱 시를 향해 가자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재만이 형의 빌레이로 선생님이 등반을 시작하신다. 나는 옆에서 줄을 정리해 주면서 선생님의 등반을 바라본다. 폭포 우측으로는 얼음이 커다랗게 비어 있는 곳이 있어 좌측으로 등반을 하시는데, 스크류를 설치하면서 얼음 상태가 별로 안 좋다며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얼음이 완전히 썩었어.' 음.. 얼음이 썩다니...ㅋㅋ 선생님의 등반이 시작되고 시야에서 벋어난 후 등반 시작 후 채 30분 정도도 흐르지 않은 시간 무전기를 통해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 온다. '완료'
잠시 후 자일이 고정된 것을 확인한 나는 자일에 등강기를 통과시킨 후 심호흡을 한다. 재만이 형에게 나의 출발을 선생님한테 알리라 부탁한 다음 등반을 시작한다. 지난 교육 당시 세컨을 보는 내내 피피 훅이 없어 고생했던 나는 토왕에 오기전 피피 훅을 구입했는데, 역시나 장비 회수를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몇 번이나 등강기를 차고 등반을 했으나 100미터나 되는 빙폭을 등강기로 등반하는 것이 조금은 불안해 오르다 말고 자일이 조금이라도 처지면 등강기를 당겨 놓는다. 하지만 스크류를 두 개 정도 회수 한 후 이후의 등반이 조금씩 익숙해 진다.
<하단을 등반중인 러블리>
하단의 얼음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데로 워낙 강수량이 적어서 인지 푸석푸석한 느낌이 난다. 아마도 수량 부족으로 새로운 물의 공급이 거의 없어 겨울 내내 수분이 다 날라가서 그런 것 같다. 한 삼십 분은 오른 것 같은데 이제 반 조금 넘어 선 것 같다. 얼음의 상태와 빙폭 전체의 긴 등반거리라는 부담을 제외하곤 꽤나 발 디딜 곳과 바일을 걸 곳이 많아 수월하다. 70미터 이상을 오르니 경사가 완만해 지기 시작하고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선생님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마지막 스크류는 등반 선이 많이 꺽이기에 재만이 형을 위해 남겨 놓는다. 하단 등반을 끝마치고 확보지점에 다다른 나는 확보를 한 후 시간을 보니 대략 50분 정도가 소요된듯하다. 선생님은 언제나 그렇듯, '왜 이리 늦게 왔냐'고 구박 아닌 구박을 하시면서 보자 마자 휴지를 찾는다. ㅋㅋ 나를 기다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구나.
<하단 위쪽 완경사 구간으로 진입하는 러블리>
선생님은 휴지를 받아 들고는 무전기를 내게 넘기면서, 황급히 중단 폭포 옆으로 펼쳐져 있는 숲 속으로 가신다.
하단 등반 길이가 100여 미터이니 뭐 힘들게 줄을 당기고 다시 정리할 필요도 없다. 조금 줄을 당겨 놓고는 빌레이 준비를 마친 나는 무전으로 재만이 형에게 '출발'이라고 외친다. 무전기 너머로 '출발'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빌레이를 위해 자세를 잡고 일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하단에서 보았던 세상과는 다른 별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재만이 형이 출발하고 빌레이를 본지 대략 40분 정도가 되니 재만이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밝게 웃으며 재만이 형을 반갑게 맞으며 하단 마지막 완경사 부분을 오르는 형에게 화이팅을 외친다.
선생님이 급한 볼일을 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났던 터라, 그리고 재만이 형이 올라오자 마자 상단 출발지로 급하게 가시려 서두르느라 재만이 형의 하단 등반 사진이 하나도 없다. (ㅋㅋ 형 미안)
재만이 형이 등반을 마치고 난 후 시간을 확인하니 시간은 아홉 시 반을 지나 열 시를 향하고 있다.
토왕성 폭포 중단을 오르다. 오전 9시반~ 10시 40분
<토왕폭 중단 위쪽에서 바라본 하단 폭 끝지점. 멀리 러블리와 등반을 마무리 하는 JM재만의 모습이 보인다>
하단 등반을 마치자 마자 선생님은 스크류를 받아 들고선 자일을 묶고 멀리 보이는 상단 폭포 출발지점을 향해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러블리! 빨리 따라와'라고 연신 외친다. 중단의 거리는 120 미터 정도이며 경사도는 40~60도 정도라고 나와 있는데 오늘 처럼 눈이 없으면 반 이상은 등반으로 올라야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재촉만 할 뿐이다. 나는 선생님의 재촉하는 소리에 확보 없이 자일만 확보줄에 통과 시킨 후 허둥지둥 따라 오르는 데, 한참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장난이 아니다.
<중단을 급하게 오르는 선생님과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가는 러블리>
순간 겁이 덜컥 나 등반을 멈추고 선생님이 자일을 고정해 주던지 아니면 빌레이를 봐 주기 전에는 꼼짝도 안 하겠다고 외친다. 재만이 형도 밑에서 확보가 될 때 까지는 오르지 않겠다며 대기를 한다. 선생님은 그래도 연신 '그냥 올라오는 데야 여기는 ... 나참...'이라고 말을 되풀이 하신다. 그러나 나는 꿈쩍도 않는다. 상단 출발지점에 도착한 선생님은 하는 수 없었는지 확보 지점을 설치한 후 자일을 고정해 주신다. 자일이 고정된 것을 확인 한 후 나는 등반을 속개하고 확보 지점에 도착 완료한다. 내가 완료하자 마자 선생님은 자일을 당기라 하신다. 재만이 형은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중간에 낀 나는 선생님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는 재만이 형 빌레이를 보는데, 선생님은 끌어 올린 자를 묶고는 빌레이 없이 상단을 칠 기세다.
나는 '쌤 재만이 형 올라오고 빌레이 준비되면 출발하세요'라고 말을 건네면서 속으로 재만이 형이 빨리 도착하길 바란다.
재만이 형이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덧 10시 40분 선생님은 나에게 빌레이 준비를 재촉하고 '출발해도 돼!'라고 몇 번이고 되 묻는다. 출발 지점에서 바라다 보이는 상단 벽은 경사만 좀 급할 뿐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토왕성 폭포 상단을 오르다. 오전 10시 50분 ~ 오후 4시
나는 아차 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무전기를 선생님께 건넨다. 무전기를 받아 들면서 자신의 스크류 개수를 확인하는데 확보지점에 설치한 세 개 빼고 총 여섯 개의 스크류를 소지하고 계신다. 나와 재만이 형은 스크류가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지만(재만이 형이 마지막으로 회수 했던 스크류는 깜빡하고 벨트에 찬 채로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늘 그러듯 '괜찮겠지요' 라고 말한다. 그리곤 계획했듯이 피치를 안 끊고 한번에 간다고 하신다. 재만이 형과 내가 다시 '선생님 자일이 충분할까요?'라고 묻는데, 선생님은 충분하다고 하시고 부족하면 연등하면 된다고 한다.
선생님은 역시 무대포에 가깝다. ㅋㅋ '내가 고정자로 등반하는데 부족하면 부족한 거지 연등은 무슨 연등'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상단을 등반하시는 선생님>
빌레이 준비를 마치자 마자 선생님은 '자~~ 갑니다.'를 외치더니 등반을 시작한다. 등반 중간 중간 확보를 설치하면서 선생님이 등반하는 데 밑에서 보일 때 그리 멀지 않아 보이던 상단 수직 구간을 오르는 선생님이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작아지기만 할 뿐 시야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한참을 오르던 선생님이 특유의 목소리 톤으로 밑을 향해 한마디 외친다.
'야.~~ 이거 왜 안 끝나냐.. ' 밑에서 바라보는 우리도 의아하기만 하다. 상당히 오랜 시간 등반을 하시고 계신데도 작아만 질뿐 턱을 넘어 사라지질 않는다. 등반 시작 후 30분 정도 지난 시간... 멀리 보이는 상단의 테라스 지점을 드디어 넘어서 시야에서 사라졌을 즈음 재만이 형과 나는 '이제 거의 다 오르셨겠다'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선생님의 무전이 들려온다. '야 끝이 없다.'
<상단 빌레이 지점에서 보이는 턱 지점을 넘고 있는 선생님>
밑에서 보이는 빙벽이 다가 아닌가 보다. 나중에 등반 중 나는 끝이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가져간 스크류가 모두 6개고 멀리 보이는 테라스 까지 5개를 치고 갔는데 끝이 없는 나머지 부분을 어떻게 가시겠다는 것인지 밑에선 보이질 않으니 알 수가 없다.
선생님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자일은 계속해서 빠져 나간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자일이 나가는 것이 멈춘다. 나는 마지막 스크류를 이용해 확보설치를 하는 것임을 감지하고 남은 자일을 확인하는데, 끊지 않고 등반을 할 경우 아직 나가야 할 자일의 길이가 상당한 것임을 깨닫는다. 생각해 보니 끊을 수도 없다. 마지막 스크류를 설치했으니 끊으려면 여분의 스크류가 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와 재만이 형은 약간의 걱정스런 말로 상황을 공유했으나, 선생님의 등반능력을 알기에 서로 '뭐... 괜찮겠지'라고 위로한다.
자일이 멈춰있길 얼마 후 자일이 또 휘휙 휘휙 빠져 나간다. 그러길 십분... 남아 있는 자일이 없다. . 재만이 형이 급하게 선생님에게 무전을 친다.
'자일 다 갔어요!' 잠시 후 선생님으로 부터 무전이 온다. 한 삼 미터만 더 올라 가면 된단다.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
다시 확인하기 위해 무전을 날리니 선생님 말인 즉 거의 다 올라오긴 했는데 현 위치에서 3미터 위에 누가 놓고 간 스크류가 하나 발견되었으니 거기서 확보를 하시겠단다.
우리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는 선생님의 자기 확보를 무전으로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빌레이 지점에 밖아 놓은 스크류를 하나씩 신속하게 해제해 삼 미터 정도 위쪽으로 빌레이 위치를 옮긴다. 빌레이 위치를 옮긴 후 무전을 보내니 삼 미터 정도의 여유분으로 만들어 졌던 자일이 무섭게 빠져 나간다. 그리곤 잠시 후 자일을 고정했으니 등반하라고 무전이 온다.
그런데 확보라는 게 스크류 하나밖에 없지 않던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무전을 치니 선생님의 바일로 하나의 확보지점을 더 설치했다는 것이 아닌가.
위쪽의 상황을 확인 한 순간 물론 선생님께서 어련히 안전하게 확보를 했겠지만. 우리의 120자가 스크류 하나와 바일에 의지해 절벽에 걸려 있다는 사실에 몸이 긴장이 된다. 더우기 세컨으로 올라 가는 나는 등강기로 등반을 해야 하기에 만약 추락이라도 하게 되면, 자일을 잡아주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스크류와 바일...
<상단의 확보설치물 : 누군가 놓고간 스크류와 선생님 바일 하나>
준비를 마친 내게 재만이 형이 주의를 준다. '조심해서 올라가고 올라가면 확보지점에 스크류 보강하고 빌레이 봐줘!'
선생님이 상단 등반을 완료했을 때의 시간은 열 두시가 되기 조금 전이다. 정말이지 빨리도 올라 가셨다. 등반 시간이 대략 50분 정도 걸렸으니 나와 재만이 형은 대략 둘이서 세시간 안으로 끊을수 있다는 예상하에, 상단 출발 전 재만형과 내가 나누었던 농담... '야..일찍 끝나겠네... 빨리 내려와서 해지기 전에는 속초에서 물 회에 소주한잔 할 수 있겠는데...', '그러게... 한 늦어도 다섯 시면 소공원에 가겠지!!' - ... 하지만 상단 등반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가 지나지 않아 이런 대화가 참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말이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직벽의 얼음, 밑에서는 가깝게만 보이던 스크류 사이의 거리가 실제로 붙어보니 멀기만 하다. 한참을 오르다 쉬 다를 반복 한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 까.. 겨우 테라스 부근을 지나치는데 테라스를 지나자 밑에선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올라온 것 만큼의 직벽이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재만이 형이 내가 너무 늦게 올라 간다고 밑에서 속으로 '제 왜 그렇게 못 올라가나..'라고 몇 번을 의아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만 형님도 등반을 하시면서 느꼈다고 한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상단의 직벽 구간...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단을 최소 두 피치로 나누어 등반하는 구나'를 온몸으로 깨달으며 이미 기진 맥진해진 나는 저절로 나오는 쌍소리를 연신 거친 호흡과 함께 내 뱉으며 어기적 어기적 등반을 이어간다. 상단의 위 부분을 오르면서 이미 지친 나는 자꾸만 쉬는 간격이 짧아지고 그때마다 남아 있는 거리와 올라온 거리를 확인하며, 동시에 이 먼 길을 스크류 하나 없이 올랐을 선생님이 생각나 '어여 힘내야지'라며 나를 격려한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조금씩 빙벽의 경사가 완만해 지면서 눈 앞에 확보지점이 들어온다. 확보지점에서 15미터 정도를 더 올라야 원래 확보지점인 나무가 있으니, 지금의 상단 확보지점은 아직 폭포의 끝이 아니고 폭포의 시작지점 바로 밑 빙벽의 한가운데인 것이다. 정말 절묘한 곳에 누군가가 스크류를 놓고 간 것이다. 선생님은 어느 새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나의 사진을 찍고 있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상단 폭포 위에 오르자 경사가 눕기 시작하고 선생님이 보인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왜 이렇게 오래 걸려...나 죽는 줄 알았다. 기다리다가..'
선생님을 발견한 나도 한마디 한다. '와...이건 뭐.... 왜 이리 길어요...'..
'아니 선생님 스크류 없이 그 긴 거리를 어떻게 올라 왔어요? 대단해요..'
선생님 웃으면서
'야~~ 남들은 프리 솔로로도 그냥 올라오는데...'
확보지점에 도착한 나는 스크류를 한나 더 설치 해 확보물을 보강 후 슬링을 이퀄라이징하고 재만 형의 등반을 위해 빌레이 준비를 한다. 시간은 벌써 한시 오십 분이다.
<상단 확보지점 도착 후 스크류를 이용해 확보지점을 보강하는 러블리>
하단을 등반했던 시간이 40여분 이었다면, 상단 등반에 걸린 시간은 그 세배의 시간인 두 시간이 걸린 셈이다. 나는 속으로 음...재만이 형도 분명히 내가 걸린 시간만큼 걸릴 텐데...라고 예상하며, 오랜 시간의 빌레이를 대비 해 겉옷을 다시 걸쳐 입는다.
재만이 형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주고 뒤를 돌아 보는데 멀리 속초와 동해 앞바다 그리고 울산바위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나의 눈이 호사를 한다.
그렇게 말등인 재만이 형의 등반이 시작되고 예상했던 대로, 자일이 올라오는 속도가 시간이 갈수록 더뎌 지기만 하다. 자일의 유통이 멈출 때마다..(재만이 형이 쉴 때 마다.^^) 틈틈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배낭을 열어 행동식을 꺼내 먹기도 하고 물도 마시면서 여유를 가져 본다. 그렇게 한 40분이 지났을 까.. 재만이 형으로 부터 무전이 온다.
자신을 지나쳐 간 다른 팀 선등자가 낙빙을 너무 많이 만들어 피치를 끊을 때까지 잠시 대기 했다가 오른다는 무전이다.
그렇게 대기하는 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안전 벨트에 의지한 나의 허리에서 아프다는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자세를 이리 저리 바꾸어 보면서 허리에 부담을 최소화 하지만, 경험에서 알 수 있듯, 한번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허리는 그 상황을 벗어 나지 않는 이상 답이 없다. 참을 수 밖에, 나는 재만이 형에서 무전을 보낸다. '대충 빨리 올라 오라고..' ㅋㅋ
속으로 나도 모르게 선생님을 닮아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웃음이 나온다. 그 사이 선생님은 심심했는지 토왕폭 물줄기를 따라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니느라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남는 자일이 더 있었다면, 여느 때처럼 '나 먼저 간다. 잘하고 내려와 하곤 휘리릭 가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물론 그럴 리 없지만^^......
재만이 형의 등반이 속개되고, 시간이 갈수록 내가 등반 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일이 멈추는 시간이 늘어 난다. 한참을 지나고 재만 형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오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두 시간 동안 얼음에 매달려 빌레이를 보는 나도 곤욕이지만, 그 시간 동안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 고독하게 올라오는 등반자인 재만이 형은 얼마나 더 힘들까? 형이 오르기 전 나도 똑같이 올랐던 길이기에 재만이 형의 상황이 십분 이해가 된다.
'형 힘내고 천천히 올라와! 올라오면 별천지야...' 라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어... 그래 왜 이렇게 기냐..끝이 없다.'라고 대답하며 거친 숨을 토해 낸다. 그렇게 우리는 자일을 통해 서로의 상태를 공유하며 두 시간 만에 다시금 조금씩 가까워 진다.
재만이 형이 빌레이 확보지점에 도착해 같이 사진을 몇장 찍고서는 바로 15미터 정도 위에 있는 원래의 상단 끝 지점으로 올라 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내 등반을 마무리 시키기 위해 빌레이를 본다.
<상단 확보지점에 도착한 재만 형님과 함께>
<저 위에서 확보지점에 있는 러블리와 재만 선배 사진을 찍고 있는 선생님 : 분위기 긋~~~>
확보 지점의 모든 설치물을 회수해 상단으로 오르는데,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 주신다. 나는 바일을 높이 치켜 들며 기쁨을 표현하고, 선생님은 요리 저리 나의 사진 찍을 자리를 잡아 주시는 데 상단에 완전히 올라선 곳에서 바라보는 폭포의 물줄기 쪽도, 그리고 바라다 보이는 동해 쪽도 그냥 그림이다.(아차..빌레이 보느라 입었던 폼안나는 외투를 벗지 않았다. 그래서 토왕 상단 완등 시 찍힌 사진은 영 아니다....)
그렇게 우리의 토왕폭 등반은 끝이 나고 시간은 어느새 네 시를 향해 가고 있다.
<상단 폭 등반을 마무리 하는 재만 형과 상단에 올라 두 손을 치켜 올리는 러블리>
<토왕폭을 만들어 내는 상단 위 계곡>
토왕성 폭포를 내려오다. 하강 오후 4시반 ~7시 40분
잠시 행동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하강을 시작한다. 선생님은 서둘러야 한다고 하고 재만이 형은 안전하게 조심하게 내려가야 한다고 하고... 하여간에 이래 저래 서두르는 선생님과 안전을 고집하는 재만이 형 덕분에 상단 세 번, 중단 한번, 하단 두 번의 기나긴 하강 끝에 우리는 아침에 빙폭 등반을 위해 장비를 착용했던 곳. 출발지점으로 내려 올 수 있었다.
<하단 출발지점으로 돌아온 후 자일을 사리는 선생님과 러블리>
소공원으로 8시~ 10시 30분
하산 길에 필요치 않은 장비들을 챙겨 넣고는 몇 번인가를 줄을 걸고 완만한 얼음 경사 지대를 내려오고 난 후 얼어 붙은 계곡을 따라 한 시간 반 정도를 내려오니 비룡 폭 계곡과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신고 있던 크램폰을 해체해 배낭 속에 넣고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를 걸어 소공원에 도착. 끝!!!!!
나가는 토막글.... 토왕폭 등반을 회상하며....
벌써 토왕에 다녀온 지 삼 주나 되어 가는 지금, 빙벽 일년차인 내게 그런 기회를 가지게 해준 유석재 선생님, 그리고 재만이 형에게 여전히 고맙다. 토왕에서의 경험은 함께 나누지 못한 사람은 이해 못할 아주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그리고 삼 주나 지났지만, 손끝에는 그날을 기억하라는 동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암장의 선후배님들과 술 한잔을 기울일 때나 담소를 나눌 때면 말한다.
'(조금은 으쓱한 기분으로...)토왕에 가봤어(요)! 안 가봤으면 말을 하지마(세요)!!'
첫댓글 너무 늦은게 아쉽기는 하지만 ... 좋은 등반기 잘 봤소. 내년엔 후배들 끌고 선등으로 가야지?
늦은 등반 속도와 늦은 후기 둘다 아쉽다는 소리죠! ㅋㅋ
쉽게 해결되지 않는 등반에서 우리는 화를 낸다.
빌어먹게 냉정한 벽에 대해서.
도심에서 즐길 여유를 포기한 채 벽에 붙어 아등바등하는 나의 미욱한 판단에 대해서.
너무 빠르거나 늦은 파트너에 대해서
그보다... 나의 등반능력과 힘의 한계에 대해서....
하지만 우리는
그후 몇일, 혹은 몇달, 어쩌면 몇십년 동안 그 지독하고 지난했던 고생스런 등반을 안주로 술잔을 기울인다.
"거기 가 봤어? 안 가봤음 말을 말어~~~ㅋㅋ"
첫 시즌 토왕폭 등반을 무지무지 축하하고 무사함을 또한 축하하네.
토왕 가봤어요? 안 가봤으면 말을 마세요~~~ ㅋㅋ
내 보기엔 몇십년 짜리다. OTZ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토왕을 올라가 본 사람과 못 올라가 본 사람...ㅋ^^
앗..네~ 네~~
보기만 해도 겁나는군요 너무 멋져요 ...글도 참 잘쓰시고...완등하심에 박수를 보냅니다...근데 선생님 휴지들고 어딜?......ㅋㅋ
드디어 다 썼구만ㅋ 재밌게 잘 봤다. 내년에는 선등 서야겠네~^^
아니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이제까지 왜 남들 글쓴것만 봐왔을까? 그 사이에 어디 학원이라도 다녔나?ㅋㅋ
부럽달 밖에...
등반후기 잘 읽고 갑니다. 너무 현장감 있어 손에 땀이 다 나네요~~ 완등 축하드립니다.
어제 저녁! "거기 가 봤어? 안 가 봤음 말을 하지말어~~"종신형아의 입에서 연중 뿜어져 나오는 말을 듣고 후기를 읽었다.
근데 괜히 읽었다..... 난 빙벽은 안 할거라고 맘 먹었었는데... 왜 자꾸 이것이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인까..'든든한 손이 되어 줄 바일 끝이 마치 먹이 감을 잡으면 놓지 않는 매의 발톱처럼 곧추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