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만 한 사람은 다 알지만 이시종 지사는 '칼국수'를 즐겨먹는다. 좀 더 잘먹어봤자 '청국장'처럼 서민적인 음식이다. 언젠가 부페가 근사하게 차려진 모 컨벤션 센터에서 저녁에 행사가 열렸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 지사는 인사말을 한 뒤 행사가 끝나자마자 식사를 하고 가라는 주최 측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총총히 일어섰다. 수행한 공무원에게 이 지사가 저녁약속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씩 웃으며 도청으로 가면서 칼국수집에 들릴 것이라고 귀 뜸 했다. 늦은 시간에 칼국수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 밀린 업무를 보러 도청으로 돌아가는 이 지사에겐 '선거의 달인'이라는 별명보다 '워커홀릭'이라는 말이 더 잘어울린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간단하게 '똑게(똑똑하고 게으른)',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멍게(멍청하고 게으른)',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로 분류한다면 이 지사는 전형적인 '똑부'다. 행정경험이 풍부하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지런하다보니 도청간부들도 줄기차게 몰아 부친다. 이시종 치하에서는 국과장급 간부들이 예전처럼 목에 힘주고 품재면서 거들먹거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간부들 호시절 다 지났다는 말은 벌써 나왔다. 승진도 연공서열 보다는 능력본위다. 유능하고 업무에 열성적인 인물을 중용한다. 간부들의 인사리스트를 보면 이 지사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조정선수권대회, 오송화장품·뷰티박람회, 오송바이오산업엑스포,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등 끊임없이 대형 국제행사를 열어 '일하는 도지사'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공무원들로 하여금 일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 도의회와의 관계도 새누리당이 다수당인데도 불구하고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자신은 흠집 하나 안내고 원만하게 컨트롤 하고 있는 분위기다. 도의회가 여야 간 갈등과 새누리당내 분란으로 이 지사를 견제 하기는 커녕 도와주는 양상이다.
이 때문일까. 이 지사는 지난달 한국갤럽이 발표한 '시·도지사 직무 수행 평가' 에서 5위라는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다. 초대 통합청주시를 이끌고 있는 이승훈 시장이 올 들어 세 번씩이나 시민들에게 공식사과하며 새내기 자치단체장의 신고식을 혹독히 치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행정의 메카니즘을 온몸으로 체득한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도지사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때로는 납득하기 힘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심하게 말하면 도민들을 얕잡아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상급식이다. 이 지사는 무상급식에 관한한 말과 행동이 겉도는 경우가 많다. 유난스레 무상급식에 관심을 갖고 소신을 피력한 것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자 이 지사는 "아이들이 점심 한 끼 눈치 보지 않고 맘껏 먹을 수 있게 아량을 베풀길 바란다"고 말해 학부형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그는 지사 후보시절에도 초·중 특수학교 무상급식에 친환경농산물이 쓰이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런 그가 막상 도교육청과 무상급식비 분담문제로 7개월째 마찰을 빚고 있지만 못 본채 하고 있다. 언론과 학부모단체의 열화 같은 호소에 귀를 닫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달엔 모방송에 출연해서 "예산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어느 곳에서나, 1년 내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기관과 기관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내부문제로 봐달라"고 말했다. 이시종식 유체이탈화법이다. 마치 충북교육청과의 갈등을 먼발치 에서 즐기는 듯하다. 동분서주 하며 중재에 나서고 있는 이언구 도의장과 전문가를 동원해 무상급식 공개토론회를 개최하는 도의회 그리고 무상급식 분담을 조속히 매듭짓기 원하는 학부형들과 언론을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지고 있는 '바보'로 만들고 있다. 오죽하면 한쪽 당사자인 김 교육감도 지난달 "무상급비 문제를 공개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는데 행정의 달인이라는 분이 왜 회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걱정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데 이 지사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독선이다.
이 지사처럼 여론의 향방을 정확히 포착하는 사람도 흔치않다. 선거불패는 우연이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가 지역발전에 별다른 업적이 없어도 재선에 성공한 것은 운도 작용했지만 타고난 능력도 무시 못한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에 도취해 나만이 옳다는 독선적인 사고를 갖는 순간 도민의 마음은 떠난다. 이 지사 말대로 당장 무상급식이 깨질 리는 없지만 이 문제로 충북도와 도교육청이 끝없는 소모전을 펼친다면 도민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 밖 에 없다.